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딧물 공격 받자, 이웃 식물에게 SOS…협공의 비밀 풀렸다
농업과 원예 작물에 큰 피해를 내는 진딧물.
일부 식물 종들은 공기 중에 화학물질을 내뿜는 방식으로 진딧물 공격에 대항한다.
특히 이웃에 있는 식물에 신호를 보내 협공하는 다양한 사례가 수십 년 전부터 파악됐다.
하지만 식물 사이에 신호를 주고받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비밀이 풀렸다.
중국 칭화대 연구팀은 담배 친척뻘 식물(Nicotiana benthamiana)이 진딧물에 대해 '공중 방어(airborne defence)'를 벌일 때 그 바탕이 되는 유전적·분자적 메커니즘을 분석해 밝힌 논문을 네이처(Nature) 저널에 최근 발표했다.
NAC2 없으면 진딧물에 취약
NAC2의 유전자를 제거한 이 식물이 진딧물의 공격에 약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관찰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단백질은 '전사 인자'로, 전사(transcription) 과정, 즉 특정 유전자로부터 RNA를 합성하는 과정을 조절한다.
DNA 특정 부위에 결합해 RNA 중합 효소에 영향을 줘 전사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바로 전사 인자의 역할이다.
NAC2은 구체적으로 살리실산 카르복실 메틸트랜스퍼라제-1(SAMT1)이라는 효소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NAC2는 이 SAMT1 효소를 많이 생산하도록 조절하고, 이 SAMT1 효소는 살리실산 메틸(MeSA)이란 물질을 합성한다.
식물이 진딧물의 공격을 받으면 식물 세포 안에 만들어져 있던 MeSA라는 물질이 공중에 방출된다.
인근에 있던 식물은 이 MeSA라는 물질을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 MeSA 신호를 인식하는 것은 살리실산 결합 단백질-2(SABP2)이다.
이 SABP2가 MeSA의 수용체, 즉 수신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살리실산으로 공중 방어
이렇게 이웃 식물은 체내에 생성된 SA를 공중에 뿌린다.
SA라는 물질이 화학무기가 돼 진딧물 공격을 막고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 사용된다.
여러 식물이 한꺼번에 SA를 뿌리면서 진딧물을 에워싼 공중 방어가 시작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진딧물의 공격을 받은 식물이 공중에 MeSA 방출하고, 이웃 식물의 SABP2가 MeSA를 받아들여 SA로 변환시킨 뒤 공중 방어가 시작된다.
진딧물도 바이러스로 '역 방어'
오이 모자이크 바이러스와 같은 일부 진딧물이 옮기는 바이러스가 식물의 방어 레이더인 NAC2 전사 인자 단백질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연구팀은 파악했다.
오이 모자이크 바이러스 유전자에서 나온 CMV1a 단백질이 NAC2를 파괴하면 식물의 방어망이 뚫리게 된다.
진딧물이 옮기는 바이러스가 진딧물의 생존과 침입을 돕는 방향으로 역방어(counter defence)를 진화시킨 셈이다.
연구팀은 "식물은 곰팡이나 세균, 바이러스, 초식 동물 등의 공격 같은 생물학적 스트레스 요인에 대항해 식물 간의 의사소통이나 신호 전달 체계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해충의 침입이나 병원체 감염 등에 대한 광범위한 작물 저항성을 개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MeSA는 콩·고추·복숭아와 같은 수많은 식물 종이 진딧물 공격을 받았을 때 배출되는 주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이지만, 딱정벌레의 공격이나 인위적 상처가 발생했을 때는 거의 배출되지 않는 VOC 종류다.
식물의 MeSA와 SA 방어 체계는 진딧물 공격은 막을 수 있지만, 딱정벌레 공격까지는 막지 못한다는 얘기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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