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사우디에 안보 공약할까…"美 중동 외교 대전환"
美 친공화 성향 폭스뉴스와 인터뷰
"팔레스타인 독립" 조건 내걸어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협상을 진전시키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안보 공약'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우디가 국교 정상화의 대가로 그간 미국의 대외 정책과 정면 배치되는 요구를 이어가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재편 전략은 안갯속에 빠졌다.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치적 쌓기가 절실한 상황에서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독립', '이란 핵 문제' 등 출구 전략 없는 협상 포인트를 내던지고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20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독립)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며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모든 협상에서) 이 부분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담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매일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숙적인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을 걱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어떤 국가든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서 "그것(핵무기 보유)은 나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핵무기를 얻으면 우리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인터뷰는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외교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와중에 나왔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의 전제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출범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데엔 이유가 있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이후 적국이 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70년 넘게 크고 작은 전쟁으로 복수의 고리가 이어져 왔고, 아직도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양보를 요구했다.
본격화되는 국교 정상화 협력 논의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협상력에서 우위를 가져가겠다는 의도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스라엘 현 정권이 극우 성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양보가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양국 관계 정상화를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내세울 수 있는 잠재적 외교 성과로 주목하고 있다. 내년 대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지지율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외교적 치적 쌓기가 절실한 상황이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공식 외교 관계가 복원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이 속도를 내면서 대선 가도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IMEC에서 인도와 유럽을 잇는 핵심 고리가 사우디~이스라엘 구간을 철도로 연결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양국 간 수교가 필수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위해 연내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약 체결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미국과 사우디 양국은 안보 보장, 이란 핵 문제 등 양자관계 핵심 현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사우디가 미국이 한국과 맺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미일 안보조약'과 유사한 군사 협력 체결을 논의하고 있다.
인권 중심 가치외교로 사우디를 철저하게 배제해 온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외교의 대전환인 셈이다. 미국은 최근까지 이란과 상호 수감자 맞교환 협상을 타결하는 등 사우디의 숙적인 이란에 유화적인 모습까지 보여왔다.
NYT는 "지난 대선 캠페인에서 빈살만 왕세자를 '국제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며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정상화 추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을 도박"이라고 했다. 외신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 측 요구를 수용하게 되면 2018년 10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계기로 크게 틀어진 양국관계와 미국의 중동 정책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양국 간 전향적인 협력이 미 의회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안보 조약이 상원에서 동의를 얻으려면 상원 100석 중 67표가 필요한 상황이다. NYT는 "민주당과 공화당에서는 미국의 이익이나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무함마드 왕세자를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보고 있어 미 의회의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 관측했다.
중동 언론 더내셔널은 빈살만 왕세자가 이번 인터뷰에서 친공화당 성향의 극우 언론인 폭스뉴스를 택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빈살만 왕세자가 미 언론 매체와의 단독 인터뷰를 가진 것은 양국 관계가 악화된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가운데 친공화당 성향의 극우 언론을 선택하고, 이스라엘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건드린 것은 이를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번 인터뷰는 바이든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 직후 방영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총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뉴욕에서 1시간 동안 네타냐후 총리와 회동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연말 재집권한 뒤 9개월여 만에 이뤄지는 첫 대면 회담이다.
오랜 우방국인 양국 정상의 만남이 늦어진 것은 팔레스타인 정책과 사법 무력화 시도 등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는 상황이 반영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내 커지는 이스라엘 극우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네타냐후 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파트너십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을 포함한 민주 가치를 수호하고, 협상을 통한 두 국가 해법으로 가는 길을 보존하며, 이란이 핵무기를 절대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역사적인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며 "이 평화는 오래 유지되면서 이슬람권과 유대 국가의 화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진정한 평화를 진전시킬 것"이라고 화답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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