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많았는데…美 SVB가 파산한 까닭은? [Deloitte 금융 인사이트]

2023. 9. 2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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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의 손실 흡수력 살펴보니

지난 8월 미국 와이오밍주 휴양지 잭슨홀로 전 세계 금융 시장 참가자 이목이 집중됐다. 매년 이맘때면 잭슨홀에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금융 시장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경제 정책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그리고 심포지엄의 첫날, 미국 통화 정책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기조연설이 진행됐다. 지난해 파월 의장은 기조연설에서 강성 매파로 돌변해 “물가 상승률을 통제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금리를 인상하겠다”며 시장을 뒤흔들었기에 이번 연설에 전 세계 눈길이 쏠렸다.

지난 3월 사람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입구에 게시된 표지판을 보고 있다. (AP)
지난해와 달리 올해 파월 의장은 향후 금리 인상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고 확신할 때까지 긴축적인 통화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연준은) 신중하게 진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과잉 긴축을 경계했다. 금리 인상폭이 현 상황보다 크게 높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하면서도,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는 여지를 둔 것이다.

미국 통화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따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시점도 요원해 보인다. 지난 8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하기로 했다. 올해 1월 이후 기준금리는 계속 높은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더구나 지난 7월 2.3%까지 낮아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월에 3개월 만에 다시 3%대로 올라서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기조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환율을 하락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가계부채와 기업대출에 부담을 준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은행 원화대출 부문별 연체율 추이를 보면 전년 대비 0.15%포인트가량 증가했다. 이는 금융기관 부실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대손충당금·손실 흡수력 보완 필요

예상 못한 시스템 리스크 고려해야

이런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기관은 대출채권 손상 인식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할 필요가 있다. 대손충당금은 회수 불능 추산액으로, 은행이 돈을 빌려줬으나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현시점에서는 떼인 것으로 잠정 결정한 회계 계정을 말한다. 현재 주요 은행 공시자료상에서는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코로나19 지원 조치가 종료되는 9월 이후 변동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증가 등 예상치 못한 시스템 리스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기관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은행들이 여유 있는 자본비율을 유지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손실 흡수력을 강화하도록 관리한다. 자본비율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최악의 경우 파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말 기준 SVB 자산은 2090억달러(약 276조원)로 고객이 맡긴 예금(1754억달러)보다 많았다. 그러나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며 예금의 많은 부분을 미국 국채와 정부보증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한 SVB 보유 채권 가격은 급락했다. SVB는 장기 국채를 다량 보유했기 때문에 채권 평가손실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으며, 지난해 말 손실액은 약 151억달러에 달했다. 추가적인 투자자산 평가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금융자산을 매각해 미실현 손실이 실제 손실로 인식됐으며, 뒤늦게 SVB는 추가 자본 조달에 나섰으나 실패하며 뱅크런이 발생했다. SVB 사태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 손실 흡수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더 강하게 요구된 사례라고 판단된다.

제도 정비 나선 당국

경기 순응성·시스템 리스크 대응

지난 3월 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설 등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의 위험이 커지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손실 흡수 능력 제고를 위한 건전성 제도 정비 방향’을 발표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은행 건전성 지표가 2021년 말 대비 지난해 말 하락 추세고, 연체율 또한 가계 부문을 중심으로 상승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코로나19 지원 조치에 따른 지표 착시 가능성을 고려하면 실제 연체율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위해 자본 적정성·충당금 제도 정비 방안을 제안했다. 자본 적정성과 관련해서는 전반적인 자본비율을 제고하기 위해 경기대응완충자본(CCyB)과 스트레스완충자본 제도 도입을, 충당금 제도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 요구권과 예상 손실 전망 모형 점검 체계를 구축하라는 내용이다.

2018년에는 금융기관의 경기 순응성에 대비하기 위해 IFRS9를 도입했다. 기존 회계기준은 손실이 발생한 경우(Incurred Loss) 대손충당금을 인식하는 반면, IFRS9에서는 미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신용손실(Expected Credit Loss)에 따라 충당금을 인식해 금융기관이 적시에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게 만드는 효과를 유도한다.

다만 SVB 사태와 최근 연체율 상승을 고려할 때, 예상되는 수준의 기대신용손실에 대한 충당금 적립만으로는 시스템적 리스크를 감당할 정도로 금융기관 손실 흡수력을 기대하기에 부족하다. 따라서 추가적인 자본 적정성·충당금 제도 정비 방안이 필요하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2010년에 도입한 금융기관의 바젤III 자본 규제 제도의 일부다. 이 제도는 경기 호황기에는 금융기관이 최저규제자본 이상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해 과도한 신용 팽창을 억제한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적립한 자본을 손실 보전과 대출 재원에 사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금융기관의 경기 순응성(Procyclicality)을 완화하고 급격한 신용 위축을 방지한다. 2016년 국내 도입 후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는 신용 공급에 따른 경기 변동이 금융 시스템과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은행권에 위험가중자산의 0~2.5% 범위에서 추가 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하며, 현재까지 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의 경제 불확실성을 고려해 지난 5월 24일 금융위원회가 정례회의에서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경기대응완충자본 적립 수준을 1%로 상향 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국내 은행과 은행지주회사는 결정일로부터 약 1년간의 자본 확충 기간을 거쳐 내년 5월 1일부터 1% 수준의 경기대응완충자본을 적립해야 한다.

규제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경기대응완충자본 부과 후에도 모든 은행과 지주의 자본비율이 규제비율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자본 확충 노력이 필요하다.

규제당국은 선제적으로 발표한 자본 적정성과 건전성 제도 정비 방안을 금융기관들이 단계적으로 충실히 이행할 수 있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지속적으로 신용의 증가, 연체율·BIS 비율 등의 주요 지표를 모니터링해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지 건전성에 대한 감독도 중요하다.

또한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들도 손실 흡수력 관련 투명한 공시를 위해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감독당국이 요청한 스트레스 테스트와 예상 손실 모형 개선을 위한 내부 보고 체계를 확립해 충분한 시나리오와 데이터 확보·검증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딜로이트 금융 인사이트 연재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조태진 한국딜로이트그룹 금융산업통합 서비스그룹 금융감사부문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7호 (2023.09.20~2023.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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