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년제 폐지, 대학 교육 개혁의 첫걸음
[이정순 기자]
▲ 비정년제 완전철폐와 동일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하며 한달째 걸려 있었던 현수막. |
ⓒ 이정순 |
교수직은 철밥통이란 말이 어울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번 교수가 되면 은퇴할 때까지 별 어려움 없이 고액의 임금과 각종 혜택을 누리던 시절 말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그 유명한 '노동의 유연성'이란 개념이 교수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이제 교수도 어떤 유형의 교수인지 따져야 하는 세상이다. 교수의 종류가 하도 많아서 어떤 대학은 전임교수만 7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단다. 지금도 일부는 철밥통을 두드리며 은퇴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교수들은 대졸자 평균 임금도 못 받으며 수많은 업무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고되게 살아가고 있다. 2023년 한국 대학의 슬픈 현실이다.
현재 대한민국 대학의 전체 전임 교수들 중 대략 30~40%가 무늬뿐인 교수들이다. 이들을 '비정년트랙 교수'들이라고 부른다. 대학판 비정규직, 대학판 카스트 제도의 핵심 키워드이다. 다들 쉬쉬하며 대학 웹사이트 정보공개란에도 비밀로 처리한다. 그래서 정확한 통계를 산출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전임교수이므로 교육부 평가 시 전임교원확보율에 당당히 기여를 하면서도, 실상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불의한 시스템의 희생자들이다. 전임 교수 1명 쓸 돈으로 2명을 저임금으로 고용해서, 매년 1~2년 단위로 재임용이라는 목줄로 잡아 쥘 수 있으니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편한 제도인가?
벌써 이 불의한 제도가 한국 대학가에 자리 잡은 지 20여 년이 지났다. 이들은 주당 12~26시간을 강의하고, 연구와 학생지도에 몰두해야 하며, 또 수시로 각종 특별사업에 동원되는데도 진급과 보직의 기회, 각종 회의 참여를 거부당하고 있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투명인간 신세다. 이들은 교육의 주체이면서도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10년 이상을 일해도 연봉 3000만 원대에 머무르는 만년 저임금 노동자인 것이다.
어떤 비정년 교수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자기 아들의 월급보다 자기 월급이 작다고 한탄한다. 또 어떤 교수는 교수라는 명함조차 내밀기 부끄러울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이라고 토로한다. 13년이나 근무하고 퇴직한 어떤 비정년 교수는 만년 조교수로 열심히 강의만 하고 은퇴해 버렸다. 단 한 번의 연구년 혜택도 누리지 못 하고, 승진도 못 하고, 수당도 못 받고 말이다. 비정년 트랙 교수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법률적 근거가 없는 기형적인 제도가 계속 대학가에 영향을 끼치는 데도 소수만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앞장서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노력이 결과를 맺은 것일까? 최근 평택대학교가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제도'를 없애고, 비정년트랙 교수 22명 전원을 정년트랙으로 전환시켰다. 교수사회 신분제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비정년계열 폐지가 전국 최초로 이루어진 것이다. 축하하고 환영할 일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철옹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18년 8월 헌법재판소에서 노동조합 설립이 가능한 교원의 신분을 초중고교 교사로 제한한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후 대학 교수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평택대가 비정년트랙 교수제를 전격적으로 폐지한 데는 전국 대학 곳곳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교수 노조들이 크게 영향을 끼쳤으리라 확신한다.
이제 교수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다. 이 말은 지식 노동자로서 노동한 만큼 당당하게 그 댓가를 요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신분에 관계 없이 동일한 가치의 노동은 동일한 대가로 지불받아야 한다. 파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파이는 나누라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품격을 지닐 만큼 누구든 공평하게 나눠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학의 공동선(共同善)이 실현된다. 그래야 대학은 진리탐구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다.
대학은 본연의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아무리 학령인구가 줄어든다 해도 진리탐구의 사명을 다하는 곳이 대학이다. 큰 배움터가 대학인 것이다.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시대를 이끌어 가는 곳이 대학이다. 기능인, 전문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대학의 부차적인 기능이지 본연의 기능이 아니다. 참된 지성인,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어 내는 곳이 대학이다. 인간의 기본권리가 침해받지 않고 먼저 온전이 실현되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정년, 비정년 따위의 차별을 속히 철폐하고 자격을 갖춘 지식 노동자라면 누구든 즐겁고 보람있게 가르치고 연구하는 곳이 대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대학의 본질을 고민할 때다. 교육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정책전환과 재정투자가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 대학의 지식노동자 스스로 대학의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변화시킬 때이다. 이번 평택대학교의 혁신이 등불이 되어 많은 대학들에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제도라는 시대의 기이한 제도가 폐지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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