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선거일로부터 6개월…선거사범 절반 '벼락치기 기소'

허정원 2023. 9.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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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김만배씨 ‘허위 인터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 사건 관련자들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의 공소시효는 선거일로부터 6개월인데, 이 사건 인터뷰 보도가 대선 사흘 전인 지난해 3월 6일에 이뤄져 선거법을 적용할 수 있는 시한이 지났기 때문이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허위 인터뷰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검찰 안팎에선 공직선거법상 공소시효를 늘리거나 검찰·경찰 간 선거법 사건 수사 체계를 개편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21년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된 데다, 지난해 5월 검수완박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이 시행되면서 일부 선거범죄를 제외하곤 검찰이 직접 선거사건을 수사할 수 없어서다. 경찰이 그러잖아도 짧은 공소시효 완성 직전에 사건을 몰아서 송치하면 보완수사 등에 지장이 생기고, 수사지휘도 하지 못해 수사 과정에서 소통도 어렵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대선 때 300여명의 선거사범이 공소시효 완성 직전 1개월간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왔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는 600여명이 같은 기간 송치·불송치 기록송부됐다.

이에 따라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해도 사건 처리율이 저조한 실정이다. 올해 3월 제3회 농협·수협·산림조합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의 경우 시효 만료 보름 전까지도 사건 처리율은 53.4%에 불과했다. 검찰에 접수되거나 입건 보고된 사건 중 46.6%가 공소시효 만료 보름 내에 처리되는 등 ‘벼락치기 기소’가 늘어나고 있단 뜻이다.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법 시행 이전인 2019년 제2회 조합장 선거 때 같은 기간 사건 처리율은 72.6%로 지난해 선거 때보다 높았다.

차준홍 기자


“김문기 모른다” 사건도 시효 만료 하루 전 기소


지난해 대선 때도 검찰이 주요 사건으로 분류한 선거법 위반 사례 중엔 공소시효 완성 당일이나 바로 전날 처리된 사건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백현동 부지 용도가 한꺼번에 4단계 상향되는 과정에서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는 취지로 말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선거법 공소시효 만료 보름 전인 지난해 8월 26일에야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됐다 공소시효 완성 하루 전인 지난해 9월8일 불구속기소 처리됐다.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는 이 대표의 또다른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도 이 사건과 같은 날 불구속기소 처리됐다. 해당 사건은 검찰 직접수사 사건이었지만 이 대표가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는 등 버티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6개월 시효 완성이 돌아왔다.

2021년 12월 구독자 20여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A씨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허위사실을 방송한 사건도 공소시효 완성 하루 전인 지난해 9월 8일 불구속 기소 처리됐다. A씨는 이 대표에 대해 “1970년대 안동댐 근처에서 소년들이 여자 초등학생에게 집단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 무리에 이 대표가 포함돼 있었고 이후 검정고시와 사법시험을 거쳐 범죄를 세탁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A씨는 올해 4월 부산지법 서부지원에서 벌금 6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지난 2015년 1월 15일 호주 시드니 카툼바 블루마운틴에서 함께 한 모습. 고 김문기 처장 유족 제공.

짧은 공소시효, 선거 결과 수용하고 정치활동 안정 취지


한 검찰 관계자는 “과거엔 수사개시 보고를 받을 수 있어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 않더라도 경찰 단계에서 어떤 사건이 진행 중인지, 언제쯤 송치하면 될지 수사지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경찰이 어떤 사건을 갖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돼 있다”고 토로했다. 또 “경찰이 불송치 기록송부한 사건은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어 경찰에 요구해야 하는데, 불송치 결정이 늦게 나면 공소시효 등 시간 제약으로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선거법 공소시효가 짧은 데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의 전신인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이 처음 시행된 1994년 3월부터 29년간 ‘공소시효 6개월’은 바뀐 적이 없다. 선거사범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선거 결과에 따른 각 선출자의 행정·정치 활동이 하루빨리 안정될 수 있도록 한 입법 취지를 반영해 예외조항을 만든 것이다.

1947년 제정된 입법의원 선거법 때도 선거사범 공소시효는 1년으로, 현행 형사소송법상 징역형 선고가 가능한 범죄의 최소 공소시효(5년)보다 훨씬 짧았다. 1950년 국회의원 선거법 전부 개정에 따라 이 시효는 3개월로 단축됐다가 1991년 6개월로 소폭 연장됐다. 만약 선거수사 기간이 장기화할 경우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기 위한 정치 목적의 고소·고발이 폭증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우려다.


대선사범 128% 증가…검찰 “보완수사 기간 확보해야”


차준홍 기자
하지만 선거사범 수가 해를 거듭하며 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선거사범 수는 2017년 19대 대선 때 878명이었지만, 지난해 20대 대선 땐 2001명으로 127.9% 늘었다. 조합장 선거의 경우도 2015년 1회 선거 당시 1334명에서 올해 1441명으로 늘었다. 조합장 선거는 공직선거법이 아닌 위탁선거법이 적용돼 금품선거 등 검사의 직접 수사개시가 아예 불가능한 문제도 있다.

검찰은 우선 경찰 단계에서 수사개시 3개월 후에 사건을 송치·송부하도록 하거나, 적어도 이 기간 검·경간 협의를 의무화하도록 수사준칙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 초동수사 단계부터 검·경 협력절차를 강화해야한다”며 “초단기 공소시효 특례를 폐지하거나 1~2년으로 연장해 보완수사 기간을 확보하는 등 지속해서 법 개정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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