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포착하던 냉철한 ‘눈’ 한국문화 바로알리기 앞장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남 영암군에서 무분별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 이때 한 집안의 가장이던 강현수씨는 집 앞에서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자녀들이 발견 후 집안으로 옮겼고, 곧이어 성경책을 품에 안고 죽음을 맞이했다.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1975년 후손들은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 동안 사진기자로 근무하며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강형원(60·사진) 포토저널리스트의 친할아버지와 가족 이야기다. 지난 14일 서울에서 만난 강 기자는 “미국에서 중학생 때부터 성경을 인생의 교과서 삼아 공부했다”며 “두 번의 퓰리처상 수상은 오랜 세월 축적된 한국인의 DNA 덕분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강 기자는 1993년 LA타임즈 기자로 활동할 당시 ‘LA 4·29 폭동’ 취재로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1999년 AP통신 워싱턴지국 사진부 총괄 디렉터로서 미국 대통령 클린턴과 르윈스키 스캔들 취재로 팀원들과 함께 두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강 기자는 100만 부 이상 발행되는 미국 주류 일간지 및 세계 최대 통신사에서 활동하는 내내 바이라인(byline)으로 한국 이름(Hyungwon Kang)을 그대로 사용했다. 실력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강 기자는 사진 한 장을 통해 ‘언제, 어디에서, 어떤 맥락으로 사건이 발생했는지’와 함께 사건에 담긴 의미를 담으려 노력했다. 1992년 4월 29일 LA 폭동 당시 강 기자는 방탄복을 착용하고 독점취재에 나섰다. 경찰이 한인타운에서 철수한 상황에서 직접 총을 들고 거리에 나와 한인타운을 지킨 한국계 청년들의 용감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미디어에 소개된 강 기자의 사진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아시아인과 소수민족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30대 후반 강 기자는 LA타임스에서 AP통신 워싱턴지국 사진부 총괄 디렉터로 스카웃 됐다. 강 기자는 “AP통신의 전 세계 최대규모 지국이자 분야별 최고의 역량을 갖춘 이들이 모인 집단에서 리더는 직위가 아닌 행동으로 존경받아야만 팀을 잘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곧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강 기자는 1999년 지국의 취재단과 함께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으로 자신만의 리더쉽을 증명해 냈다.
강 기자는 1987년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취재하러 왔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외국에서 접하지 못한 한국의 문화와 역사 자료에 매료돼 ‘평생교육’도 수강하며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언론사에서 활동하며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문명들을 이야기할 때 단연코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국제사회에 소개되는 한국 관련 자료는 어색한 영어로 어설프게 표현돼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이후 2020년 미국에서의 기자 활동을 마무리한 강 기자는 자비량과 재능기부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홀로 전국을 누비며 ‘비주얼 히스토리 오브 코리아’(Visual History of Korea) 프로젝트를 펼치며 유무형 유산은 물론 자연유산, 천연기념물까지 60여 개의 아이템을 취재했다. 그중 25개 아이템을 엄선해 지난해 책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을 펴냈다. 책에는 고인돌, 경주 첨성대, 팔만대장경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부터 민간 인쇄 조보, 이순신, 독도, 온돌, 한지 등 ‘한국의 찬란한 역사’와 ‘한국의 고유한 유산’이 사진과 함께 한국어와 영어로 소개돼 있다.
강 기자는 “사진은 전 세계의 공통언어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한다. 또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요즘 강 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의 학교와 교회, 기업 등을 방문해 한국의 문화유산을 알리고 다음세대를 세우는 강연에 열심을 내고 있다. 강 기자는 1443년 훈민정음을 만들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도록 한 세종대왕, 성(城)을 건축하며 노동자들에게 능력에 따른 합당한 임금을 지불한 조선의 임금 정조를 예로 들며, “우리 역사에 기록된 시대를 앞서간 지도자의 행보를 통해서 다음세대가 올바른 비전을 세우길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강 기자는 “한국에는 성공하고 싶은 사람,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나라의 주인이 되겠다는 사람이 너무 없다. 재산의 축적이 성공의 척도라는 왜곡된 시각으로는 건강한 인생,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며 “교회와 기독교지식인들이 다음세대의 잘못된 가치관을 바꿔주기 위해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비전을 전했다.
박성희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침, 교단이 은퇴선교사 노후 챙긴다… 주거 지원안 전격 통과 - 더미션
- 이주민 합창대회 열고… 13개국 미니 월드컵 ‘골잔치’… 한국교회, 다문화·다민족 끌어안는다
- 한국선교 1번지에서 기독교의 심장으로… 종로5가엔 꿈이 자란다 - 더미션
- 탈기독 바람 거센 영국의 심장서 복음 불꽃 뜨겁게 타올랐다 - 더미션
- 초중고 도서관에 낯뜨거운 음란도서가 웬 말… 1200여권 버젓 - 더미션
- “하나님 나라 확장” 헌신했는데… 남은 건 병든 몸·빚의 굴레 - 더미션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
- ‘2024 설 가정예배’ 키워드는 ‘믿음의 가정과 감사’
- 내년 의대 정원 2천명 늘린다…27년 만에 이뤄진 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