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동안 전쟁이나 나질 않길..." 60대가 내린 슬픈 결론

김민수 2023. 9. 1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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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말, 그리고 민심-60대] 반대하면 '반국가세력'·'괴담'이라 우기는 저질 정치

[김민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3.8.29
ⓒ 연합뉴스
 
윤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고 5개월여 됐을 때 50대 후반을 살아가던 친구들이 모여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관련기사: 50대 후반 다섯 명이 본 윤 대통령 '비속어 파문' https://omn.kr/20vqy ). 당시는 김건희 여사의 논문 문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문제, 장모 문제에 더해 방미 기간 중 '비속어 발언'으로 시끌벅적했던 때였다.

0.73%p라는 차이로 대선 결과가 갈렸고, 그만큼 정치적인 대화는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들과의 우정을 깨뜨릴 우려가 있었기에 '정치적인 대화는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소위 '전 국민 듣기 평가 날리면'에 와서는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윤 대통령과 측근을 비판하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당시 친구들의 윤 정부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그냥 포기하자. 전쟁만 나지 않으면 되지. 임기 끝나고 바로 잡으면 되고, 잘못한 것에 대한 죗값은 퇴임 후에 물으면 되지 않겠어. 5년? 금방 간다. 우리도 살다 보니 벌써 환갑을 바라보는데 5년 정도는 참아줄 수 있지 않겠어?"

시간은 흘러 윤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고 16개월이 됐다. 그 사이에 환갑을 맞이하고 60대가 된 친구도 있다. 친구들과의 약속대로 정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이후 그 약속은 깨졌다. 이미 친구들은 취임 5개월쯤에 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사망 판단을 내렸지만 그건 친구들 사이에서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현 정권의 태도로 볼 때 불시에 일어날 국가적인 재난이나 안전사고에서 국민을 지킬 능력이 없어보였다. 그 이후 시간만 되면 윤 대통령 퇴진 집회를 다녀오는 친구도 있었다.

"보수 정권을 표방한 사이비"

이후 겨우 16개월 동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터졌다. 아무리 정치 이야기를 함구하기로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단말마처럼 "미친 거 아냐? 말이 돼? 뻔뻔하기가 그지없네?" 하는 말들로 어떤 사안에 대해 합의적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대선 이후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던 친구는 물론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친구도 '현 정권은 보수 정권이 아니라 보수 정권을 표방한 사이비'라고 평가했다.

지난 9월 초(9월 3일)에 친구들과 만나 정치적인 주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결혼한 자녀나 결혼을 앞둔 자녀를 둔 친구들이기에 '인구 절벽'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나도 3년 전에 딸이 결혼을 했지만 아직 손주를 보지 못했고, 결혼을 앞둔 딸도 아이를 낳는 것보다 집 장만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손주 볼 욕심'은 갖지 마시라고 했다.

친구들의 자녀들도 대부분 결혼 적령기가 되었지만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집 문제'였다. 게다가 미래 사회에 대한 불안도 컸다. 기후 변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방조, 남북 간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 위협, 사회적인 참사 앞에서 무능한 정권, 묻지마 범죄 등에 노출된 각자도생의 사회 등 이 나라가 전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나라에서 책임질 능력도 없으면서 감히 아이들에게 "손주 하나 안겨줘"라고 할 수도 없는 가련한 60대. 그랬다. 건강한 정치의 실종은 모든 세대들을 가련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이야기는 자연스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홍범도 장군으로 넘어갔다. 모두 일본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한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역사 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것들이 완전히 친일파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일본 놈들이 홍범도 장군이라면 치를 떨었지.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은 일본보다 더 일본다운 현 집권당과 대통령을 보면서 이러다 독도도 줘버리고 합방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어. 게다가 우리의 바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불러도 항의 한 번 못하는 이가 이 나라 대통령이라네. 그저 대통령의 심기 불편하지 않으려는 간신배들이 여기저기 출몰하여 홍 장군을 욕되게 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기네들 비판하면 반국가세력이요,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이야기하면 괴담이라고 우겨대고,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지만 파시즘적이고, 평화통일의 꿈 대신에 전쟁 연습이나 하고. 그렇게 해도 34%는 변함없이 자기들을 지지하니 건강한 정치에 대한 생각은 없고 혐오 정치로 나가는 거지."

정치가 실종된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입에 '국민'을 달고 살지만 어디에도 국민은 없다. 이렇게 정부 여당과 정권이 폭주를 하는데도 야당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단순히 여당의 계획적인 혐오 정치에 휘말렸기 때문일까? 

대화는 이런 이야기들로 마무리 됐다.

국민의 일상과 안전한 삶은 위협당하고 있고 성실하게 일하면 나름 성취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꿈도 허망해져 버렸고, 예기치 않는 사건과 사고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런 난제들을 풀어가야 할 정치권은 맨날 상대 당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 길거리에 등장하는 정당의 현수막들을 보면 숨이 막힌다. 상대 당에 대한 조롱과 비난 일색의 현수막,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던 이들이 국민을 조롱하고 사지로 몰아가고 있으니 후진 국가로 전락한 것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잼버리 사태'로 국격이 실추됐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에서 그랬듯이 책임 소재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은 넘쳐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들은 없다. 말로는 다하지만 능력도 없고, 일이 터지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런 무능을 덮으려고 반국가세력이니 공산주의니 철지난 이념 논쟁을 이슈화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상식적인 국민의 심판 받을 것
 
▲ '괴담정치 이제 그만' 써붙인 여당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은 '광우병·사드참외·오염수 괴담정치 이제 그만 멈추십시오'라는 문구를 회의실에 내걸었다. 2023.7.3
ⓒ 남소연
 
이번에 시작된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으로 인해 관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슈는 무엇인가? 그것을 보면 현 정권과 여당이 무엇을 감추고 싶은지 보인다. 감추고 싶은 것을 위해 건들면 안 될 역린까지도 스스럼없이 건드리는 현 정권도 몇 년 안 남았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 상식적인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임기 동안 전쟁이나 터지지 말라고 기도하자고. 이 정도면 독도를 일본에 줘버리자고 해도 간신배들이 논리적인 근거를 만들어 줄 거야. 그거 반대하면 '반국가 세력'이라 하고."

친구들과 내린 이런 결론이 슬프다. 좀 상식적인 대통령과 정치를 보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사치스러운 욕심일까? 우리의 아이들이 기꺼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세상을 꿈꾸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꿈일까? 

참고로 20대 대통령 선거 60대 투표율은 87.6%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고 출구조사에서 윤석열 후보 60대 예상 득표율은 64.8%였다. 최근 한국갤럽 9월 2주차 조사에서 60대의 윤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는 긍정이 50%, 부정이 46%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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