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알고리즘 단체협약권
국내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알고리즘 개발과 기업 관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산업군은 단연 플랫폼 기업이다. 업무 지시와 고과 평가, 심지어는 징계까지 자동화된 알고리즘에 맡겨 수행토록 하는 ‘알고리즘 관리’가 이미 보편화한 상태다. 근미래가 아니라 지금 얘기다.
가령 쿠팡 물류센터는 입고된 물건이 알고리즘에 의해 임의의 위치에 보관되어, 알고리즘의 지시 없이는 물류창고 근무자도 물건 위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실질적으로 알고리즘이 ‘업무 지시’를 내리는 식이다. 카카오택시는 어떨까. 평균 별점과 콜 수락률이 낮은 택시가 배차 후 순위로 밀리게 되는 건, 알고리즘에 의해 ‘고과 평가’와 업무 배제라는 일종의 ‘징계’까지 동시에 수행되는 행태다. AI가 그저 기술적 보조를 하는 게 아닌 실질적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는 셈이다.
전통적 산업에선 중간관리자가 취업 규칙(사규)에 따라 이런 업무를 담당했다. 플랫폼산업에서는 그 역할을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진행한다. 그렇다면 전통적 산업에서 취업 규칙을 열람하고, 단체협약을 통해 개정하는 절차도 변용되는 게 맞다. 플랫폼 기업에 알고리즘의 열람을 요구하고, 알고리즘을 개정하는 소위 ‘알고리즘 단체협약’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회사 측에서는 ‘알고리즘은 회사도 정확히 모른다’라며 황당한 면피만 하고 있다.
물론 현재 인공지능의 이해도로는 알고리즘의 개별 요소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렇지만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서 ‘최적화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건 전적으로 회사의 결정사항이다. 어떤 손실함수(loss function)를 쓸지, 무엇을 우선순위로 놓고 알고리즘을 설정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모를 수도 없고, 몰라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최소한 이 부분을 중심으로는 충분히 노동자 측과 합의를 할 수 있다. 관련 법이 없고, 노동자가 잘 모를 뿐이다.
이런 입법 공백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청년세대다. 2021년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에 따르면, 플랫폼노동에 종사하는 2030 청년 비율이 전체 산업보다 확연히 높다. 전체 취업자 중 2030 비율이 35% 수준인 데 반해, 플랫폼산업에선 55%가 2030이라서다. 수도권 거주자 비율 역시도 전체 취업자(52%)보다 플랫폼산업(60%)이 높고, 여성 비율 4%포인트 정도 많다. 수도권 2030 청년세대, 특히나 여성 노동자의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 플랫폼노동에 종사 중인 것이다.
이렇듯 플랫폼 산업의 노동권 규제 책임을 외면하고 ‘청년 정책’을 말하긴 어렵다. 내년에 치러질 제22대 총선이 고작 200일가량 남았는데, 관련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되어 아쉬울 뿐이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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