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빌 게이츠 자선? 허튼 수작"…그를 화나게한 공매도 사건
일론 머스크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21세기북스
"저는 전기차를 재창조했고, 지금은 사람들을 로켓선에 태워 화성으로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인 친구일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이 책의 첫머리에 인용된 일론 머스크의 말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이번주 동시 출간된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고 부자이자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수시로 논란을 자초해온 그의 전기. 『스티브 잡스』 등 전기 작가로 이름난 언론인 월터 아이작슨이 그를 2년간 밀착 취재하고 가족·동료·경쟁자 등 130여명을 인터뷰해 썼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손에 잡힐 듯 생생히 그려내는 덕에 700쪽 넘는 분량이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호사가의 관심을 자극하는 내용도 많다. 유아 돌연사증후군으로 생후 10주 만에 숨진 첫 아이를 제외하고 그가 세 여성과 모두 10명의 자녀를 뒀고, 세 여성 중 뉴럴링크 임원 시본 질리스는 그의 정자 기증을 통해 쌍둥이를 낳았다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대리모를 통해 그의 다른 자녀를 낳은 팝가수 그라임스는 이를 미처 몰랐고, 이 대리모와 질리스는 같은 병원에 나란히 입원하기도 했다. 그는 10명의 자녀 중 성전환을 한 맏이가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를 마르크시즘의 영향으로 여겨서 저택을 모두 팔기도 했다.
과연 이렇게 시시콜콜 알아야 할 만큼 그는 중요한 인물일까.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다를 테지만, 그는 테슬라의 전기차와 스페이스X의 로켓으로만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현재 6개인 그의 회사로는 트위터를 인수해 이름을 바꾼 X와 스타링크도 있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의 무선통신단말기 등을 제공해 칭송을 받은 그는, 이 전기에 따르면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에 수중 드론을 보내 공격하려는 우크라이나의 계획은 돕지 않았다. X에서는 기존 직원의 75%를 해고했을 뿐 아니라 문제적 인물들의 계정을 복원시켰다. 정치적 올바름과 규제에 대한 그의 반감, 정치 성향과 그 변화에 대한 이 전기의 내용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책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 팬은 아니지만, 오바마와 달리 바이든에게는 호감이 없다.
우주를 두고 경쟁하는 제프 베조스를 포함해 거물들과의 일화도 다채롭게 언급된다. 그가 첫 부인 저스틴 윌슨이 쓴 소설에 아마존 직원들을 시켜 서평을 써달라고 베조스에게 부탁하자, 베조스는 그러는 대신 직접 고객 리뷰 하나를 써서 달았다.
자선활동과 기후변화를 논하려 머스크를 만난 빌 게이츠는 화성에 대한 그의 열정과 구상은 좀 기괴하거나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반면 그는 자선활동의 대부분이 "허튼 수작"이라 여겼고 게이츠가 테슬라 주식을 대량으로 공매도한 사실에 분노했다. 정작 게이츠는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의아해했고, 그는 게이츠가 의아해하는 것을 의아해했다는 저자의 관찰이 흥미롭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자신의 생일날 벌인 격한 토론은 인공지능(AI)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AI시스템에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간이 멸종할 수도 있다는 그의 견해를 페이지는 인간을 우월시하는 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했다.
머스크는 이후 구글의 딥마인드 인수를 막으려다 실패하자 오픈AI를 만들었지만 이 연구소와도 멀어졌다. 챗GPT4가 나오기 전 올해초에는 샘 올트먼을 불러 영리성 등을 질타했고, 이후 AI와 관련된 새로운 회사 엑스닷에이아이(X.AI)를 만들었다. 책에 따르면 그가 앞서 뉴럴링크를 만들어 컴퓨터와 인간 뇌를 연결하는 칩 개발에 나선 것도 AI시스템이 인간의 가치 등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과 관련된다.
그의 삶 전반을 담은 전기답게 테슬라와 스페이스X가 2008년 파산 위기를 넘어선 과정을 비롯해 혁신적 기업가로서의 여정 역시 상세하게 담겼다. 이 전기는 그가 배우 앰버 허드와 결별하고 아버지가 의붓딸과의 사이에서 새로운 자녀를 낳은 직후인 2017~2018년 무렵이 그에게 더욱 힘든 시기였다고 전한다.
이 모든 이야기에 앞서 저자는 남아공에서 나고 자란 그의 어린 시절을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그는 심한 구타를 포함해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아이, 무엇보다 아버지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당한 아이,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폭언을 쏟아내던 아버지를 멀리 하려 하면서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주변에서 '악마 모드'라고 부르는 상태를 주기적으로 오간다. 싫어하면서도 닮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공감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고, 리스크를 피하는 대신 자초하는 인물로도 묘사된다. 남들 같으면 만족할 때 일을 친다. 트위터라는,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흥미진진한 "놀이터"를 인수한 것도 이런 시기였다. 문제는 "공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직관적인 감각"을 가진 그가 "인간의 감정을 다룰 때는 신경망에 장애가 발생"한다는 점. 저자는 그가 "기술 회사"라고 생각한 트위터는 "인간의 감정 및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광고매체였다고 지적한다.
양면적 혹은 복합적인 이 인물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압축된다. "때때로 위대한 혁신가들은 배변 훈련을 거부하고 리스크를 자청하는 어른아이일 수 있다. 무모하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때로는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리고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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