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주도성장"vs"조작감사"…文 반박에도 통계논란 일파만파
지난 15일 감사원이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집값·고용·소득 통계조작 이슈가 정치권을 강타했다. 여야의 거친 충돌에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참전하면서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7일 페이스북에 “건강검진을 맡겼더니 책임자가 악화된 간 기능 수치를 조작한 뒤 ‘건강하다’고 통지하는 경우나 마찬가지”라며 “소득주도성장이 아닌 ‘조작주도성장’이다. 전무후무한 통계조작의 배후와 몸통을 찾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이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통계조작이 벌어진 만큼 문 전 대통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논리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도 아니고, 어떻게 정책에 통계를 끼워 맞추려 했는지 기가 막힌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당으로 손님을 침대에 눕힌 뒤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 죽이는 일을 일삼았다. 여권 관계자는 “자의적 판단으로 남에게 해를 끼친 모습이 닮았다”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문재인 정부는 국가 기본 정책인 통계를 조작해 국민을 기망한 정부”라며 “‘문재인 정권’의 주식회사 대한민국 회계 조작 사건을 엄정하게 다스리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라고 가정하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인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거래 상대방인 해외 투자자까지 속인 것”이라며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우리도 회계 조작 공범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감사원 감사는 ‘조작 감사’”(강선우 대변인)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박성준 대변인은 16일 “감사원은 감사 초기부터 ‘통계조작’이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원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자 조사 기간을 3차례나 연장하고 7개월에 걸쳐 대대적이고 강압적인 조사를 했다”며 “악화한 여론을 돌리기 위해 감사원이 해결사를 자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7일에는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참전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좌파성향 민간연구소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정책 평가』보고서를 공유하면서 “문재인 정부 동안 고용률과 청년고용률은 사상 최고였다”며 “저임금 노동자 비율과 임금 불평등도 대폭 축소됐다”고 썼다. 지난 14일 발간된 이 보고서에는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고용노동정책을 중시한 정부”라며 “고용률은 2017년 60.8%, 2019년 60.9%, 2022년 62.1%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문 전 대통령은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행사에 참석하는데, 이때 모종의 메시지를 내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 결과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지난 정부의 성과를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는 거짓’이라는 뜻을 전한 것”이라며 “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함께 현 정부의 조작감사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조작이슈에 대해 여권은 추석 국면까지 이슈를 끌고 가려고 하고 야권도 결사방어전에 돌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조작 논란 일파만파…당시 野 유승민 “국민을 원숭이로 아느냐”
문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반박하고 있지만, 논란은 일파만파다. 감사 결과에 청와대 인사들이 통계조작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구체적 정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8개월차인 2018년 1월 청와대 인사는 서울 양천구 등의 아파트매매가 상승폭을 보고받고는 국토교통부 관계자에게 “시장을 똑바로 보고 있는거냐. 수치가 잘못됐다”고 질책했다. 이에 국토부는 통계를 산출하는 한국부동산원(당시 한국감정원)에 “위에서 얘기하는데 방어가 안 된다. 재점검해달라”고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상승폭은 1.32%에서 0.89%로 수정돼 발표됐다.
청와대는 27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언제쯤 하락할 거 같으냐”(19년 12·16대책 후)라거나 “주정과장(주택정책과장)은 뭐하는거냐”(20년 7·10대책 발표 후)라는 등 국토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국토부는 “분위기가 좋지않다”는 식으로 부동산원에 통계조작을 지시했다. 청와대·국토부가 2017년 6월~2021년 11월 이런 방식으로 총 94차례나 부동산원의 통계작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조작했다는 게 감사원의 감사 결과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시 통계청은 고용·소득통계도 적극적으로 조작했다. 2017년 6월 평균가계소득이 427만8000원으로 박근혜 정부 때인 1년 전 430만6000원보다 0.6%감소하자 통계청은 산출방식을 손보기 시작했다. 먼저 임금근로자 소득에 가중치를 적용했는데 이마저도 소득이 1년 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오자, 자영업자를 포함한 모든 취업자의 소득에 가중치(취업자 가중치)를 부여해 434만7000원으로 늘렸다. 통계청은 조작된 수치를 내놓으면서 “가계소득이 1년 전보다 1%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당시는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을 적극 홍보하던 시기여서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해 통계조작을 했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잇단 소득·고용 통계조작 의혹에 당시 야당에서는 “국민을 바보로, 원숭이로 알고 조삼모사로 국민을 상대로 정부가 사기를 치는 것”(2019년 10월 유승민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라는 비판까지 나왔을 정도다.
◇입 닫은 전직 정책실장들과 김현미 전 장관=감사원은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전원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22명을 통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중앙일보는 4명의 전직 정책실장과 김 전 장관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이들은 전화·문자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 참모 및 장관 출신 인사들의 모임 ‘사의재’가 지난 15일 입장문을 내고 “부동산 통계를 추가로 더 받아본 것이나 급격한 통계 수치 변동에 대해 관계기관의 설명을 요청한 것은 시장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이라며 “통계조작이라는 주장은 허무맹랑하다”고 반박했다.
김효성·김정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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