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美 '수출 통제' 소송서 사실상 승소…유럽 수출길 숨통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가 경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독자 원전 수출을 막기 위해 미 법원에 제기한 소송이 약 1년 만에 각하됐다. 한수원이 사실상 승소에 가까운 결과를 받아들면서 흔들리던 원전 수출길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19일 한수원 등에 따르면 18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한수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웨스팅하우스 측이 제기한 소송을 각하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으로 대표되는 '한국형 원전'이 미국 원자력에너지법상 수출 통제 대상인 자사 기술을 활용했다면서 미국 정부 허가 없이 수출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걸었다. 만약 미 법원이 웨스팅하우스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한수원이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웨스팅하우스가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수출 통제 규정(미국 연방규정 제10장 810절)을 이행할 권한은 미 법무부 장관에게 위임돼 있고, 기업이나 민간인은 그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한국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1년 가까이 끌어온 소송전도 일단 마무리됐다.
원전업계에선 이번 판결이 웨스팅하우스가 무리하게 소송에 나선 걸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유럽 등에서 원전 수주를 두고 경쟁 중인 한수원을 견제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원전 개발 초기엔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았지만, 외국에 수출될 한국형 원전은 독자 개발 모델이라 문제될 게 없다는 게 한수원의 판단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어느 정도 예상된 판결"이라면서 "수출 통제도 필요하면 한·미 정부 간 협의할 문제이지 민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관여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수원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서 그간 소송 여파로 주춤했던 해외 원전 사업 추진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하고 실무 협의를 진행 중인 폴란드 퐁트누프 원전(2기), 내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미국·프랑스와 3파전 중인 체코 두코바니 원전(1기)이 대표적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소송 때문에 스스로 위축된 측면도 있었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내세운 정부 목표대로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이번 판결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한국형 원전이 말 그대로 한국의 독자 기술인지, 웨스팅하우스 기술이 포함됐는지 여부였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재산권 문제를 따져보는 대신 소송 자격만으로 각하 판결이 내려졌다. 웨스팅하우스가 지재권 문제에서 패소한 게 아닌만큼, 향후 웨스팅하우스가 판결에 불복하면 미 항고법원에서 핵심 쟁점을 다시 따져볼 수 있다.
또한 대한상사중재원에서도 같은 문제를 다루는 국제 중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미 연방법원과 별도로 진행되는 절차인 만큼 중재 판정부가 한수원이 아닌 웨스팅하우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갈등이 깊어진 웨스팅하우스가 향후 다른 방식으로 '견제구'를 던지면서 한수원의 수출을 막을 거란 우려도 있다. 지난 4월에도 웨스팅하우스 CEO(최고경영자)가 폴란드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한국의 (원전) 프로젝트는 폴란드에서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과 갈등을 풀려는 의지가 없는 만큼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정부와 한수원은 신중한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 판결문을 받아 구체적 내용 등을 분석할 예정이다. 각하 판결이 나온 건 긍정적이지만 웨스팅하우스 입장이 바뀐 건 아니라 향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수원 측은 "향후 양측 분쟁 해결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국제 중재 절차가 단기간에 결론이 나오기 어렵고, 체코·폴란드 등 해외 원전 사업들도 우리를 무조건 기다려주는 건 아니다"라면서 "이번 판결로 유리한 고지에 선 만큼 웨스팅하우스와 협의를 거쳐 일정 부분 양보하고 공동 진출도 노릴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신규 시장 개척이나 러시아·중국과의 경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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