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내게 불리하면 ‘가짜뉴스’?

김필규 입력 2023. 9. 22. 00:29 수정 2023. 9. 2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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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워싱턴특파원

“(미디어와 관련해) 내가 생각해낸 용어 중 가장 위대한 단어가 ‘가짜(Fake)’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방송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처음 언론 보도에 ‘가짜뉴스’라는 딱지를 붙인 것도 자신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이 뒤죽박죽된 것은 이즈음부터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팩트를 조작해 유포하는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거나, 클린턴이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팔았다는 식의 출처 불명 주장이다.

지난 19일 출근길에 “가짜뉴스가 도를 넘었다”고 말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혀 다른 의미로 가짜뉴스란 용어를 썼다. 퓰리처상을 받은 팩트체크 매체 ‘폴리티팩트’의 앤지 홀란 전 편집장에 따르면, 트럼프에게는 “자신의 정부와 성과에 호의적이지 않은 보도”가 가짜뉴스였다. 집권 기간, 가짜뉴스를 언급하는 빈도도 급격히 늘었다.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한창 트럼프의 비리를 폭로하던 당시, 한 달간 그의 트위터엔 ‘가짜’라는 말이 46번이나 올랐다. 하루 1.5회 이상 트럼프 홀로 가짜뉴스와 싸웠던 셈이다.

‘가짜’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의혹을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되니 그에겐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였다.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한 NBC방송을 향해선 “언론이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역겹다”며 “NBC의 사업권을 언제 박탈하는 게 좋겠냐”고 여론몰이도 했다.

얼마 전 한국에선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주식 관련 의혹 등에 대한 언론 보도를 두고 “가짜뉴스가 도를 넘었다”며 비난했다. 장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다. 제기된 의혹은 본인이 자청했던 출근길 인터뷰나 청문회에서 해명하면 될 일인데, 그는 일단 모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낙인찍었다. 문제는 트럼프식으로 가짜뉴스를 해석하는 이가 김 후보자뿐이 아니란 점이다. 지금 정부 여당에선 트럼프의 대응방식까지 따라 하려는 분위기다.

미국에선 일찌감치 이런 트럼프의 언론 대응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경고했다. 대통령 역사학자 마이클 베슈로스는 “트럼프가 언론 보도에 불평한 최초의 대통령은 아니지만, 차이점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생각했던 언론 자유의 필요성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유행했다고 해서 모두 우리 정부가 들여올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니다. 미국에서 위험한 건 우리에게도 위험하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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