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공생하던 中·유럽, 적대관계로…불매운동 번질까
"중국 보조금 탓 유럽 기업 경쟁 어려워"
BYD·샤오펑 등 중 브랜드 잇따라 유럽 진출
폭스바겐 등 독일 브랜드 중 내수 주춤
중국 내 애국소비 번질지 주목
중국은 코로나19가 불거지기 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전기차 순수입국이었다. 당시 연간 수출액이 4억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는데 수입 규모는 6배가량 많은 25억달러에 육박했다.
3년이 흐른 지난해 전기차 수출 규모는 200억달러를 넘겼다. 수입은 과거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14억달러.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도 전기차는 주요 수출품목으로 꼽힌다. 올해 들어서도 수출은 호조세다. 중국의 올해 1~7월 전기차 수출액은 192억달러 정도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출 규모와 맞먹는다.
중국이 수출하는 전기차는 어디로 갈까. 주로 유럽이다. 벨기에, 영국, 스페인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상위권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수출액 기준 상위 10개 나라 가운데 6곳이 유럽이다. 과거엔 중국에 있는 글로벌 기업의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해 해외 각지로 수출하면서 수출 규모가 큰 것으로 봤다.
전기차 역시 테슬라를 비롯해 폭스바겐·볼보 등 글로벌 메이커의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 다시 해외 각지로 수출하면서 전기차 수출 강국이 됐다. 상하이자동차(SAIC) 산하로 MG의 유럽 내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배경은 같다. 영국 브랜드로 디자인 등은 영국에서 그대로 하면서 중국 공장에서 생산, 다시 유럽으로 수출하는 방식이다. MG의 지난해 유럽 판매량은 4만대에 육박한다.
최근 증가세가 가파른 건 글로벌 기업 외에 중국 로컬 제작사의 해외 판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 3대 전기차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인 샤오펑은 내년 독일에서 신차판매를 시작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앞서 덴마크·노르웨이 등에서 팔기 시작했는데, 유럽 내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에서도 해볼 만 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테슬라와 함께 전기차 메이커 글로벌 1·2위를 다투는 비야디(BYD)는 전 세계 곳곳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초기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등 주변국 위주였다가 최근 들어선 전 세계 곳곳으로 무대를 넓혔다. 외산 브랜드가 경쟁하기 쉽지 않은 우리나라나 일본은 물론 중동과 중남미 등 미국을 제외하고 사실상 전 세계를 아우른다. 일찌감치 전기차가 보급된 유럽도 주요 공략 대상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최근 중국산 전기차의 보조금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도 표면적으로는 값싼 중국산 전기차가 유럽 내 급증한 영향이 크다. 중국 역시 자국 내 전기차가 필요 이상으로 생산된 데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상대적으로 수월한 유럽향 수출을 늘려왔다. 운행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없는 터라, 유럽 역시 지금까지는 원산지를 가리지 않고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여겼다.
중국 보조금에 칼을 뺀 건 미래 이동수단을 둘러싸고 불거진 경쟁이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으로 비화하면서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유럽의 역외 전기차 수입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 국가로 수입액 증가율은 지난해 41%, 올해 들어서는 136%로 증가속도가 더 가팔라졌다. 기후위기에 대처한다는 명분도 중요하나 이대로 가다가는 산업의 주도권을 내주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까지 불거졌다.
중국이 지난해까지 지급했던 전기차 보조금은 우리나라나 미국 등과 달리 제작사가 직접 혜택을 받는다. 업체가 판매량을 지방정부에 신고하고 보조금을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보조금을 집행하는 식이다. 기업은 보조금만큼을 반영해 가격을 매겨 차량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코트라 현지무역관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30조원 정도가 각 생산업체에 돌아갔다. 12년간 BYD가 1조3000억원, 테슬라가 6500억원 정도를 타갔다.
자유무역이 보편화된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무역기구 차원에선 일정한 목적을 갖고 재정적으로 기업·산업을 지원하는 이러한 보조금을 불법이라 본다. 정부 등 공적 기관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재정지원을 받았는지를 살피고 자국 산업의 피해 여부를 따져 관세 등을 물린다.
중국과 유럽 간 무역분쟁으로 번질지 관심이 모인다. 집행위원회 내부에선 무역보복이 언제든 가능하나 이번 보조금 조사로 불거질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주 중 중국 방문을 앞두고 협상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중국에선 강경한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 주재 중국상공회의소는 조사 개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원산지만을 기준으로 제품을 제한하는 건 WTO 약속에 위배된다"며 "(중국산 전기차가 확산하는 게) ‘엄청난 국고보조금’의 산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 역시 기자단과의 문답에서 "EU의 조사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체인과 공급망을 교란하고 왜곡하는 보호주의 행위"라며 "중국은 유럽의 보호주의 경향과 후속 조치를 예의주시하고 중국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확고히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향후 유럽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덧붙였다.
폭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메이커로서는 최근 현지 점유율이 줄어든 상황에서 악재를 만났다. 외국과 갈등이 불거진 후 자국 메이커 소비가 늘어나는 패턴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2016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연간 180만대가량 판매했으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논란이 불거진 후 꾸준히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30만대 수준에 불과하다. 시장조사기관 마크라인즈 집계를 보면, 2019년 독일 브랜드의 중국 내 점유율은 24.2% 정도였다가 올해 들어서는 18.4%(1~8월 기준) 수준으로 떨어졌다. 줄어든 부분은 대부분 중국 브랜드로 넘어갔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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