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우회로 찾는 푸틴…북·러·벨라루스 3국협력 강화하나
지난 13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회로를 통한 북한과의 무기 거래 및 군사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의 ‘위험한 거래’를 중단하라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을 회피하기 위한 러시아식 대응인 셈이다.
◆밀착하는 러시아-벨라루스-북한=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15일 곧바로 러시아 남부 소치로 날아가 러시아의 맹방인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우리는 무엇도 위반하지 않고 그럴 의도도 없다”면서 “우리는 국제법의 틀 안에서 북·러 관계 발전의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 벨라루스, 북한 세 국가가 협력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3각 협력 제안은 벨라루스를 통한 북·러 간 무기 거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북한이 벨라루스 또는 바그너그룹에 무기를 공급하는 대신, 벨라루스가 자국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거나 북한산 무기로 무장한 바그너그룹이 재참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벨라루스에는 예브게니 프리고진 사망 이후에도 바그너그룹 잔여 병력이 상당수 남아 있고, 미국 등 서방 진영은 이미 북한이 바그너그룹에 무기를 제공한 전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 같은 3자 협력 방식은 미국 또는 폴란드 등 일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의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에 따른 재고 부족분을 한국이 방산 수출을 통해 메우는 방식(우크라이나 직접 공급 금지 조건)과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
러시아로선 이런 3각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에 맞설 수 있다. 러시아 대신 벨라루스가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 타격은 미미하다. 더욱이 북·러 간 직접 무기 거래가 확인될 경우 미국과 유럽이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제공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역풍을 차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3국 협력의 의미를 묻자 “지금은 말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행동 측면에서 어떻게 나타날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판 전략자산 전개 움직임=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김 위원장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조·러 두 나라 관계 발전의 역사에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전성기’라는 표현과 맞물려 주목되는 움직임은 하루 전인 지난 16일 김 위원장의 행보다. 이날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인근의 크네비치 군 비행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의 안내를 받으면서 3종의 전략폭격기와 최신 전투기 등을 시찰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여러 장의 사진을 의도적으로 공개했다. 눈에 띄는 장면은 김 위원장이 극초음속미사일 Kh-47 킨잘을 장착한 미그기에 직접 손을 대는 모습과 전략폭격기의 날개 아래 핵탄두를 장착하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이다.
이는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해 11월 제54차 안보협의회의(SCM)에 참석한 이종섭 국방장관을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안내해 전략폭격기 B-52와 B-1B의 핵탄두 탑재 부분을 공개한 것을 의도적으로 재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쇼이구 국방장관은 이날 전략폭격기 3종 가운데 한 기종에 대해 “모스크바에서 일본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을 언급한 것은 미국이 북한의 도발 시 ‘확장 억제’ 제공 차원에서 미 본토나 괌에서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것처럼 러시아가 전략자산 전개를 통해 미국의 움직임을 견제해 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러시아 입장에선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직접 이전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어떤 합의도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과 러시아는 1991년 소련 해체 뒤 폐기했던 1961년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조·소 우호조약)을 2000년 ‘친선, 선린 및 협력에 관련 조약’(신조약)으로 복원했다. 이 조약 2조에는 어느 한 국가가 침략을 당하거나 전쟁 위험이 있을 경우 협의 및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조약을 추진한 당사자가 바로 푸틴 대통령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 위치한 극동연방대학교(FEFU)를 방문해 43명의 북한 유학생과 만났다. 전날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5박6일간의 방러를 마치고 귀국했다.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영교·정진우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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