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포탄 공급량 '밀당'하면 조급한 푸틴 연내 평양 갈듯"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경제학자 김병연 교수가 본 김정은·푸틴의 위험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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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국가'와 '실패 중인 국가' 만남, 제재 탈출 이해관계 맞아
빅딜보다 스몰딜 가능성… 러, 포탄 생산 늘리면 북 버릴 수도
우크라 전쟁에 빨려든 북한, 한·미·일 한목소리로 경고해야
북·러 무기원료 공급망은 차단하되 대화 통로는 열어둬야
」
북한·러시아 문제에 정통한 김병연(61)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국가미래전략원장)를 만나 이번 북·러 정상회담의 의미와 파장 등을 들어봤다. 푸틴의 연내 평양 답방 가능성에 대해 "북·러 사이의 거래,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면서 "11월 평양에서 북·러 정부 간 위원회가 열리는데 포탄 공급량을 놓고 북한이 튕기며 밀당이 벌어지면 푸틴이 조급해져 연내에 평양에 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푸틴의 양동작전, 일관성 없는 말
-이번 정상회담을 어떻게 봤나.
"러시아의 실제적 필요와 전략적 고려가 북한과 맞아떨어졌다. 실제적 필요는 포탄과 로켓 등 재래식 무기였을 것이고, 북한은 식량·에너지 및 첨단 군사기술을 원했을 것이다. 이 모든 거래가 한꺼번에 이뤄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전략적 고려란 북·러 모두 미국을 압박해 미국 주도의 현상을 변경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의미다.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적으로 연대하고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북한도 러시아와 거래해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하고 핵무기 고도화를 조기에 이룰 수 있음을 과시하려 했다. 또 김정은은 자신이 환대받는 모습을 부각해 2019년 '하노이 노딜'로 추락한 국내적 위상을 만회하려 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물밑 거래가 있었을까.
"러시아가 절실히 원하는 포탄을 북한이 갖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러시아의 포탄 재고가 350만~500만발 정도였고, 연간 포탄 생산량은 수십만 발로 추정한다. 러시아는 전쟁 중에 하루 5000발 이상, 그동안 누적 300만발가량 사용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사상자의 70%가 포탄으로 인한 것일 만큼 포탄이 전쟁의 핵심인데, 포탄이 부족해지면서 전쟁 수행 능력에 제약이 생기자 러시아는 방어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른바 빅딜이 있었다고 보나.
"북·러 거래에 대한 푸틴의 언급은 일관성이 없다. 러시아는 양동 작전을 펴고 있다. 한편으로 러시아 자체 포탄 생산량을 연간 200만발 정도로 늘려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북한산 포탄을 들여와 최대한 버티자는 계산이다. 북한의 포탄 공급은 러시아의 포탄 생산량이 소비량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단기 차입하는 ‘브릿지론(Bridge loan)’ 성격이 짙다. 러시아는 '단기적으로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고 북한의 포탄을 공급받아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는 심산일 것이다. 지금은 급박해 단기차입에 나섰지만, 포탄이 충분해지면 북한이 팽당할지도 모른다. 일단 식량·에너지를 주는 스몰딜로 시작해 군사적 빅딜은 차후에 논의하자는 식으로 거래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욱 어려워진 북한 비핵화 해법
-대한민국 안보에 어떤 위협을 줄까.
"이번 회담으로 곧바로 결정될 것 같지는 않다.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이 북한에 제공되면 이는 한반도 평화에 큰 안보 위협이다. 북한이 무기 제공 대가로 식량과 에너지를 얻으면 경제적으로 버틸 힘을 일정 기간 얻는 것이니 한반도 평화에 일시적 충격이다. 그런 면에서 무기와 경제의 교환은 스몰딜이다. 반면 러시아의 첨단무기 기술은 북한 군사력을 불가역적으로 끌어올리니 우리에겐 영구적 충격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 재래식 무기와 러시아 첨단무기 기술의 교환인 빅딜이 훨씬 더 위험하다. 지금 구도에선 스몰딜 가능성이 크고 빅딜은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과 포탄 생산량을 증가하려는 러시아의 노력 결과에 달려 있다. 스몰딜이 빅딜로 갈 수도 있고, 스몰딜로 끝날 수도 있다."
-국제정치에 끼친 영향은.
"러시아나 북한은 지금 같은 지정학적 상황을 자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바꾸려고 시도했다. 북·러가 연대하고 서로를 대미·대서방 레버리지로 사용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과 비핵화에 가해 오는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의 변동성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북한을 통해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줄 수 있게 됐다. 북한 비핵화가 더 어려워졌다는 점도 문제다. 북한 비핵화가 미·중 패권경쟁과 연결된 것이 1차 충격이라면, 이번 북·러 밀착은 2차 충격이다. 북한 비핵화는 이런 지정학적 다중성을 동시에 풀어야 한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북한이 원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한 것은 따지고 보면 엄청난 도박이다."
북·러의 도박, 중국엔 잠재적 손실
-북·중·러 관계에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러시아는 '실패하고 있는 국가(Failing state)'이고 북한은 '이미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다. 일부에서 거론하는 북·중·러 구도 형성은 아주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국제 제재를 받는 북 ·러와 연합한다는 것이 중국엔 큰 매력이 아닐 수 있다. 북·러 회담 직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모스크바로 날아갔지만 북·러 밀착을 반기기보다 위험하다고 여길 것이다. 중국은 대북 영향력을 독점하고 싶어하지 러시아와 나누기를 원하지 않는다. 중국이 더 필요한 것은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북한이다. 중·러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북한은 중국에는 잠재적 손실이다. 러시아의 첨단무기 기술까지 넘겨받은 북한이 중국 말을 듣지 않는다면 중국은 북한을 대미 레버리지로 쓸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세 국가의 셈법이 달라 북·중·러 구도 형성이 말처럼 그렇게 만만치는 않다. 러시아는 북·중·러 연합 군사훈련을 원하겠지만, 중국이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북·중·러가 연합군사훈련까지 하면 미국과 서방은 중국을 더 멀리하며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고 그러면 중국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북·러에는 어떤 추가 제재가 가능할까.
"미국 하원이 북·러 군사협력을 제재하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개인·기업·기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포함해 대러 및 대북 제재를 강화할 것이다. 여기에는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 제조, 특히 포탄 제조 공급망을 균열시키는 제재를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포탄의 원료, 금속 외피, 화약 등의 공급망을 파악해 북·러로 들어가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미국은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해 대북 억지력을 증가시키려 할 것이다."
심각한 기능부전에 빠진 유엔
-유엔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쏴도 중·러의 반대로 유엔이 새로운 대북 제재를 부과하지 못했다. 그런데 더 위험한 것은 기존 대북 제재를 찬성한 러시아가 '기존 대북 제재는 우리가 아니라 유엔 안보리가 한 것'이라고 발뺌한 대목이다. 유엔의 기능부전이 심각하지만, 유엔을 개혁하거나 대체할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드는 것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필요한 대응 전략은.
"우리는 이제 유엔 외에 다른 다자 및 소다자 네트워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북·러 군사 거래에 대해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이라며 비판했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 합의와 8월의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협력 합의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합의를 조기 이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한국은 동북아 평화와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러시아가 장기적 견지에서 정책을 결정하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9·19 군사합의 폐기는 신중히
-바람직한 대북 정책은.
"대북 억지력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 핵이 남북의 최대 걸림돌임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위한 남북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열려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첨단무기 기술을 받은 것이 확인되거나 북한의 실제 도발이 있을 때는 9·19 군사합의를 폐기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먼저 폐기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북한이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북·러 밀착으로도 요행수 찾기에 실패해 아무것도 얻지 못한 북한이 '이거 도저히 안 되겠구나' 하는 진실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정책은 군사적 대응, 외교적 대화, 경제적 레버리지, 북한 정보화 등 네 축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이를 단계와 상황에 맞게 순차적으로 배열하는 복합순차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김병연 석좌교수=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학 경제학 박사. 경제체제 전환과 사회주의 경제, 북한경제 전문가. 대한민국 학술원상(2018년) 수상.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임근홍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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