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앞바다 메운 함선…73년 전 인천상륙작전 '역대급' 재연

심석용 2023. 9. 1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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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인천 수로 및 팔미도 근해에서 열린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에서 해군 함정들이 상륙작전을 펼치고 있다. 최기웅 기자

“펑! 펑!”
15일 오전 10시50분쯤 고요하던 인천시 중구 팔미도 인근 해상에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해군의 마라도함(1만4000t급)을 시작으로 미 해군 아메리카함(LHA)과 캐나다 해군 벤쿠버함(FFH)함이 나란히 인천항 수로에 모습을 드러낸 뒤였다. 함정 도착과 동시에 상륙 목표지점인 팔미도를 향한 정찰전이 시작된 것이다. 남해함과 강경함이 소나(해상 물체 탐색 장비)를 이용해 해상 곳곳에 숨겨진 기뢰를 찾아내 폭파하는 소해(掃海) 작전을 펼치는 동안, 해군 왕건함과 경남함은 함포를 쏘며 엄호했다.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이 열린 15일 오전 팔미도 앞 해상에서 열린 해병대가 침투용 고무보트를 이용 팔미도 해안으로 침투하는 재연행사를 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이날 서해에 모인 한국·미국·캐나다 해군은 제73회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을 맞아 한국전쟁의 판세를 뒤집었던 인천상륙작전을 그대로 재연했다. 한국 군 함정 20여척과 항공기·장비 10여대, 미군 아메리카함과 캐나다군 벤쿠버함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앞선 포성이 잦아들 무렵 “상륙 돌격을 시작하겠다”는 명령과 함께 본격적인 상륙 작전을 펼쳤다. 정찰용 무인항공기 3대는 상륙지점을 재확인했고, 해군 특수전전단 대원을 실은 고속단정이 팔미도로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해병대의 침투용 고무보트 12척과 돌격용 장갑차 9대가 그 뒤를 뒤따랐다. 해군 해상작전헬기 링스와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상륙지점으로 나아가는 동안 장갑차에선 황토색 연막탄이 쉴 새 없이 해상으로 투척 됐다. 상륙 전 적의 시야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15일 인천 수로 및 팔미도 근해에서 열린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에서 해군 함정들이 해상사열을 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혼전이 이어지길 15분 남짓, 마침내 팔미도 중앙의 등대에서 불빛이 깜빡였다. 해군 대원들이 팔미도 상륙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작전 성공. 작전 성공!” 사령관의 무전에 따라 이지스구축함인 서애류성룡함과 인천함·천지함·윤영하함 등이 한데 모여 해상사열을 하면서 30분간의 상륙작전이 끝을 맺었다.



역대 최대 규모 인천상륙작전 재연


정확히 73년 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인천 앞바다엔 유엔군 7만5000명을 태운 함선 261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작전 시작을 알리는 팔미도 등대 점등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인천 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갯벌이 많아 대형 함정이 순조롭게 이동하기 위해선 등대 점등이 필요했다. 이날 0시 50분, 미군과 한국군, 켈로(KLO) 특공대가 팔미도에 진입해 등대를 점등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의 서막이 올랐다. 오전 5시부터 월미도에 폭격을 퍼부은 유엔군은 30분 뒤 월미도 상륙에 성공했다. 다음날 오전 1시에 인천을 장악했고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면서 전세 역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1960년부터 인천상륙작전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지만 대부분 전승 기념식 위주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2008년 9월 해군과 해병대 대원이 투입돼 처음으로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서 작전 재연 행사를 한 뒤 드문드문 이어졌지만 2016년이 마지막이었고, 2018년 이후엔 태풍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대면 기념식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재개된 기념식에서도 실제 병력과 장비를 가동하는 재연 행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 기념주간 지정…“세계 축제 만들 것”


인천상륙작전 66주년을 맞아 해군이 9일 인천 월미도 앞 해상에서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를 펼쳤다. 사진 해군
하지만 지난해 7월 유정복 인천시장 취임 이후 기류가 달라졌다. 유 시장은 지난 5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천상륙작전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임에도 형식적인 단순 기념행사에 그치고 있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역시 5월에 출범한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기념행사 범시민추진협의회’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한반도 평화·안보를 결집하기 위해 기념식을 대규모 국제행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유 시장은 이후 9월 14∼19일을 인천상륙작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인천상륙작전 재연, 맥아더 장군 동상 헌화 등의 행사를 잇따라 열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비 19억8000만원을 확보했고, 시 예산 7억5700만원 등을 더해 총 27억3700만원을 사업 예산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가 진행된 배경이다.

이날 해군 노적봉함에 올라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을 주관한 윤석열 대통령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 공산 침략에 맞서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보여준 불굴의 용기와 투지,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세계 시민이 평화와 번영을 노래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승화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1960년부터 개최된 이 행사를 대통령이 직접 주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해병대 소속 앤드류 제프리 시시나(24) 병장은 모범병사로 뽑혀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심석용 기자


일부 시민들은 독도함과 천왕봉함에서 기념식을 지켜봤다. 전북 군산에서 왔다는 고모(42)씨는 “과거 선배님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편히 지낼 수 있었다”며 “뒤늦게라도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이 크게 열리게 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해병대 간부 1기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던 이서근(101)씨는 이날 기념식 영상 회고사에서 “당시 미 해군 대령이 나와 ‘이 지도를 주목하라. 우리는 인천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가서 죽을 장소가 인천인가보다 했다. 이걸 제대로 못 해내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뛰어갔다”고 회상했다. 모범병사로 뽑혀 이날 기념식에 참여한 미 해병대 소속 앤드류 제프리 시시나(24) 병장은 “미 해병 대표로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해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시는 향후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을 정상급 국제행사로 격상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2025년 75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에 참전 8개국(한국·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호주·뉴질랜드·네덜란드) 정상을 초청하는 등 프랑스 노르망디상륙작전 기념행사에 버금가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만들겠단 구상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은 매년 20여 개국 정상이 참석하며, 작전 현장인 프랑스 캉에 세워진 기념관(Memorial de Caen)엔 연간 40만명 이상이 방문한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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