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차량 방화와 수상한 동선, 게임 때문이었을까
[이준목 기자]
2009년 8월 5일 밤. 군산시 개정면에 위치한 월령마을 삼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불타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다. 119가 신속하게 출동해 화재를 진화했지만 불길이 강해 이미 차량은 전소된 상태였다. 그리고 차량 내부에서는 놀랍게도 참혹하게 불에 타버린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그날 왜 희생자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야만 했을까.
9월 16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 싶다> 1369회에서는 '여름밤의 화염과 사라진 일주일, 월령마을 차량화재 미스터리' 편을 조명했다.
차량 조회로 확인된 사망자의 신원은 당시 35세의 고 이중선 씨였다. 건설 현장에서 가족과 함께 중장비 차량인 펌프카 사업을 하던 이중선 씨는 시신 발견 며칠 전 갑자기 모든 연락이 두즐되며 실종 신고가 된 상태였다.
사고 현장 인근인 월령마을은 이중선 씨의 호적상 등록지이자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었다. 사망 당시는 서울에서 거주하던 이중선씨는 왜 굳이 멀리 떨어진 군산까지 내려왔던 것일까. 그는 어쩌다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불에 타서 발견된 것일까.
현장을 조사한 소방관들은 차량이 완전히 전소된 상태라 발화요인과 발화지점을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이중선 씨가 사업실패로 경제적 위기에 몰리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중선 씨가 유서를 남긴 것도 아니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만한 이유나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부검 결과 이중선 씨의 체내에서는 농약이나 독극물이 검출되지않았고, 수면제나 술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중선 씨의 차량은 LPG를 연료로 하는데 내부에는 휘발유가 뿌려진 흔적들이 발견됐다. 확실한 것은 이중선 씨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화재로 사망했다는 사실이었다.
전문가는 "휘발유가 검출되면 자살이든 타살이든 휘발유에 의한 방화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휘발유를 담았을 빈 통이나 이중선씨의 휴대폰은 발견되지 않았고, 차 문은 모두 잠겨있었지만 차 키도 찾을수 없었다. 희생자가 혼자 차에 방화를 저질러 자살을 했다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러운 정황들이었다.
경찰은 시신에서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부검 감정서를 근거로, 이중선 씨의 사망을 '화재에 의한 자살 사건'으로 종결했다. 하지만 이중선 씨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문들은 말끔히 해소되지 못했다. 유족들과 마을 주민은 아직도 이중선 씨의 사망이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중선 씨의 조카 김수영 씨(가명)는 제작진에 제보를 통하여 막내 삼촌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제보했다. 수영 씨는 막내삼촌이 이대로 잊혀져간다는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제작진은 사망당시 이중선 씨의 상황과 행적을 추적했다. 경찰은 그가 3천5백만 원가량의 차량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금전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자살의 이유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펌프카 업체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펌프카를 할부로 구입하는 일은 흔한 일이고 3천5백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6개월이면 갚을수 있는 돈이라는 답변이 돌아봤다. 업체 관계자는 "빚 때문에 죽었다? 99.9%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실종 시기부터 이중선 씨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간, 카드와 휴대폰 사용내역, 승용차를 통한 이동 동선을 분석해봤다. 서울을 떠나 이중선 씨는 군산을 지나 별다른 연고가 없는 줄포와 광주, 경기도 남양주 일대를 돌아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과 지인들은 이중선 씨가 업무상으로는 수도권 밖으로 갈만한 일이 거의 없다고 증언했다.
또한 광주의 한 노래주점에서는 이중선 씨가 18만 5천원을 카드로 결재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는 이중선 씨가 혼자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만나거나 동행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2009년 8월 3일, 이중선 씨의 차량이 군산 월령마을에 위치한 한 CCTV에서 포착됐다. 그런데 이날 이중선 씨의 동선은 지극히 부자연스럽다. 당일 새벽에 이중선씨는 전라도 광주의 노래주점에서 결재를 했고, 그날 경기도 남양주에서 이중선 씨의 마지막 휴대폰 신호가 포착됐다. 그리고 그날 오후 8시 36분, 이번에는 군산에서 그의 차량이 나타났다. 이중선 씨의 차량은 다음날인 4일과 사망일인 5일에도 CCTV를 통하여 같은 곳을 지난 것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중선씨 휴대폰의 발신기록이 끊긴 '7월 31일' 이후에 무언가 그의 신변에 변화가 생길만한 사건의 분기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행선지와 반복되는 이동 동선은 이중선 씨의 평소 행적과는 너무 달랐다.
놀랍게도 가족들은 CCTV에서 포착된 차량의 운전자가 이중선 씨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중선 씨는 평소 손목에 시계나 악세사리를 차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CCTV 사진에 포착된 운전자는 흐릿하여 얼굴은 확인할수 없지만 오른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었다.
이번에는 전문가들과 함께 차량 화재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전문가는 불이 난 차량의 모습, 당시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할 때 "실내와 엔진룸이 저렇게 완벽하게 동시다발적으로 두군데 모두 불이 활활 타오를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만일 이중선 씨가 혼자 자살했다면 밖에서 먼저 불을 지르고 차량 안에 탑승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부자연스러운 사체의 자세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중선 씨는 차량 좌석에 하늘을 보고 반듯하게 누운 상태로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분신자살을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도 그 상황에서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여기에는 그런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고통을 참고 그대로 누워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진단했다.
표창원 범죄심리전문가는 "자살이라는 것은 생존 본능을 스스로가 거스르고 무너뜨려 버리는 행동이다. 그래서 많은 자살들이 고통이 덜한 방법을 택한다. 죽음은 택하고 싶지만 고통은 피하고 싶은 것이 기본적인 자살의 심리"라고 분석했다. 이어 "예외적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그런 이유가 안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이광민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차량 방화로 인한 사망은 그 자체로도 메시지가 있다. 긍정보다는 공격적인 메시지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정신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없다"라며 "이 자료상에서는 자살로 사망했을 것으로 고려될만한 정신의학적 근거는 상당히 드물다"라고 분석을 내놓았다.
혹시 이중선 씨가 자살이 아니라 범죄 피해자였을 가능성은 없을까. 과거 이 사건을 조사하던보험조사관이 작성한 손해사정보고서에는 이중선씨가 사망하기 직전 그의 차량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목격했다는 진술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목격자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14년이 흐른데다 마을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이다보니 부정확한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하지만 손해사정보고서는 해당 사건이 보험 지급 사유가 있는 사건인지 파악하기 위하여 모든 객관적 조사 끝에 남겨진 '공식 기록'이기에 단순한 '카더라' 정도의 증언과는 무게가 다르다. 사건 조사 당시 이를 바탕으로 더 정밀한 조사가 진행되지 않은게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 이중선 씨가 혹시라도 범죄피해자가 되었다면, 그나마 가장 유력한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는 게임 관련 의혹이다. 이중선 씨가 실종되었을 당시 그의 컴퓨터에는 온라인 게임이 켜져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급하게 외출을 해야만 할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가족들은 이중선 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계속하다가 그가 평소 유명 온라인 게임을 하며 여러 이용자들과 친목을 나눈 사실을 확인했다,
이중선씨의 메모에 적힌 아이디들을 추적하여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이중선 씨는 평소 게임 아이템 현찰 거래를 위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저들과 만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랬다면 실종 당시 이중선 씨의 어수선하고 이해할수 없는 이동 동선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당시 온라인 게임과 아이템 거래 과정에서는 개인정보가 함부로 유출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또한 유저들끼리는 게임이나 아이템 거래 과정에서 다툼을 일으켜서 현피(현실+Player Kill, 온라인 게임유저들이 현실에서 직접 만나 싸움을 벌이는 것)가 발생하는 사례들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중선 씨 역시 게임상에서 남의 캐릭터를 죽이는 일이 많았고 이 과정에서 다른 유저들과 시비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중선 씨가 사망하고 한달후 그의 계정으로 접속하여 아이템을 거래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4년 전 기록이라 게임 회사 본사에서는 보관 기간이 지나 기록이 모두 리셋되어 확인이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표창원은 이중선 씨 사건에서 "강력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만한 위험 요인은 거의 유일하게 게임만 나오는 것 같다"고 분석하며 "이 사건을 처음부터 강력 사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했다면 모든 수사 대상을 조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가족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자살에 충분한 근거가 확보되었을 것이고, 자살이 아니라고 한다면 충실하고 원칙적인 조사를 통해서 범인의 정체를 밝혀냈을 것"이라며 부실한 수사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족들은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경찰에게 이중선씨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했다. 그런데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처음에 유족들도 자살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한다. 이에 유족들은 이중선씨의 죽음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처음 조사를 받았고, 사건의 자세한 정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발언한 내용을 가지고 경찰들이 초기 진술만을 중시하며 결론을 밀어붙였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경찰은 재조사에서도 끝내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솔직히 14년전 사건인데 무슨 기억이 난다고 하면 그게 거짓말이다. 서류에 있는데로 판단을 해주시면 좋겠다"며 거듭된 가족들의 타살의혹과 문제제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돌 하나도 뒤집지 않은 채 놔두지 말라' 수사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철칙으로 모든 단서를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격언이다. 이중선씨 사건 당시 경찰이 성급하게 자살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말고 다른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조사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랬다면 남은 유족들이 14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고통받으며 여전히 그날의 진실에 목말라하는 안타까운 장면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제작진은 방송 이후로도 이중선 씨에 대한 시청자들의 제보를 당부하며, 끝까지 진실을 추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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