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피고 지고 또 핀다, 무궁무진 무궁화

김현정 2023. 9.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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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세상을 달구던 햇빛도 조금은 약해지는 것 같더니 비가 한번 오고 난 후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네요. 이제 더위도 한풀 꺾이고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섭니다. 9월엔 아침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라고 하는 절기도 있고, 추석도 있어서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해줍니다. 가을이면 식물들은 열매를 성숙시키는 데 집중해요. 산책하면서 봐도 대부분의 나무에서 꽃은 진 상황이고 풀꽃만 피어있죠. 하지만 간혹 피어있는 나무 꽃들이 있습니다. 백일 동안 꽃이 핀다는 백일홍나무(배롱나무)가 대표적이죠. 한여름인 7월부터 9월까지 꽃이 피는 배롱나무에 못지않게 오랜 시간 피어있는 꽃들도 있어요. 그중에서 이번에는 무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무궁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모두 무궁화를 우리의 나라꽃이라고 알고 있을 텐데요. 무궁화가 공식적인 나라꽃(국화·國華)이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 중 하나였던 무궁화 탄압에 맞서 무궁화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조상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무궁화를 관습상 나라꽃이라고 여기고 있죠.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도 있고, 통신용 무궁화 위성도 있고, 국민훈장에도 무궁화 문양이 들어가고, 1원 동전 앞면에도 무궁화가 있고, 기차 무궁화호도 있지요. 태극기 깃봉 역시 무궁화 꽃봉오리로 모양으로 제정됐고요. 그 외에도 우리나라 관공서나 국가기관 등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죠.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이에요. 뒤에 나오는 syriacus는 ‘시리아’를 말하는 건데요. 원산지를 시리아로 착각해서 붙여진 거라고 합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인도 쪽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자생했으니 원산지를 우리나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어요. 우리 땅에 자생한 무궁화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춘추전국시대의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입니다. ‘북쪽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國在其北 有薰花草 朝生暮死)’라는 글이 기록됐어요. 군자의 나라는 우리 민족의 나라 고조선을 말하고 훈화초는 무궁화를 뜻하죠. 고조선이나 그 이전에도 이 땅에서 무궁화를 볼 수 있었다는 얘기예요. 또 신라시대 기록에도 있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궁화를 심고 가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무궁화

무궁화는 그 이름이 여럿이에요. 현재 한자로 무궁화(無窮花)라고 쓰는데, 지지 않고 오랜 시간 핀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죠. 중국에서는 흔히 목근화(木槿花)라고 하는데 그 말이 변해 무궁화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우리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순우리말 무궁화 이름을 유사한 음의 한자로 표기하며 ‘無窮花’가 됐다는 거죠. 일본에선 무궁화를 ‘무꾸게’라고 발음하는데요. 일본인들이 나무 목(木)을 ‘무꾸’로 읽거나 꽃 화(花)를 ‘게’로 읽는 다른 예가 없기 때문에 그냥 우리말로 무궁화를 부르던 게 그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무꾸게’가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사람도 많죠.
아욱과인 무궁화는 같은 아욱과인 접시꽃·부용과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이죠. 꽃잎이 다섯 장으로 보이지만 사실 아래쪽 끝이 모두 연결된 통꽃입니다. 그래서 꽃이 질 때도 하나로 뭉쳐서 말리면서 한 송이가 ‘뚝’ 하고 떨어지지요. 씨앗은 털이 달려서 바람을 타고 멀리 가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씨앗이 발아하기 쉽지만 번식은 주로 꺾꽂이로 해서 형질을 변형시키지 않는 편이에요. 무궁화는 가지에 섬유질이 많아 잘 꺾이지 않기 때문에 생울타리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무궁화

무궁화는 7월에서 10월까지 긴 시간 꽃을 피우는데 한 송이가 피어서 오래 가는 게 아니라 한 송이가 지면 또 다른 꽃이 피면서 꽃이 피는 기간을 길게 유지합니다. 곤충들이 오랫동안 찾아와서 꽃가루받이를 많이 하려는 전략인데요. 그런 나라꽃 무궁화를 보며 강인함과 꾸준함을 배우고 삶에서 실천하면 어떨까요.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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