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우회로 찾는 푸틴…북·러·벨라루스 3국협력 강화하나

차세현, 정영교, 정진우 2023. 9. 18.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비행장에서 극초음속미사일 킨잘이 장착된 미그-31 전투기를 만져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3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회로를 통한 북한과의 무기 거래 및 군사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의 ‘위험한 거래’를 중단하라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을 회피하기 위한 러시아식 대응인 셈이다.

◆밀착하는 러시아-벨라루스-북한=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15일 곧바로 러시아 남부 소치로 날아가 러시아의 맹방인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만났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 둘째)의 설명을 들으며 전략폭격기의 핵탄두 장착 부분을 살펴보는 김 위원장. 사진 러시아국방부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우리는 무엇도 위반하지 않고 그럴 의도도 없다”면서 “우리는 국제법의 틀 안에서 북·러 관계 발전의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 벨라루스, 북한 세 국가가 협력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3각 협력 제안은 벨라루스를 통한 북·러 간 무기 거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북한이 벨라루스 또는 바그너그룹에 무기를 공급하는 대신, 벨라루스가 자국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거나 북한산 무기로 무장한 바그너그룹이 재참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벨라루스에는 예브게니 프리고진 사망 이후에도 바그너그룹 잔여 병력이 상당수 남아 있고, 미국 등 서방 진영은 이미 북한이 바그너그룹에 무기를 제공한 전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 같은 3자 협력 방식은 미국 또는 폴란드 등 일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의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에 따른 재고 부족분을 한국이 방산 수출을 통해 메우는 방식(우크라이나 직접 공급 금지 조건)과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는(위 사진) 지난해 11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이종섭 국방장관에게 B-52 전략폭격기의 핵탄두 장착 부분을 공개한 것을 재연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국방부

러시아로선 이런 3각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에 맞설 수 있다. 러시아 대신 벨라루스가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 타격은 미미하다. 더욱이 북·러 간 직접 무기 거래가 확인될 경우 미국과 유럽이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제공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역풍을 차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3국 협력의 의미를 묻자 “지금은 말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행동 측면에서 어떻게 나타날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판 전략자산 전개 움직임=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김 위원장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조·러 두 나라 관계 발전의 역사에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전성기’라는 표현과 맞물려 주목되는 움직임은 하루 전인 지난 16일 김 위원장의 행보다. 이날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인근의 크네비치 군 비행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의 안내를 받으면서 3종의 전략폭격기와 최신 전투기 등을 시찰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여러 장의 사진을 의도적으로 공개했다. 눈에 띄는 장면은 김 위원장이 극초음속미사일 Kh-47 킨잘을 장착한 미그기에 직접 손을 대는 모습과 전략폭격기의 날개 아래 핵탄두를 장착하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을 수행 중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 현재 960만원에 판매되는 ‘크리스찬 디올’ 명품 백을 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뉴스1

이는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해 11월 제54차 안보협의회의(SCM)에 참석한 이종섭 국방장관을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안내해 전략폭격기 B-52와 B-1B의 핵탄두 탑재 부분을 공개한 것을 의도적으로 재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쇼이구 국방장관은 이날 전략폭격기 3종 가운데 한 기종에 대해 “모스크바에서 일본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을 언급한 것은 미국이 북한의 도발 시 ‘확장 억제’ 제공 차원에서 미 본토나 괌에서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것처럼 러시아가 전략자산 전개를 통해 미국의 움직임을 견제해 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러시아 입장에선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직접 이전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어떤 합의도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과 러시아는 1991년 소련 해체 뒤 폐기했던 1961년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조·소 우호조약)을 2000년 ‘친선, 선린 및 협력에 관련 조약’(신조약)으로 복원했다. 이 조약 2조에는 어느 한 국가가 침략을 당하거나 전쟁 위험이 있을 경우 협의 및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조약을 추진한 당사자가 바로 푸틴 대통령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 위치한 극동연방대학교(FEFU)를 방문해 43명의 북한 유학생과 만났다. 전날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5박6일간의 방러를 마치고 귀국했다.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영교·정진우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