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시위 1년, 서방은 이란 무더기 제재, 테헤란 시내에선…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이란의 마흐사 아미니(사망 당시 22세) 1주기에 맞춰, 서방 국가들은 이란에 대한 무더기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이란 당국은 이번 제재가 비건설적인 행동이자 내정 간섭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어 아미니의 아버지를 구금하는 등 ‘아미니 1주기’ 행사를 차단하기 위한 단속 강화에 나섰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CNN·워싱턴포스트(WP) 등은 전날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과 국무부가 이란 내 개인 25명과 국영 언론 3곳, 인터넷 회사 1곳 등을 대상으로 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제재 대상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 등 정권의 보안 군대 핵심 인사와 교도소 책임자, 인터넷 검열을 도운 인사와 회사 등이다. 이란 국영 프레스 TV 등 정권이 통제하는 언론사 3곳도 포함됐다.
美·EU·英·加, '아미니 1주기' 맞아 對이란 제재
이번 미국의 제재는 지난해 9월 공공장소에서 머리카락을 노출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3일 만에 의문사한 쿠르드계 이란 여성인 아미니의 기일(16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당시 이란 정부는 아미니의 죽음에 대해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라 주장했지만, 목격자들이 “이미 연행 과정에서 경찰에 구타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이에 이란 국민들은 당국의 지나친 이슬람법 집행에 분노해 수개월간 ‘히잡 시위’로 불리는 반정부 시위를 이어갔다. 이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였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인권단체에 따르면, 정부의 강압적인 진압으로 551명이 숨지고 2만2000명이 체포됐다.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의 용기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한다”면서 “우리는 동맹국·파트너들과 그들 곁에 서 있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아미니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란 전역에 시위를 촉발했고, 이란 정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폭력과 대량 체포, 인터넷 차단과 검열로 이를 막으려 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유럽연합(EU)과 영국도 이란에 대한 제재 계획을 발표했다. EU 이사회는 이날 IRGC 소속 군 및 경찰 고위 당국자를 포함해 시위자들을 구금한 이란 내 교도소, 타스님 통신사 등 개인 4명과 기관 및 단체 6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아울러 이란 당국이 내국인 탄압에 사용할 수 있는 관련 장비들의 대(對) 이란 수출도 금지했다.
영국은 이란의 문화장관과 차관, 수도 테헤란의 시장, 이란 경찰 대변인 등 테헤란의 히잡 의무법을 집행하는 고위 관료를 대상으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캐나다는 지난 8일 이란 문화혁명최고위원회(SCCR) 관계자 등 6명에 대한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나세르 칸아니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서방 국가들의 이익에 반하는 비건설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히잡 시위에 대해 ‘우스꽝스럽고 위선적인 시위’라 폄훼하고 “서방 국가들은 이런 시위에 대한 지지와 내정에 간섭하는 발언을 중단하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히잡법 집행 강화" VS 시민 "우린 대담해졌다"
한편 이란 정부는 아미니 사망 1주기 추모 행사 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단속의 고삐를 쥐고 있다. 추모 행사를 계기로 지난해 히잡 시위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촉발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AFP 통신은 아미니의 기일인 16일, 딸의 묘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아미니의 아버지 암자드 아미니가 집 앞에서 이란 보안당국에 체포됐다고 전했다. 쿠르드족 인권단체 네트워크(KNRN) 등은 보안당국이 암자드를 구금한 뒤 딸의 묘지에서 1주기 행사를 하지 말라는 경고하고 풀어줬다고 알렸다. 다만 이란 국영통신 이르나는 보안당국이 암자드를 억류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외신은 현재 테헤란 거리의 검문소 등에 보안 병력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인터넷 연결이 끊기는 일이 빈번해졌다고 전했다. WP는 이란 정부가 최근 몇 달 동안 수십명의 활동가를 처형하고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말에는 ‘히잡을 벗은 여성’들을 치하한 가수 메흐디 야라히가 체포됐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히잡법 집행을 두 배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의 이 같은 탄압에도, 테헤란 시내에는 여성들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머리카락을 드러낸 채 거리를 걷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테헤란의 한 서방 외교관은 “전국적으로 평균 20%의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고 거리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의 한 여대생은 “히잡 시위 이후 너무 많은 상황이 급변했다”면서 “우리는 훨씬 대담하고 용감해졌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선 아미니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 BBC는 15일 밤부터 독일 베를린, 인도 뉴델리,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튀르키예 이스탄불, 호주 멜버른 등에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플래카드 등을 흔들며 아미니와 히잡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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