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새로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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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알거나 익숙하게 되면 관심이 떨어지고 가치나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그것이 본질이라 할지라도 외면을 당합니다.
그것의 그림자만 보여도 이성이 맨발로 뛰쳐나가 고개부터 숙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움이 이끄는 대로 좇아가고 자랑하고 높이다가 신기함이 식고 식상하면 새로운 새로움 추구에 헐떡이다 그것을 만나면 그런 패턴을 거치며 기호의 변덕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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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알거나 익숙하게 되면 관심이 떨어지고 가치나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그것이 본질이라 할지라도 외면을 당합니다. 지식이나 환경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그래 보입니다. 그래서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위해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는 유명 인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찬사를 보냅니다. 그것의 그림자만 보여도 이성이 맨발로 뛰쳐나가 고개부터 숙입니다. 해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는데, 본인에게 새로울 뿐인데, 새롭다고 여겨지면 대량의 흥분을 엎지르고 흥분이 퍼 주는 지적 허영에 부지런히 취합니다.
그러나 불변적인 진리의 불변적인 총량은 개인마다 인식의 증감이 있어서 늘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 진리에 대한 각자의 새로운 발견이나 인식이 주는 착시일 뿐입니다. 진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분량에도 증감이 없습니다. 물론 새로움의 추구는 배움의 불가피한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움이 이끄는 대로 좇아가고 자랑하고 높이다가 신기함이 식고 식상하면 새로운 새로움 추구에 헐떡이다 그것을 만나면 그런 패턴을 거치며 기호의 변덕을 보입니다. 새로움 추구의 역대급 선수들은 고대 아테네 학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거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았다”(행 17:21)고 적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래 눈이 아무리 새로운 것을 보고 또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듣고 또 들어도 충족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만족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의 발견에 있습니다. 눈은 아름다운 것을 만나면 만족하고 귀는 진리가 출입할 때 안식을 누립니다. 새로움을 과도히 추구하는 이 시대에 저는 옛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서 영원한 “옛길 곧 선한 길”을 찾으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권고(렘 6:16)가 적실해 보입니다. 저는 수백년, 수천년의 검증을 거쳐 생존해 온 고전들의 차분한 숙독을 권합니다. 인류 최고의 고전인 성경을 읽는다면 진리의 지식에서 더욱 원숙해질 것입니다.
현대는 기술의 발전과 문화의 변혁을 강조하며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말을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은밀하게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움이 창궐하는 시대에 결코 변하지 않는 우리의 본질을 찾아내는 시도는 인간과 인생의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필수적인 과제인 동시에 변화와 불변 즉 기대감과 안정감의 적절한 균형 유지에도 필요해 보입니다. 이전의 모든 것을 다 지나가게 만드는 새로움에 대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존의 모든 것을 구식으로 만드는 이 기막힌 새로움은 신분과 인격과 성품과 언어와 행실과 삶 전체에 점진적인 변혁을 일으킬 것입니다. 본성의 차원까지 새롭게 만듭니다. 이 새로움은 흥미가 급하게 소진되지 않고 가치와 의미의 항구적인 확대와 존속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사도 바울은 ‘예수’라는 새로움 때문에 당시에 모든 유대인이 흠모하던 할례받은 신체의 선명한 물증과, 신의 택하심을 받은 민족의 자부심과, 태조를 배출한 가문의 영광과, 단일 혈통의 순수한 종교성과, 당대 최고 석학의 제자라는 지성과, 지식을 살아내는 뜨거운 열정과, 도덕에 있어 흠이 전혀 없다는 남다른 의로움 등의 화려한 스펙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 분입니다. 아테네의 지성들도 귀를 쫑긋 세워야만 했던 바울의 그 새로움에 자신의 지성 전부를 거는 사람이 우리 시대에도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막연한 새로움에 대한 인류의 지속적인 갈증은 어쩌면 예수라는 완전히 새로운 진리, 그 진리라는 새로움의 종착지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병수(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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