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와 치명 사이… 갈등하는 인간 그렸다

김남중 입력 2023. 9. 2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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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사랑과 혁명(전 3권)
김탁환 지음
해냄, 1권 628·2권 488·3권 452쪽, 각권 1만8800원
소설가 김탁환이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열린 ‘사랑과 혁명’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전남 곡성에 살면서 소설을 썼고 일곱 차례 퇴고했다고 말했다. 해냄 제공


김탁환(55)이 조선 후기 긴 천주교 박해 역사 중 하나인 1827년 ‘정해박해’를 소재로 한 세 권짜리 대하소설 ‘사랑과 혁명’을 출간했다. 그의 서른한 번째 장편소설이자 ‘불멸의 이순신’ ‘압록강’에 이은 세 번째 대하소설이다. 새 소설은 전남 곡성으로 거처를 옮긴 후 발표하는 첫 소설이기도 하다. 곡성 주민으로, ‘마을소설가’로, 책방 주인으로 살면서 농사도 병행하는 김탁환의 후반기 문학을 여는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난 19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김탁환은 “20년 정도 대도시에서 살다가 3년 전에 작업실을 곡성으로 옮겼다. 자연에 매료돼서 곡성에 내려왔는데 거기서 이번 소설의 핵심 공간인 곡성성당을 만나게 됐다”며 “성당에 복원된 감옥을 보는 순간 전기가 통했다”고 말했다.

김탁환은 10년 전부터 1800년대에 대한 작품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역사소설을 써온 그는 영·정조 시대인 1700년대를 다룬 ‘백탑파’ 시리즈를 썼고, 개화기 이후를 다룬 소설도 ‘리심’ ‘뱅크’ 등 여러 권 냈다. 그 사이에 있는 1800년대는 그에게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이어지면서 그는 역사소설 대신 ‘거짓말이다’ ‘살아야겠다’ 등 사회파소설을 쓰면서 6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김탁환은 곡성에 내려간 후 곡성성당을 만나고 마침내 1800년대를 다루는 역사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곡성성당은 ‘옥터성지’라고 불린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천주교 지도부가 와해된다. 한양에 남아있던 천주교인들이 전국으로 도망을 간다. 가장 멀리 도망친 곳이 곡성이었다. 도망친 천주교인들이 곡성의 골짜기에서 마을을 이루고 옹기를 굽고 숨어 살면서 믿음을 지켜나갔다. 이 사람들이 1827년 정해박해 당시 체포되는 데, 이들을 가뒀던 감옥이 있던 자리가 바로 곡성성당이다”라고 김탁환은 설명했다.

그는 곡성성당 옆에 있는 빈집을 빌려 살면서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사랑과 혁명’을 썼다. 그는 “처음에는 정해박해 이야기만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번 소설의 2권이 그 이야기다. 하지만 신유박해부터 정해박해까지 신부도 없는 상황에서 천주교인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한 세대를 버텨낼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서울에서 내려왔고, 곡성에서 마을을 만들었고, 유교적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고, 노동과 영성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자료를 찾아봐도 교우촌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어서 이걸 제대로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권에 그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3권은 정해박해로 수감된 이들의 이야기다. 천주교 박해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정해박해 당시에는 처형이나 귀향을 최소화하고 주동자들을 감옥에 넣은 채 1839년까지 12년간 살려둔다.

작가는 배교와 치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특히 옥중수기를 쓴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당시 신태보가 쓴 옥중수기가 프랑스 신부의 기록에 남아 있다. 소설은 그가 어떻게 옥중수기를 쓸 수 있었는지, 그 수기가 어떻게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지, 더구나 조선을 넘어 프랑스까지 수기가 넘어갔는지 추적한다.

‘사랑과 혁명’은 원고지로 6000매, 책으로는 세 권을 합해 1500쪽이 넘는다. 김탁환은 “대하소설은 독자도 싫어하지만 작가도 기피하는 장르”라면서도 “하지만 이야기에는 그에 어울리는 꼴과 분량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권만 쓰고 지나가는 건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다. 잡혀온 사람들 중 상당수가 배교를 하는데 믿음이 약해서 배교를 했구나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돈, 가족, 신분, 이름까지 다 버리고 한양에서 도망쳐 곡성까지 내려온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전사를 보여주지 않으면 배교를 설명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들을 일종의 사상범으로 조명하고 싶었다.”

김탁환은 독자들이 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장르적인 요소도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또 1권은 사랑, 2권은 믿음, 3권은 희망으로 주제를 잡았고 스타일에서도 1권은 고백록, 2권은 추리물, 3권은 탈옥기 등으로 차이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소설을 쓰면서 옛날 이야기 쓴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역사소설을 쓰지만 정치소설을 쓰는 것이다, 역사를 가지고 당대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얘기해왔다”면서 “이번에도 1800년대 암흑기를 쓰면서 암흑기를 살아나가는 방법으로서 마을이라는 주제, 공동체라는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김탁환은 천주교 신자는 아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책을 내면 동네책방을 많이 다녔는데 이번에는 성당이나 교회에 가고 싶다”면서 “크리스천 분들과 1800년대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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