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자축구 성추행 피해자, 대표팀 명단서 제외…선수들 반발

보호 이유로 성추행 피해 선수 명단서 제외
"무엇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단 거냐" 논란 확산

성추행 사건으로 큰 혼란을 겪은 스페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선수들의 경기 보이콧 속에 대표명단 발표를 강행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해당 명단에서 성추행 피해 선수까지 제외되면서 선수들이 더욱 반발하는 가운데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전력약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헤니페르 에르모소 선수(사진 왼쪽)가 경기를 뛰고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BBC방송에 따르면 몬세라트 토메 스페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18일(현지시간) 대표팀 소집 명단 발표를 강행했다. 토메 감독은 지난달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시상식에서 선수에게 강제로 입맞춤해 논란을 빚은 루이스 루비알레스 축구협회장과 함께 경질된 호르헤 빌다 감독의 후임이다. 빌다 감독의 수석 매니저였던 그는 스페인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여성 감독이 됐다.

토메 감독의 대표팀 명단 발표는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루비알레스 회장 사퇴를 촉구하는 취지로 시작한 보이콧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한 지 사흘 만에 나왔다. 선수들은 지난 15일 아직 여성이 존중받고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서 스페인 축구협회의 리더십을 재편, 대표팀 스태프 개편과 축구협회 내 특정 부서 개편 등을 요구했다. 이번 보이콧에는 월드컵에 참여한 23명 중 21명을 포함해 총 39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이러한 보이콧 발표에도 토메 감독이 대표팀 명단 발표를 강행하자 선수들은 크게 반발했다. 스페인 규정상 명단 발표 이후 이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벌금이나 임시 출장 정지 등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콧 성명을 낸 월드컵 우승 멤버 21명 중 15명이 이날 토메 감독이 발표한 명단에 포함됐다.

토메 감독의 명단 발표 이후 선수들은 또다시 공동성명을 내고 보이콧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성명에서 "이미 불참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축구협회가 우리를 명단에 포함한 점을 법적으로 따져볼 것"이라면서 "축구협회가 우리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 부닥치게 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18일(현지시간) 대표팀 명단을 발표한 몬세라트 토메 스페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사진 왼쪽)과 페드로 로차 스페인 축구협회장 직무대행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여기에 대표팀 명단에서 루비알레스 전 축구협회장에 강제 입맞춤을 당한 헤니페르 에르모소 선수까지 배제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를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한 것을 두고 토메 감독은 "우리는 헤니와 함께 하고 있다"며 "이것이 그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배제 이유를 설명했지만, 선수들은 좀처럼 납득되지 않고 있다.

에르모소 선수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별도로 '무엇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는 것이냐'는 제목의 성명을 올리며 크게 반발했다. 그는 "대표팀 명단 발표로 축구 협회가 월드컵 우승 당시 선수들을 겁박하고 위협하려는 것이라면서 법적·경제적인 제재로 우리를 위협하고 조작하며 분열하게 하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선수들이 소집에 거부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스페인 여자 대표팀의 9월 A매치 평가전은 파행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스페인은 22일 스웨덴, 26일 스위스를 상대로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네이션스 리그 조별리그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토메 감독은 "이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고, 시간은 흐르고 있다. 다른 의도는 없다. 난 선수들과 진심으로 함께하고 싶다"며 선수들의 대표팀 복귀를 간청했다.

토메 감독이 제 때 팀을 모아 스웨덴전에 출전하지 못하면 선수들과 협회 모두 잃을 것이 많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기옘 발라그 스포츠 해설은 "스웨덴전에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는다면 20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티켓 확보가 어렵게 될 수 있다면서 네이션스 리그의 결승전 출전팀만이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한 가운데, 루비알레스 전 회장은 우승 세리머니 중 에르모소 선수에게 강제로 키스해 커다란 논란을 일으킨 끝에 사퇴했다. 루비알레스 전 회장은 사퇴 전 FIFA로부터 90일 직무 정지 징계를 받았다. 스페인 검찰은 이 사건을 두고 수사를 벌였으며, 최근 스페인 법원은 루비알레스 전 회장에 에르모소 선수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