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스테인드글라스 거장, 50억 작품 기부로 KAIST 비춘다

최준호 2023. 9. 1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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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중 KAIST 초빙석학교수 작품 도서관 천창 장식


김인중 신부가 KAIST 대전 본원 학술문화관 4층에 설치한 천창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유럽의 어느 고색창연한 성당의 내부가 이런 모습일까. 햇빛을 받은 천장 유리창이 형태를 알 수 없는 신비의 색깔들을 뿜어낸다. 높이 20m의 천장에서 쏟아지는 총천연색의 빛은 낮시간 동안 햇빛의 흐름을 따라 계속 모습을 바꿔 나간다…

KAIST가 18일 오전 공개한 학술문화관(중앙도서관) 천장의 모습이다. 세계적 스테인드글라스 거장 김인중(83) 신부가 지난 1년여간 만들어온 작품이 KAIST의 천장을 장식했다. 학술문화관 4층, 높이 20m의 홀은 가로×세로 10.12×7.33m의 천창(天窓)이 나 있어 조명이 없이도 밝은 공간이다. 지난해 초 초빙석좌교수로 KAIST에 부임한 김 신부는 그간 학술문화관 1층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천장을 장식할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해왔다. 가로 96㎝, 세로 140㎝의 직사각형 유리판 53개를 자신만의 독특한 붓터치가 지나간 문양과 색감으로 그려 넣었다.

KAIST 학술문화관 천창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아래에 김인중 신부가 섰다. 프리랜서 김성태

KAIST는 이날 김인중 신부의 특별전시 ‘빛의 소명(召命) La Vocation de la Lumiere’전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천창 작품 외에도 스테인드글라스 원화 회화 9점도 함께 전시된다. 김 신부의 작품은 최신 특수기법으로 제작됐다. 전통적인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리판 위에 특수 도료를 칠하고 구워내는 방식이다. 김 신부의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진 원화를 촬영해 디지털 파일로 바꾸고, 독일 전문 제작사(빌헬름 페터스 스튜디오)로 보내 유리판에 전사, 제작하는 방식을 썼다. KAIST 미술관의 한나영 학예사는 ”원화 그림을 파일로 바꿔 전사하는 방식이지만, 정밀한 붓터치와 질감, 두께까지 그대로 재현돼 기존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김인중 신부는 ”사람들을 결합시키고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예술과 과학의 구실은 같지만, 과학은 개념으로 설명하고 예술은 미적 형상으로 말한다“며 ”교 내 구성원들이 예술 작품에 영감을 받아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인중 신부가 18일부터 시작하는 '빛의 소명' 전시회장에서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시를 총괄한 석현정 KAIST 미술관장은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의 존재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빛의 소명’ 전시는 캠퍼스의 일상공간을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며 ”물감보다 더 정교하고 미묘한 수천가지 색을 머금은 색유리의 아름다움을 탐미하며 구성원들이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번 천창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KAIST에 기부했다. 작품 가격은 5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가와 별도로, 5억원에 달하는 제작비용은 KAIST가 부담했다.

김인중 신부가 프랑스 중남부 브리우드의 생 줄리앙 성당에 설치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중 일부. [사진 김인중]


김 신부는 프랑스에서 5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해온 세계적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다. 프랑스 중남부 브리우드의 생 줄리앙 성당 등 세계 50곳 성당이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으로 장식돼 있다. 한국에도 경기도 용인의 신봉동 성당이 그의 작품을 품고 있다. 세계적 미술사가 겸 수녀인 웬디 베케트(1930~2018)는“만약 천사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의 작품과 같을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스위스 일간지 ‘르 마땡(Le Matin)’이 선정한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에 샤갈ㆍ마티스와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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