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담요로 시작…몸에 필요한 건 多 만든다
부정맥 가운데 가장 흔하고 무서운 증상이 ‘심방세동’이다. 보통 심장은 쿵쾅쿵쾅 뛰는데, 심방세동일 경우 미세하게 떨리고 그만이다. 이때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서 응고되는데, 이게 바로 혈전(피떡)이다. 혈전이 돌아다니다 뇌혈관을 막으면서 뇌졸중이 발생한다.
혹시 나도 부정맥은 아닐까? 병원에 가서 심전도 검사를 받는 게 그동안은 부정맥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집에서 ‘가정용 혈압기’로 혈압을 잴 때 부정맥이나 심방세동을 확인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한 기업이 있다. 독일 헬스&웰빙가전 전문 업체 ‘보이러’다. 가정용 혈압기로 이미 전 세계 시장에서 유명한 보이러는 가정용 혈압기에 부정맥과 심방세동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고 이 기능으로 특허를 받았다.
최근 2023 독일 국제가전전시회(IFA)에서 이 제품을 최초로 선보이고 바이어들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은 보이러 측은 “부정맥과 심방세동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뿐 아니라 ‘지금 안정됐으니 혈압을 재면 된다’고 알려주는 기능도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고 밝혔다. ‘화이트 코트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병원에서 혈압을 재면 유독 높게 나오는 증상을 가리킨다. 보이러가 특허받은 혈압기는 이 같은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셈이다.
보이러는 1919년 독일에서 설립된, 헬스·웰빙 분야 유럽 1위 기업이다. 메디컬, 웰빙, 뷰티, 헬스, 베이비케어 등의 분야에서 500개가 넘는 제품을 생산한다.
보이러 역사는 1차 세계대전 때인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온 유럽이 에너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처럼,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역시 에너지 문제로 난방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추위로 고생하던 독일인들이 기댈 것은 뜨거운 물을 넣은 보온 용품 정도였다. 당시 독일 남부 ‘울름’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던 캐테와 유진 보이러 부부는 천 위에 전선을 올리고 온도 자동 조절 장치를 연결한 후 재봉틀로 박아 담요 형태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재봉틀 2대로 시작했다는 보이러 창업 스토리의 시작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전기담요는 다소 조악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공간 전체 공기를 데우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반면 신체 일부 필요한 곳에만 정확하게 열을 전달하는 데는 훨씬 적은 에너지가 들어가면서 체감 효과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열기기지만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구조도 아니다. 일반적인 전열기기는 1000W짜리도 있는 반면, 전기담요는 60~100W면 충분하다.
과열되면 작동을 멈추게 하는 ‘안전 시스템’을 처음 적용한 업체도 보이러다. 이 안전 시스템은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 판매되는 모든 전기담요 필수 인증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전기담요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이러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남아 있다.
1980년대까지 독일 전기난방 분야 시장점유율이 75%에 달할 정도로 전기난방 분야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던 보이러는 이후 헬스와 웰빙 분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가정용 혈압 측정기, 혈당 측정기 등이 헬스 분야 제품이라면 웰빙 분야 대표 제품은 생리통 완화 전기자극기, 휴대용 안마의자, 적외선램프 등이 있다.
생리통 완화 전기자극기는 사용했을 때 90% 이상 생리통이 완화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주로 북유럽에서 판매된다는 적외선램프는 긴긴 겨울, 햇볕을 거의 보지 못해 우울해지기 십상인 북유럽인을 위한 인공 햇빛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북유럽 외 지역은 물론 최근 한국에서도 가정용 근육통 치료 목적으로 구입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전기담요로 시작해 헬스&웰빙 기업으로 진화한 보이러의 다음 비전은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드는 기업’, 일명 ‘Full Body Solution’ 업체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와 M&A에 적극적인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다. 마르코 뷸러 보이러 회장은 “ ‘Full Body Solution’이라는 기치 아래 보이러가 접근하지 못한 영역의 제품을 갖고 있는 기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을 인수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은 대표적인 사례가 관련 앱이 포함된 비상팔찌다. 팔찌를 착용한 사람이 넘어지는 등 다양한 이유로 이상 상태가 감지되면 저장된 비상연락처 6개와 비상콜센터에 자동으로 비상알림이 보내지는 게 핵심 기능이다.
24시간 운영되는 비상콜센터에 숙련된 전문가가 상주하는 것은 물론이다. 팔찌 착용자가 의식이 또렷하거나 거동을 할 수 있다면 버튼을 눌러 수동 모드로 전환하고 다음 단계를 컨트롤할 수 있다. 이 팔찌를 직접 착용하고 있다는 거트루드 씨(84)는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2000년대 헬스&웰빙 분야 유럽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보이러는 2007년 ‘독일에서 가장 혁신적인 100대 중견기업’으로도 선정됐다.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 자회사와 파트너 형태로 진출해 있고 직원 1700명이 올리는 연간 매출액은 1조원에 육박한다. 2023년 9월 보이러코리아를 설립하고(대표 김용성) 한국에 보이러 제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 ‘Full Body Solution’이 보이러의 비전”
Q. 전기담요로 시작해 헬스&웰빙 기업으로 진화한 보이러의 다음 비전은 무엇인가.
A.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드는 기업’이다. 이전까지는 소비자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앞으로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가 되고 싶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혈압 측정기만 만들어 팔았다면 지금은 그 혈압 측정기와 연결한 앱도 서비스하는 식이다. 혈압 측정기를 앱에 연결해놓으면 혈압 추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의학적인 진단이나 치료가 필요할 때도 유용한 것은 물론이다.
Q. 최근 스타트업 투자와 M&A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또한 보이러의 비전과 연결이 되는 내용인가.
A. ‘Full Body Solution’이라는 기치 아래 보이러가 접근하지 못한 영역의 제품을 갖고 있는 기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2023 IFA에 들고나온 ‘앤트로피’ 브랜드의 ‘EMS(Electric Muscle Stimulation·전기근육자극) 피트니스 슈트’는 2015년 앤트로피를 인수한 후 일궈낸 성과다. EMS 기능이 적용된 앤트로피 운동복을 입고 운동하면 일반 운동복을 입고 운동한 것 대비 훨씬 강한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
Q. 앤트로피 외에 다른 기술이나 기업도 궁금하다.
A. 최근 선보인 비상팔찌는 센서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생산할 수 있었다. 앱과 센서가 내장된 팔찌를 착용한 노인의 움직임을 감지해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비상알림을 보내주는 팔찌로, 최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23 IFA 보이러 기자간담회 때도 많은 기자들이 이 제품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젊은 세대 다가가기 위해 ‘뷰티’에 방점 찍어”
Q. 2023 IFA의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Sustainable)’과 ‘친환경(Green)’이다. 보이러는 이 키워드에 맞춰 어떤 제품을 선보였나.
A. 보이러 역사는 전기담요로부터 시작됐다. 보이러는 이번 IFA에서 ‘New Green Planet Line’ 전기담요를 선보였다. 전기담요를 감싸고 있는 커버와 포장재 등 거의 모든 자재를 재활용 원료로 만든 라인이다. 소비자 조사를 해보니 ‘재활용 원료로 만든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행스럽게도 재활용 원료를 활용한 제품 커버가 기존 제품보다 훨씬 부드럽고 괜찮다는 평이다. 보통 재활용 원료로 만든 제품은 재활용 처리 비용이 추가로 들어 재활용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비싸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보이러 전기담요는 재활용 라인과 일반 라인 가격이 다르지 않다. 원가가 저렴한 해양 쓰레기 플라스틱을 활용한 덕분이다. 이동용 안마의자 커버 역시 재활용 원단이다.
사실 보이러는 역사부터 ‘지속 가능성’ ‘친환경’과 관계가 깊다. 첫 제품인 전기담요 자체가 전기를 적게 소모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온기를 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Q. 매년 IFA에서 50여가지 신제품을 선보인다고 들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어떤 신제품을 들고나왔는지 궁금하다.
A. 올해 선보인 신제품 중 대표작은 부정맥과 심방세동 감지가 가능한 가정용 혈압 측정기와 ‘Insect Bite Healer’라는 제품이다. 벌레에 물리거나 쏘였을 때 가려움증과 붓기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Insect Bite Healer’는 필수품이라 할 수는 없어도 있으면 상당히 유용한 삶의 질에 도움을 주는 제품이다. 화학첨가물 없이 온찜질만으로 증상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에 특히 임산부에게 유용하다.
Q. ‘Full Body Solution’ 중에서도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이 있다면.
A. 최근 뷰티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젊은 세대에는 결국 뷰티가 헬스와 동의어기 때문이다. 보이러도 젊은 층에 더욱 어필하기 위해 뷰티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제모를 위한 IPL 기기라든지 각종 덴탈 기기, 매니큐어와 패디큐어 기기에 힘을 주는 식이다. 기술이 크게 필요할 것 같지 않은 품목들이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제모기의 경우 쿨링 기능을 도입해 피부 손상이 덜 되게 만들었다.
(베를린(독일) = 김소연 부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7호 (2023.09.20~2023.09.26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잊혀지는 메타버스...전력투구하던 컴투스, 결국 구조조정 돌입 - 매일경제
-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별세 - 매일경제
- 삼성·현대 손잡을까...삼성SDI, 현대차에 배터리 공급 임박 - 매일경제
- 여의도 한양 초호화아파트되나… 디에이치vs오티에르 대결 - 매일경제
- “야구만큼 이마트도 신경을”...‘용진이 형’ 행보에 이마트 주주들 ‘뿔났다’ - 매일경제
- [단독 인터뷰]‘전지적 독자 시점’ 싱과 숑 “10년 집콕...불규칙한 일상에 병원행 잦아” - 매일
- 배당 쏟아지는 ‘우선주’...LG화학우, 현대차우 인기 - 매일경제
- 이낙연주가 다시 뜬다?...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요동친 정치 테마주 [오늘, 이 종목] -
- 4인승 가격이 2100만원?...12년 만에 나온 기아 레이 EV 2세대 모델 - 매일경제
- 서브원, 세스코 등 5개사와 ‘안전방재 솔루션 구축’ MOU 체결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