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토크]화웨이 쇼크, 애플 아닌 퀄컴을 위협한다

임주형 2023. 9. 1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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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새 스마트폰서 5G 모뎀 자체 개발
기존엔 美 퀄컴 독무대…애플도 공급 받아
그동안 美가 장악한 이동통신기술서 독립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미국의 엄중한 기술 제재를 뚫고 7나노미터(㎚) 반도체를 탑재한 최신예 스마트폰을 선보여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화웨이가 애플의 라이벌로 올라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실 설익은 우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화웨이 쇼크가 정말로 파장을 미칠 기업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동안 이동통신기기 시장을 지배해 온 미국의 통신 기술 업체들입니다.

SoC·모뎀·RF 모듈로 통신기기 시장 석권해 온 '퀄컴 동맹'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 해부 사진. 화웨이의 최신 모뎀은 퀄컴 현 세대 모뎀과 동급의 속도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이라면 화웨이는 SoC, 5G 모뎀, RFFE 모두 미국을 거의 따라잡은 셈이다. [이미지출처=블룸버그 유튜브]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서 주목해야 할 부품은 7㎚ 칩만 있는 게 아닙니다. 화웨이는 이번 제품에 자체 제작한 모바일 스테이션을 최초로 탑재했습니다. 이 제품은 퀄컴의 직접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든 피처폰이든 모든 휴대폰에는 모바일 스테이션이 탑재됩니다. 이 부품은 휴대전화의 데이터 전송 기능을 담당하는 필수 부품입니다.

모바일 스테이션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기업은 미국의 대표 통신 기술 업체 퀄컴입니다. 오늘날 '스냅드래곤'이라고 불리는 퀄컴 모바일 스테이션 모듈은 애플, 삼성 할 것 없이 모든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필수적으로 탑재됩니다.

모바일 스테이션은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부품입니다. 미세한 라디오파를 잡아내는 무선신호(RF) 장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모뎀은 물론 GPS, 블루투스 칩 등 복잡한 기능을 한 번에 제공하는 솔루션이지요. 퀄컴은 이 모듈을 스마트폰의 두뇌라 불리는 SoC(시스템-온-칩)에 연결해 성능을 더욱더 끌어 올립니다.

퀄컴은 다른 미국 통신 기업들과 함께 모바일 스테이션 공급망 동맹을 구성했습니다. 퀄컴이 스냅드래곤 SoC와 모뎀을 만들고, 코보(Qorvo), 스카이워크스 등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이 RF 장치와 안테나를 납품합니다. 이런 고도의 분업화를 통해 '퀄컴 동맹'은 다른 나라 IT 기업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시장 지배력을 구축합니다.

혼자서 5G 모뎀 만든 화웨이, 中 내수 시장서 퀄컴 정조준

퀄컴 5G 모뎀-RF 모듈 모바일 스테이션의 구성 개념도. [이미지출처=퀄컴]

하지만 메이트 60 프로 때문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이번 화웨이 휴대폰에 들어간 모바일 스테이션 모듈은 퀄컴 모듈처럼 5G 모뎀과 고품질의 RF 안테나,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SoC를 통합한 기기입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화웨이의 모듈이 퀄컴 현세대 모바일 스테이션인 스냅드래곤 X70과 동등한 데이터 송수신 속도를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해당 주장이 사실이라면 화웨이의 기술력은 퀄컴보다 딱 0.5~1세대만 뒤처진 셈입니다.

이 정도 기술 격차는 일반 소비자에 충분히 용인 가능한 수준이며, 무엇보다도 앞으로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퀄컴에 의존하지 않아도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 상하이 화웨이 매장에 새로 출시된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가 전시되어 있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앞서 미국 정부는 올해 1월 퀄컴 모뎀의 중국 수출 금지 옵션을 고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설령 새 수출 규제가 현실화하지 않는다고 해도, 퀄컴의 공급망에 불안을 느낀 중국 제조사들은 점차 화웨이 모뎀을 선호하게 될 겁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은 글로벌 스마트폰 생산량의 67%를 담당했습니다. 이들 제조사 중 대부분이 퀄컴제 모뎀에 기대 왔습니다.

하지만 공급망 불안을 느낀 중국 업체들이 내수용 제품만이라도 중국 부품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면, 퀄컴 입장에서는 막대한 타격이 될 겁니다.

미국의 반도체 시장 분석 그룹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중국 스마트폰 출하량을 기준으로 퀄컴이 잃게 될 잠재적인 매출을 76억달러(약 10조원)로 추산한 바 있습니다. 퀄컴 그룹 전년 매출(442억달러·약 58조원)의 17% 수준입니다.

무역 제재는 작용과 반작용…中만큼이나 美에게도 딜레마

모바일 스테이션은 단순한 컴퓨터 칩이 아니다. 데이터 송수신을 맡는 무선 신호 프론트엔드(RFFE) 모듈을 통합해야 하며, 이런 특수한 부품은 코보(Qorvo) 등 전문 제조업체들이 퀄컴에 납품해 왔다. [이미지출처=코보]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은 애플을 비롯한 세계구급 제조사들의 아성을 위협하진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이동통신기술 시장에서 중국이 '독립'을 꾀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대중 기술 수출을 제약하는 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과거처럼 수월하게 굴러가진 못할 겁니다. 하지만 화웨이 모뎀이 보여주듯이 중국에도 자체 기술로 혁신을 거듭할 역량은 충분히 있습니다.

마치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처럼, 미국이 중국 기술 산업을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중국은 더더욱 활로를 뚫기 위해 집요해질 겁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중국의 기술 발전을 늦추기 위해 미국이 가했던 무역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혁신 속도를 올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정적인 칩 수급을 위해 발버둥 치는 중국만큼이나, 중국에 대한 기술 포위망을 형성 중인 미국 입장에서도 딜레마가 있는 셈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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