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째 80억 못 구해" 발동동…돈줄 마른 건설사들, 줄도산 공포
[편집자주]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건설업계도 타격이 컸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자금을 구하지 못한 중견중소사들은 부도를 맞았다. 정부가 진화에 나서면서 불씨는 잠시 잦아들었으나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시장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1여년을 맞아 최근 부동산 PF 시장과 현 정부 정책의 한계와 방향성에 대해 짚어봤다.
#대구 A사업장. 브릿지론에서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넘어가지 못해 만기 연장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 정부 유관기관 보증을 통해 본 PF를 알아보는데 시세 대비 10% 낮은 분양가 등 전제 조건이 있다. 공사비 인상과 금융비용 상승을 생각하면 준공해도 수익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부채를 떨어내기 위해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경기도 B사업장. 브릿지론 200억원을 조달하기 안간힘을 쓰고 있다. C 저축은행에서 한 번에 120억원을 조달해 다른 사업장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인데 남은 금액 80억원을 두달째 구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PF 시장에서 2금융권마저 발을 빼면서 신규 조달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지난해 하반기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 경색이 이뤄진 후 정부가 유동성 지원에 나섰지만, 부동산 PF 시장은 더 어려워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부동산 PF의 주요 참여자인 금융기관이 자산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대거 이탈하기 때문이다. 자금은 구하기 어렵고 공사비 인상으로 수익성은 빨간불이 켜졌다. 내년 하반기까지 시장 침체와 자금 경색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부동산 PF를 담당하는 다수의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보다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부동산 PF 담당 증권사 임원은 "1금융권인 은행은 아예 부동산 PF 시장에서 발을 뺐고 손해보험사도 최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캐피탈, 증권사, 저축은행 일부 정도만 겨우 검토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2금융권에 대한 자산건전성 관리를 주문한 데 이어 최근에는 증권사에 대해서도 부동산 PF 부실 관리를 주문했다. 그마저 참여했던 증권사도 발을 빼면 PF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신탁사 담당 임원은 "부동산 PF의 큰 손이라 불리는 새마을금고가 신규 취급을 중단하면서 브릿지론, 본 PF 신규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면서 "핵심 위치 사업장도 조달 자금 규모가 크면 모으기 힘들다. 일부만 참여하는 독과점체제가 되면서 부동산PF 대출 선순위는 10~12%, 중후순위는 부르는 게 값인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PF 대출은 브릿지론, 본 PF, 중도금대출, 잔금대출 순서로 자금이 돌아야 하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면 자금이 회수되지 않고, 이에 신규 공급이 또 막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탁사 다른 관계자는 "신협, 축협, 새마을금고 등이 최근에는 집단대출인 잔금대출도 중단했다"면서 "잔금대출이 막히면서 준공이 났는데도 자금 회수가 안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만기 연장을 요구해 짧은 주기로 연장하는데 이자 부담만 늘고 개발이익은 사라져 사업성이 악화했다"고 토로했다.
돈줄이 막힌 건설사들은 위기에 놓여 있다. 건설사의 PF 보증 규모 자체가 줄지 않고 착공·분양이 지연되면서 기존 우발채무는 해소되지 않는다. 나이스신용평가가 건설사 10곳(표 참고)의 PF 보증 규모를 집계한 결과 올 6월말 28조4781억원으로 지난해 9월말(27조3053억원)보다 1조1728억원(4.3%) 늘었다.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시공사가 추가적인 신용 보강을 제공하는 사례가 생겨 부담은 더 늘어난다.
중소·중견뿐 아니라 주택 브랜드와 자금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도 위기설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미착공사업장의 비중이 절반을 넘고 지방에 사업장이 많은 A·B·C 건설사에 대해 일부 대주단은 당분간은 관련 사업장 PF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내부 지침을 세운 곳도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작은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부도가 나지 않겠지만 일각에서는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평가도 있다"면서 "하반기 위험 요인이 사라질지 지켜본 후 부동산 PF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부 공사비를 조달하는 분양물 PF는 안정적이서 예전엔 자금을 대기 위해 금융기관이 줄을 섰지만 요즘은 핵심 지역, 대형사라도 금액이 많으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공사비 인상으로 수익성이 낮아지는데, 공사비 회수는 늦어지고 조달 환경은 더 악화했다"면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년 하반기까지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사비가 오르면서 추가 자금이 필요한데 작은 사업장은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준공이 또 늦어지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올 하반기 건설사의 신용위험이 더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주택경기의 회복이 지연될 경우 중견 이하 건설사들이 직면하는 신용위험이 점차 상위 건설사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다. 분양실적이 저조한 현장이 많고 현금흐름과 재무안정성이 악화하거나 PF 우발채무 규모가 유동성과 재무 여력에 비해 과다한 회사가 대상이다.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회복이 더디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청약 시장이 살아났지만 지방은 여전히 미분양 위험이 높다. 대구, 대전, 전남, 경북 등 지방에서 초기 분양률은 30%를 밑돈다. 같은 수도권이라도 외곽은 분양을 미루거나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 올 7월말 전국 미분양 물량은 6만3087호로 여전히 높다. 이 중 악성 재고인 준공 후 미분양물량이 9041호(14.3%)를 차지한다.
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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