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심 없는 40대도 반응하게 한 대통령의 말
[장한이 기자]
매일 싸움질하는 정치 쇼에 대로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하지만 저들이 왜 저러는지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반면 안타까운 참사,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건사고 관련 뉴스가 등장하면 스크린 앞으로 달려갔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해 4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믿기 어려운 인재였다. 또래 학생들의 사망 소식에 마음이 먹먹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사고 당일 바로 경질했다. 3일 후 특별담화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이 사건으로 많은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사과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에서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995년 6월 29일, 고등학교 3학년 기말고사 기간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돼 15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예정된 사고였다.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그토록 시설안전 점검을 거듭 강조했음에도 다시 이런 대형 인명사고가 일어난 데 대해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라며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분들과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그는 7월 1일 사고 현장을 찾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당부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피날레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 국회사진취재단 |
수십 년 세월이 흘렀다. 지난 5월에는 분당정자교가 무너졌고, 지난해 광주광역시에선 공사 중인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가 붕괴됐다. 최근에는 국내 5대 건설사가 시공사인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무너졌다. 이후 철근이 빠진 '순살 아파트'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바뀌지 않는 현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고 있다. 내 세대에서 끝나면 상관없다. 그런데 내 아이들에게 직면한 문제라고 생각하면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무정부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말이 떠도는 것은 대통령의 현실 대처 능력과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툭툭 내뱉는 말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 당사자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과거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했고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한창 자랄 때 내가 기억하는 정부는 국민이 우선이었다. 겉보기에라도 발 빠른 사과를 했고 관련 법률도 신속하게 검토해 만들었다. 이를 정부와 국민 모두 당연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는 국민이 가장 뒷전이라는 느낌이다. 대통령은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 많은 비가 내린 7월 15일 충북 청주 흥덕구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에 차량이 침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 당국과 경찰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과거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과하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발표했다.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고 느꼈다. 지금은 사과는커녕 변명과 핑계, 침묵, 남일 보듯 한다. 당연히 책임지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7월 폭우로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에서 버스와 승용차 여러 대가 물에 잠겼다.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인재라고 강조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유럽을 방문 중이었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간다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에 돌아온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찾지 않았다. 국민을 향해, 유족을 향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고 당시 한국에 없었으니 책임 없다는 거야? 하긴 공무원들이 다 책임지잖아. 나 그때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계속 출근했어."
공무원 친구가 정색하며 말했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는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그렇지만 명백한 인재였다면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하고 국민을 위로하고 안심시켜야 한다. '요즘 왜 무정부, 각자도생이라고 말하는지 알겠다'는 친구의 말이 씁쓸하다.
40대 후반을 내달리는 친구들 자녀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재수생까지 다양하다. 모임에서 식사하던 친구가 갑자기 한숨을 토했다.
"OO이 괜히 재수했다고 울고불고 난리 났잖아. 뭐 하나만 더 틀려도 등급 떨어질까 봐 불안해서 공부가 안된대."
"킬러 문제 사라진다고 입시제도가 공정해지나? 수능 5개월 남기고 무슨 짓이야. 재수생만 역대급으로 몰렸다잖아."
▲ 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 계단에서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주최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중단! 방류 용인 윤석열 정권 규탄!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 권우성 |
며칠 전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한 친구가 이상한 메시지와 뉴스 링크를 남겼다.
"혹시 북한 지령받은 사람?"
"뭔 헛소리야?"
제목이 <국정원 "北, 국내 반정부세력에 日 오염수 반대 지령">인 뉴스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일본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2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그는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라고 전했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국민을 향한 목소리였다.
오염수 방류 사흘 만에 열린 '국민의힘 2023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번에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거 보라"며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건 (없고),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세력들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오염수 방류 후 대통령이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자 대국민 메시지라는 점에서 참담하기 그지없다.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오염수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을 해달라는 것인데, 왜 나는, 왜 우리는 하루아침에 반국가 세력이 됐을까.
▲ 갈등 갈등과 논쟁이 끊이지 않는 현실 |
ⓒ Pixabay |
40대 친구들의 관심 사항은 크게 안전과 교육, 건강 세 가지다.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 가질만한 내용이자, 모두가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상식선의 권리다. 여전히 찝찝함과 불안함, 불편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화두만 툭툭 내던지는 대통령이 제대로 된 답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잘못된 일에는 나라를 대표해 사과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심을 주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좀 더 신중을 기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 달라는 것. 그뿐이다.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건 등 매년 반복되는 인재에 희생당하는 것도 복불복, 인생이 걸린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운발에 맡겨야 하는 세상, 반정부 세력이 되지 않기 위해 수산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야 하는 현실이다.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간다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다"라는 입장에 비추어 '대통령이 있어도 국가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할까. 무정부, 각자도생의 시대가 요원한 일만은 아닌 듯하다.
참고로 지난해 20대 대선 40대 투표율은 74.2%로 총 투표율 77.1%에 조금 못 미쳤다. 당시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40대 예상득표율은 35.4%로 예측됐다. 한국갤럽 9월 2주차 여론조사결과, 응답한 40대의 9%만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부정평가는 85%에 달했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인생에 정답이 없듯 물론 정치에도 정답은 없을 터. 지금껏 역사는 미래가 평가해 왔다. 작금의 현실이 미래에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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