혼돈의 제1야당…총선 앞둔 민주당 지도체제는 어떻게 [이재명 체포안 가결 ⑥]
구속은 당헌에서 규정한 '궐위'일까
궐위 아니면 '옥중공천' 가능하지만
'옥중대표'는 무리수라는게 지배적
'사법 리스크'의 근원인 이재명 대표를 도려내는 체포동의안 가결의 후폭풍에 원내 168석 제1야당이 대혼돈에 휩싸였다. 이 대표 구속 가능성에 '2인자'인 박광온 원내대표조차 물러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어떠한 지도체제를 모색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로써 이 대표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제안설명을 할 때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로부터 집요한 훼방 행위가 있었다는 점, 또 이 대표 본인도 본회의 전날 직접 SNS를 통해 '부결 지령'을 내렸다는 점 등은 모두 영장실질심사시 구속을 피할 수 없다는 신호로 읽힌다.
한 장관의 제안설명에 구속 이유와 필요성이 결여돼 있다면 낭독을 훼방할 이유가 없고,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이 예상된다면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부결 지령'을 내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표 본인도, 또 친명계도 '영장실질심사로 가게 된다면 기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경우다. 제1야당 현직 당대표의 인신 구속은 초유의 사태다. 지난 1993년 정주영 통일국민당 총재가 공직선거법 위반과 특가법상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당시에는 직전 대선후보이자 제2야당 당수라는 점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를 했었다.
현직 당대표의 구속은 초유의 사태인 만큼, 구속이 곧 궐위인지 여부도 정의된 적이 없다. 민주당 당헌 제25조 3항은 당대표·최고위원 궐위 규정을 두고 있다. 1호에서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2개월 내에 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를 새로 선출하되, 잔여 임기가 8개월 미만일 때에는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3호에서는 1호의 방법으로 새 당대표를 선출할 때까지 원내대표, 선출직 최고위원 중 득표율 순으로 당대표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구속은 당헌 제25조 3항이 발동되는 '궐위' 상황인가.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 이상 구속만으로는 궐위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 옥중 대표도 가능하고 심지어 옥중 공천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다. 설령 실행에 옮겨지더라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옥중 대표' '옥중 공천'이라는 모습이 국민 보기에 너무나 비정상적인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 우리 당 의석 170석 중 확실한 친명 50석, 확실한 비명 40석이고, 80석은 중간지대에 넓게 분포해 있는 형국"이라며 "지금까지는 당권이 이재명 대표에게 있고 공천권을 이 대표가 행사할 것 같으니 친명에 줄을 섰지만, 이 대표가 구속되면 점차 비명으로 선회하는 인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바라봤다.
무엇보다 '옥중 대표' '옥중 공천'으로는 총선 승리가 요원하다. 서울 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총선 본선에서 당선되지 못하면 공천장은 인주가 묻어 이면지로도 쓰기 어려운 종이조각일 뿐"이라며 "구속된 당대표가 옥중에서 발급해준 공천장을 들고 어디 나가서 당선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따라서 구속된 이 대표 체제 유지는 무리라는 게 중론이다. 구속이 궐위에 해당하는지가 불분명할 경우, 당헌 제23조 1항 6호에 따라 당무위를 소집해 '당헌·당규의 유권해석'을 통해 궐위 상황으로 결론 내리는 방법이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렇게 보면 당헌에 따라 당대표 직무를 대행할 원내대표의 지위가 막중해진다. 박광온 원내대표가 이날 밤 사퇴했으므로 최고위원 중 최고 득표율, 비공식적으로 '수석최고위원'이라 불리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당대표 직무대행을 잠시 할 수도 있겠지만, 원내대표를 언제까지 비워둘 수는 없다. 설령 정 최고위원이 대행하더라도 원내대표가 공석인 잠시 동안의 얘기일 뿐이지, 영원히 대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원내대표 보선 절차 빠르게 진행될 듯
친명~비명 간 진검승부 불가피해보여
조기 전대는 '올 오어 낫씽'이라 부담
계파간 절충점 찾는다면 비대위 유력
민주당 의원실에서 오래 재직한 한 보좌진은 차기 원내대표의 중요성을 2014년 상황에 빗대 설명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 간의 공천권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던 2014년 하반기, 당시 당권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의 비노가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해 7·30 재·보궐선거의 참패로 지도부 총사퇴가 불가피하게 됐다.
그런데 당시 원내대표였던 박영선 의원도 비노였다. 당대표 직무대행이 된 박영선 원내대표는 중도 성향의 이상돈 교수를 비대위로 영입하려 하는 등 친노가 원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당을 이끌려 했다. 이에 친노 의원들은 의총서 총공세를 펼쳐 박영선 원내대표마저 사퇴시켰다.
이 보좌진은 "친노 우윤근 원내대표가 선출되고, 전당대회 때까지 당을 '관리'할 문희상 비대위가 수립됐다"며 "친노 문희상 비대위는 전당대회 룰을 친노에 유리하도록 조정해, 당시 유력 당권주자였던 박지원 의원을 떨어뜨리고 문재인 대표를 선출했다. 2016년 총선 공천권을 가져오는 '열쇠'가 원내대표 교체였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한 상황에서 내달 10일부터 '야당의 잔치판'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원내대표 보궐선거 절차는 빠르게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당장 민주당 최고위는 이날 밤 원내대표선관위를 구성하기로 하고, 5선 중진 변재일 의원을 선관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이재명 대표 궐위시 직무대행을 할 원내대표를 놓고 친명~비명간 진검승부는 불가피해보인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 과정 역시 친명~비명이 각자 고정표가 있고 중간지대에 넓게 분포한 의원들의 표심이 관건"이라면서도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구속된다면 친명이 퇴조하는 신호로 보고 비명쪽으로 저울추가 기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새 원내대표가 선출돼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게 된다면 다음은 새로운 지도체제 수립 수순이다. 여기에는 조기 전당대회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전당대회는 통상 2개월 이상이 시일이 소요된다. 바로 조기 전대에 돌입해도 연말연초에나 새로운 대표가 선출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당대회로 선출된 새 대표가 정통성과 정당성을 갖고 공천 작업을 한다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는다"며 "뭣보다 전당대회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올 오어 낫씽' 게임이라, 한쪽이 승리하면 다른쪽이 분당을 결행할 우려가 있는 게 부담"이라고 바라봤다.
비대위 체제 전환은 계파 간의 타협이 잘 이뤄진다면 현실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비대위원장 하마평으로 벌써부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정대철 헌정회장 등이 거론된다. 계파색이 옅고 현실정치에 이해관계가 희박한 원로급 인물로, 친명~비명이 합의추대해 절충점을 찾는다면, 분열 없이 총선을 치러낼 수 있는 묘수가 된다.
문제는 이번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로 지금 당장은 친명~비명 간에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고 상처가 난 상태라는 것이다. 이날 밤 의총에서는 의원들이 자유발언을 할 때, 좌중에서 고성이 계속해서 나왔다고 한다. 본회의장에서 다른 당 의원이 발언을 할 때 고성을 지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같은 당 의원끼리 하는 의총에서 좌중 고성은 극히 이례적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전격 가결된 오늘부터 수 일 간은 마치 '심리적 분당'과 같은 상태가 될 것"이라면서도 "원내대표 선출을 거치면서 의원들이 머리를 식힐 냉각기를 가져 차분해지고, 파국을 피하고자 하는 당 소속 의원들 간의 합의점이 형성된다면 비대위를 향한 공감대가 넓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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