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많은 영감 주신 선생님" 변희봉 비보에 놀란 영화계
TV악역전문…봉준호와 새 전성기
췌장암 완치판정 후 재발, 81세
영화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의 배우 변희봉(본명 변인철)이 18일 별세했다. 81세.
그의 유족은 고인이 과거에 완치 판정받은 췌장암이 재발해 투병 끝에 이날 오전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 tvN) 출연 직전 건강검진에서 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1942년 전남 장성군 출생의 고인은 친척이 운영하는 제약회사에 취직하며 상경했다. 학창 시절 영화를 많이 보며 연기자를 꿈꿔 왔다.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에 합격한 뒤 주로 악역으로 활약했다. 성우‧연극 배우로 활동하다가 1970년 MBC 드라마 ‘홍콩 101번지’로 브라운관에 데뷔했다.
처음엔 도굴꾼, 사기꾼, 사이비 교주 등 조단역을 도맡다가, KBS 드라마 ‘안국동 아씨’(1979~80)에서 비중 있는 궁중 점쟁이 역을 맡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 말투를 흉내 낸 경 읽기로 인기를 끌었지만, 교육상 좋지 않은 역할이란 이유로 중도 하차하기도 했다.
연기자로 자리잡은 건 ‘제1공화국’(1981, MBC),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1985, MBC), ‘찬란한 여명’(1995, KBS), ‘허준’(1999, MBC) 등 사극에서 성격파 조연을 맡으면서다.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의 유자광 역으로 “(천하가) 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을 받았다.
환갑 무렵 전성기 선사한 봉준호
이후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2017)까지 봉 감독과 네 작품을 했다. 봉 감독이 고인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써 캐릭터 이름도 성만 바꿔가며 그의 이름(희봉)을 땄다. ‘괴물’에서 달려오는 괴물을 등지고 자식들에게 피하라고 손짓하던 아버지 박희봉의 최후는 지금도 명연기로 회자된다.
봉 감독은 ‘옥자’ 당시 인터뷰에서 고인에 대해 “존재 자체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다. 영화 전체의 톤이나 느낌을 뒤바꿔버릴, 물줄기를 꺾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서 “왜 여러 번 함께하는지 묻는다면 그만큼 광맥이랄까, 매장량이 많아서”라고 말했다. 송강호‧틸다 스윈튼과 같은 반열의 배우로 평가하면서다.
칸 최고령 韓배우 "70도 기운 고목에 꽃피어"
봉준호 영화 이후 고인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주연을 맡은 ‘더 게임’(2007)을 비롯해 괴이한 캐릭터('시실리 2㎞')부터 인간적인 어른의 면모('선생 김봉두')까지 한국영화에 천의 얼굴을 새겼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2’(2004),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2005),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2013) 등 영화와 드라마 ‘하얀거탑’(2007, MBC), ‘트랩’(2019, OCN),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2019, KBS) 등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2020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권위의 정부 포상인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송강호 "오랜 세월 명연기, 가르침 준 선배님"
미국 체류중인 류승완 감독은 비보에 낙심한 기색이었다. “‘주먹이 운다’ 작업할 때 여전히 연기에 갈증이 많은 젊은 배우의 느낌이 강했다. 중견 배우의 관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매 장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는 욕심 있는 청년 같은 분이셨다”고 류 감독은 애도했다.
‘공공의 적2’를 함께한 강우석 감독은 “한참 후배인 감독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누구보다 현장에 먼저 나와 거듭 연습하는 성실한 배우셨다. 상실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후 12시 30분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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