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무기 만져보고 타보고...김정은 '북·러 합작' 도발 메뉴 내놓나

정영교, 황수빈 2023. 9. 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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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크네비치 공군기지에서 미그(Mig)-31에 탐재되어 있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만져보는 모습. AFP, 연합뉴스

17일 오후 5박 6일(12일 하산 도착)간의 방러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행 기차에 오르기 직전까지 전략 무기와 연관된 핵심 군사시설을 잇달아 둘러봤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무기 거래'를 축으로 하는 양국 간 군사 협력이 우주를 비롯해 육·해·공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기술 이전 등이 현실화한다면 한·미·일을 향한 도발의 강도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김정은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조러(북·러) 두 나라 관계 발전의 역사에 친선 단결과 협조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의 블라디보스토크 일정에는 이병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 강순남 국방상, 김광혁 공군사령관, 김명식 해군사령관 등 북한군 수뇌부가 수행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 측에서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지도부가 김정은을 각별하게 영접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양국 간 군사협력이 긴밀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도시인 아르툠에 도착해 현지 관계자들에게 환영을 받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의 전용 열차는 16일 오전 8~9시께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소도시인 아르툠에 도착했다. 아르툠-1역에서 전용 차량으로 갈아탄 김정은은 블라디보스토크 첫 일정으로 러시아 항공우주군 소속 제22근위전투기항공연대가 주둔하고 있는 크네비치 공군기지를 방문해 쇼이구 장관과 함께 러시아 항공우주군의 주요 장비를 둘러봤다.

김정은은 세르게이 코빌라시 러시아 항공우주군 장거리 항공사령관으로부터 각종 전략폭격기와 다목적 전투기를 비롯해 러시아 항공우주군이 운용하고 있는 각종 군용기를 소개받았다. 이날 러시아 측이 김정은에게 소개한 주요 무기에는 미그(Mig)-31 전투기에 장착된 극초음속 미사일인 Kh-47 '킨잘'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투폴레프(Tu)-160·95·22M 등 전략폭격기가 포함됐다.

특히 극초음속 미사일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등 서방진영과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무기체계로 꼽힌다. 북한도 2021년 9월 극초음 미사일인 '화성-8형'을 처음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 1월 두 차례 발사를 감행한 직후 "대성공을 이룩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에선 김정은이 Mig-31에 장착된 킨잘 미사일을 어루만지면서 러 공군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크네비치 공군기지에 방문해 러시아군의 각종 전략폭격기와 다목적 적투기, 추격기, 습격기 등을 살펴보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극초음속 미사일은 낮은 고도에서 마하 5(시속 6120㎞)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미사일이다. 포물선 궤적으로 목표를 향해 비행하는 탄도미사일과 달리 상하·좌우로 회피 기동이 가능해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체계로 요격이 극히 어려운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아직 북한이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러시아가 기술적 부분을 돕는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이 기존에 선보인 극초음속 미사일은 지상에서 발사하는 모델이었다"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킨잘과 유사한 KN-23 기반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이를 공중에서 발사할 수 있는 항공기를 러시아로부터 획득하게 된다면 북한 핵·미사일의 전술적 위협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은은 이날 전략핵잠수함과 각종 수상함, 항공대 등 최신예 장비를 갖춘 러시아 해군의 태평양함대 사령부도 방문했다. 그는 대잠 호위함인 마샬 샤포슈니코프함에 올라 니콜라이 예브메노프 러시아 해군 총사령관을 비롯한 관계자로부터 해상 작전능력과 주요 무장 장비의 전투성능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또 대함미사일인 Kh-35 '우란'을 비롯해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대잠로켓발사기(RBU-6000) 등도 살펴봤다. 이어 쇼이구 장관은 김정은의 태평양함대 방문을 환영하는 오찬을 마련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대잠 호위함인 마샬 샤포슈니코프함을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정은이 오찬 직후에 쇼이구 장관과의 회담에서 지역 정세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양국 간 국방 분야에서 전략·전술적 협동과 협조, 상호교류를 더욱 강화하는 것에 대한 실무적 문제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실무적 문제 논의'라는 표현으로 미뤄 북한이 내놓을 다음 도발 메뉴는 러시아와의 합작품 될 가능성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평소에 무기체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김정은은 러시아가 보유한 신형 전략 무기를 직접 만져보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궁금한 사항에 대해 질문하는 모습까지 연출하기도 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던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은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일종의 기회"라며 "북한이 러시아의 신무기를 모티브로 선보였던 기존의 핵추진어뢰나 극초음속미사일 같은 도발수단을 본격적으로 꺼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날(17일) 블라디보스토크루스키섬에 위치한 극동연방대학교(FEFU)를 방문해 유학 중인 북한 학생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이어 극동연방대 인근에 있는 연해주 아쿠아리움을 찾아 바다코끼리 공연도 관람했다. 김정은의 이같은 막바지 일정은 군사분야 외에 문화·교육·경제 등에서도 러시아와 전방위적인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김정은은 전날 밤 블라디보스토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저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진행된 발레극 '잠자는 숲의 미녀'의 관람에 앞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현지 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날 올레그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와 만나 관광·스포츠·문화 등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13일 정상회담 직후 "농업 분야에서도 북한에 무언가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만큼 북한의 절박한 식량 문제를 비롯해 농업·경제·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논의도 이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김정은이 이날(17일) 오후 5박 6일 간의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전용 열차를 타고 북한을 향해 출발했다고 전했다. 열차가 출발한 아르툠-1역에서 북·러 접경지역의 하산역까지는 약 300㎞ 거리로 노후화가 심각한 하산~바리노프스키 사이의 231㎞ 구간을 고려하면 약 6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이날 심야에 하산역에서 환송행사를 마치고 북·러 국경을 통과해 내일(18일) 오후께나 평양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생태부 장관은 이날 자신의 텔레그램을 통해 김정은과 이번 방북기간 동안 추가 곡물 공급,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재개, 정기 항공 노선 재취항, 신두만강대교 건설 협상 재개, 교육 및 문화교류 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 중에서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경우 북·러 양국이 관심을 보이는 사업이다. 2001년 북·러 정상 합의에 따라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연해주 하산역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철도 복원을 핵심으로 한다. 북·러 양국에 이어 한국까지 참여하는 3자 사업으로 추진됐으나,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미국과 한국의 독자 제재의 영향으로 2013년부터 중단됐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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