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태우 나쁘지 않다"…극단 정치와 비교되는 '노태우 리더십'

박태인 2023. 9.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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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29일 노태우 대통령(오른쪽)과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재향군인회 제32회 전국정기총회 전야 리셉션에 각각 참석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의 주역이면서도 6·29 민주화 선언을 통해 민주화의 길을 텄고, 재임 시절 타협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극단의 대립이 일상화된 요즘 정치권과 비교되곤 한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인 정해창(86) 노태우센터 이사장이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이란 회고록을 펴냈다.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차관과 장관을 지낸 저자는 1990년 12월부터 1993년 2월까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정 이사장은 당시 남긴 8권의 업무일지를 바탕으로 7년 3개월을 집필에 매달린 끝에 책을 완성했다. 저자 스스로 “현대판 ‘승정원 일기’를 남기겠다”는 각오로 쓴 만큼 책에는 훗날 한국 정치사의 변곡점이 되는 6·29 선언과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힌 북방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937년생으로 팔순을 훌쩍 넘긴 옛 참모는 836쪽의 방대한 기록을 남기며 책머리에 “잘못에 대한 질책은 아무리 따가워도 달게 받아야 할 일이었다”면서도 “그 시대 국민과 함께 이룩한 노태우 대통령의 업적까지 무시되거나 폄하되었다”고 기록했다. 2021년 10월 서거한 고인의 2주기를 앞두고 ‘공과(功過)’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 것이다.

이달초 발간된 정해창씨의 회고록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 사진 나남출판사


책에는 끊임없이 대화하려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대통령 당선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정의당은 125석만을 얻어 과반 획득에 실패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였다. 위기감을 느낀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김영삼(YS)의 통일민주당, 김종필(JP)의 신민주공화당을 끌어들여 1990년 1월 ‘3당 합당’을 통해 221석의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만들어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런 뒤에도 야당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회고록엔 노 전 대통령이 1991년 당시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조찬 회동을 가진 대목도 등장한다.

책에는 “노 대통령은 생활물가 발표, 유엔 가입, 걸프전쟁 의료진 파견 문제 등 당면 문제를 김 총재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였다”며 “김 총재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수많은 사항을 적어와서 하나하나 상대의 의견을 묻거나 정부의 배려를 요청했다”고 기록돼 있다. 저자는 회동 이틀 뒤 국회의 걸프전쟁 관련 군 의료진 파견 동의안 가결(찬성 223, 반대 9, 기권 1)을 언급하며 “상호 이해를 증진해 몇 가지 중요한 협조를 얻은 일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월 22일 정해창 '노태우센터' 이사장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 센터 설립 및 출판기념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이 참으로 일을 많이 한, 그리하여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억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말을 중앙일보에 전했다. 뉴스1


이처럼 설득과 타협의 정치를 이어간 노 전 대통령을 두고 당시 ‘물태우’라 부르는 이들도 늘어났다. 권위주의 정치에 익숙한 국민에게 노태우식 정치는 낯설었던 셈이다. 정 이사장은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이 “물태우란 평가는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시대적 상황에 대한 처방으로는 물의 미지근함이 정답”이라 밝힌 일화를 전했다.

노태우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중앙일보에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치를 살아 움직이게 하였다”고 평가하면서도 “그 시대엔 야당 역시도 협치의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처럼 무조건 발목을 잡거나 탄핵을 함부로 추진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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