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 퍼진 캘리포니아 해변…바다사자들, 사람 공격했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붉은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③기후변화로 고통 받는 해양생물들
“주의: 긴급 치료 중인 해양 동물 격리 구역. 들어오지 마세요.”
지난 7월 22일, LA해양동물구조센터 입구에는 이런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항구 도시 샌피드에 있는 주내 최대 규모의 구조센터다. 센터에 도착하기도 전에 “끄억, 끄억”하는 바다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구조센터 내부는 분주했다. 10㎡ 정도의 우리에 바다사자 서너 마리가 늘어져 있거나 울며 뛰어다녔다. 구조센터는 비상 상황이었다. 센터 관계자는 “(동물)환자가 너무 많아 구조 외 모든 활동 중지하고 있다”며 5분 대화도 어렵다고 인터뷰를 피할 정도였다. 캘리포니아 연안은 바다사자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라구나비치시 태평양해양동물센터의 도널드 커스틴 해양홍보교육 부대표는 “캘리포니아 연안에 퍼진 유해 조류 탓에 해양 포유류가 떼죽음을 당하고, 생존 동물은 뇌 해마가 손상돼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소를 씻어내기 위해 수분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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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환경에서 죽어가는 바다사자들
이날 오전 10시, 바다사자 관찰 명소인 샌디에이고 라호야 코브에서는 한 바다사자가 갑자기 사람들에게 돌진하려는 자세를 취해 관광객이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목격했다. 최근 바다사자가 사람을 공격하는 안전사고가 몇 차례 발생했기에 관광객들의 공포감이 컸다. 곧 “바다사자와 충분한 거리를 두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과학자들은 최근의 이상 현상들이 캘리포니아 앞바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선 도모산 확산은 5~6월 캘리포니아 앞바다 해수온도가 급격히 올라 유해 조류가 대량 번식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기상 당국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런데 바로 앞서 4월 캘리포니아 앞바다는 기록 이래 가장 낮은 수온을 경신했다. 유엔세계기상기후(WMO)가 올 4월 전 세계 바다 수온이 사상 최고치였다고 발표한 것과 반대되는 극단적 현상이다. 델마르 수온 측정소는 지난 4월 화씨 53.5도(섭씨 11.94도)까지 떨어져 이 지역 최저치를 기록했다. 델마르 해변에서 만난 현지 주민 제이 제이는 “여기서 30년 정도 살았는데 지난 봄처럼 추운 때가 없었다”고 했다. 델마르시 소속 해변 안전요원 알렌 크레이도 “지금 보듯 날씨가 아름다운 지역인데, 올봄은 이례적으로 추웠다”고 말했다.
8월에는 사실상 처음으로 캘리포니아 남부에 허리케인 ‘힐러리’가 상륙해 미국의 서남부 일대를 휩쓴 것도 과학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매해 허리케인이 수차례 상륙하는 미국 동남부와 달리 캘리포니아는 허리케인이 상륙하지 않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올해는 허리케인이 도로를 파손하고 사막에 홍수를 일으키며 서남부 지역 강수 기록들을 경신했다.
캘리포니아 용승 시스템에 변화 생겼나
4월의 추위는 강한 용승의 영향이고, 이와 함께 올라온 많은 영양소가 5~6월 급격한 해수온도 상승과 함께 유해 조류의 번식을 더 심화시켰다는 주장이다. 지난 7월 네이처에는 캘리포니아 앞바다의 해양열파와 해양한파가 이상 용승과 관련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다. 40년간 캘리포니아 중부 지역 앞바다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해양열파 발생 전후로 용승 수준이 약해지고 해양한파 발생 전후로 용승이 강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앞바다의 봄철 용승이 강해지고 여름철 용승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류 번식에 이어 허리케인이 상륙한 건 캘리포니아 앞바다의 ‘지킴이’가 제 역할을 못한 탓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엘니뇨 본격화하지도 않았다…진짜 위기는 내년”
앤드류 라이싱 미 연방 해양대기청(NOAA) 서남부 어류 과학 연구소 박사는 “용승은 바람이 일으키는 작용인데, 바람을 일으키는 고기압과 저기압의 위치, 강도, 패턴이 달라지면 당연히 용승 작용도 다르게 일어난다”며 “올해 이 지역의 고기압과 저기압은 각각 강하게 나타났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 날씨 문제는 북극 온난화와 관련이 있다. 빠른 북극 온난화 탓에 북극 상공 제트기류의 변동성이 커졌다. 이는 북반구 기압계에 영향을 주는데, 이로 인해 바람 양상이 달라지면 장기적으로 해류의 흐름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기상학계가 더 우려하는 점은 이 모든 변화가 엘니뇨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전에 벌어졌다는 점이다. 라이싱 박사는 “엘니뇨 영향이 본격화하는 올 겨울, 높은 수온 탓에 캘리포니아 연어 등의 생식 활동에 지장이 생기면 어업 생산량이 1~2년 뒤 크게 감소할 수 있다”며 “(이상 현상은)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용승으로 인한 풍부한 영양 덕에 전세계서 손꼽히는 ‘황금어장’이었던 캘리포니아 앞바다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올해 3월 과학 연구 저널 프론티어에 실린 ‘기후변화에 취약한 캘리포니아 광역해양생태계 어장’ 논문에서는 이 지역의 연어류와 상어·참다랑어·볼락류를 기후변화 최고 취약층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커스틴 부대표는 “해수면 온도가 따뜻해지면 물고기들은 찬 물을 찾아 태평양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며 “이 말은 연안 포유류의 먹이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해양 생태계 먹이 사슬이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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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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