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줄 낀 뇌출혈 환자, 가족도 없다…연명의료 중단 사각지대

황수연 2023. 9. 15. 19: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식물상태, 말기 치매 등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상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종기 판단이 어려운 이들에게도 단계적으로 법 적용을 확대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연고자를 위해 가족 외 대리인 지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15일 오후 1시부터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가 주관해 열린 ‘연명의료결정의 사각지대’ 심포지엄에서 관련 전문가들은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중증 급성 뇌손상 후 식물상태 ▶ 신경학적 예후가 매우 불량한 신생아 ▶말기 치매 등이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적용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군으로 제시됐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뇌출혈로 기관 절개술, 콧줄을 하게 된 75세 여성 사례를 두고 연명의료 중단을 해야 하는지 일반인, 의사 대상으로 물은 결과 “두 집단 모두에서 다수가 인공호흡기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며 “법 적용 대상을 확장해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환자를 지켜본 뒤 회복이 없다면 연명의료를 지속하지 않는 식으로 ‘타임 리미티드 트라이얼(Time-limited trial)’을 도입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전소연 충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는 진행하는 질환이고 의사결정 능력이 사라진다는 질환 특성을 고려해 치매 초기에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해 충분히 검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적십자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


콧줄이라 불리는 비위관 영양(L튜브)도 중단 가능한 의료 행위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소연 교수는 “현행법상 영양공급은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 의무”라며 “그러나 콧줄을 하고 계속 환자를 결박해야 하는 상황을 보게 될 때 고민이 많이 된다. 영양만 주면 환자가 회복되는 게 아니고 파킨슨병, 삼킴 장애까지 동반되면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을 때 가족뿐 아니라 대리인도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야 한단 의견도 나왔다. 김혜진 중앙대학교 간호대학 조교수는 “법률에서 정하는 환자 가족이 아닌 경우가 많다. 보호자라는 분이 혼인 관계에 해당하지 않은 파트너이고 그러다 보니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법률에서 정하는 환자 가족이지만 고령이라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연락 두절인 채로 오래 떨어져 지냈다면 환자 가족이 대리결정자를 거부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연명의료 중단 사각지대에 놓인 식물상태, 말기 치매 환자 등에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중앙포토.


본인 의사 결정 능력이 제한돼 있는데 가족도 없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남겨두지 않았다면 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단 게 김 교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법에선 이런 환자에 대한 건 전혀 다루지 않아 결정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료인 사명과 숨겨진 가족에게서의 추후 법적 문제 발생 가능성 등이 의사결정을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김민정 서울 북부병원 의료사회복지사는 “조카 보호자가 상당히 많은데 법률상 보호자가 아니라 역할 할 수 없다”라며 “환자가 대리인을 지정하거나 법원에서 대리인을 지정해주는 대리인 지정 제도를 시급하게,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장애인 성년후견인 제도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연명법에는 가족 외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 현장 실무자 입장에서 발등의 불”이라고 덧붙이면서다. 김 복지사는 “현재 병원 윤리위원회에서 대리의사 결정을 하기 쉽지 않다”라며 “대리의사 결정과 관련된 윤리위를 출범하거나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심수현 서울대병원 법무팀 변호사는 “현행법은 임상 현장에서 적절하고 충분한 행위 규범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환자 가족 2인 이상 진술이 있기만 하면 환자 의사로 추정하는데 그렇게 볼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후견제도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점은 환자 가족이 대리 행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객관적 증거라면 어느 것이든 참고해서 실질적인 환자 의사를 파악하고 윤리위가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가족 2명의 권한 남용을 막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심 변호사는 “대리결정권자를 가족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평소 선호, 가치관 아는 사람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권한을 포기하거나 연락이 두절되는 등의 사유로 현실적 어려운 가족 구성원은 결정에서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환자가 지정한 성년후견인 등을 포함하고 법정 대리결정권자가 전혀 없는 경우 윤리위가 종합해서 대리 결정을 내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