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신생팀 돌풍] ① 최윤겸 감독 "위기마다 성장해 준 우리 선수들, 고맙다"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작년까지 세미프로(K3)였던 충북청주FC는 프로 구단으로 재창단한 첫해 13경기 무패를 달리고 있다. 지난 5월부터 7승 6무를 거뒀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무패 기간이 짧으면 대진운 덕분일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길다는 건 리그 최강팀과의 경기에서도 다 승점을 챙겼다는 뜻이다. 부산아이파크(현재 1위)와 김천상무(현재 2위) 모두 원정이었는데 무승부를 거뒀다. 한때 선두였던 김포(3위)는 무패 기간 중 두 번 만났는데 모두 꺾었다.
청주 순위는 4개월 동안 꾸준히 올랐다. 무패행진이 시작되기 전 13팀 중 12위였는데 현재 7위다. 플레이오프권인 5위 경남과 승점차가 5점이다. 지금 기세라면 창단 첫해 승격 도전을 노려볼 만하다.
함께 창단한 천안시티FC에 비하면 프로 경력 있는 선수들을 많이 수급했지만 지금처럼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줄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클럽하우스는커녕 훈련장도 없다. 요즘 K리그의 화두인 훈련여건 문제는 신생 충북청주도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30여 분 버스로 이동해 근처 공군사관학교와 LG 등의 잔디구장을 빌려 쓰는데, 축구장 잔디가 아닌데다 출입과 촬영 등이 까다로운 곳도 있다. 훈련장 문제는 내년에도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돌풍의 주역은 잘 알려진 선수들이 아니라 세미프로 시절부터 함께 한 선수들, 그리고 다른 프로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 등 무명 선수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K리그2 터줏대감 장혁진 등 경험 많은 선수들이 중심을 잡으며 패기와 안정감을 겸비한 팀이 완성됐다. 대전 출신의 백전노장 최윤겸 감독이 충청권 구단다운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아우른다. 청주가 앞으로 얼마나 더 뻗어나갈 수 있을지 주인공 3명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최 감독은 지난해 총괄 디렉터 직함으로 팀에 합류해 프로화 작업부터 지휘했다. 2001년 감독 생활을 시작해 이번이 7번째 팀이다. 특히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의 '축구특별시' 돌풍을 이끌며 충청권 역대 가장 큰 축구인기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충북청주에서도 시즌 목표는 순위가 아닌 '관중 5,000명'이었다. 비현실적인 수치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현재 2,000명 언저리의 K리그2 중위권 동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 시즌 초반에는 목표 순위가 13팀 중 9위라고 했다. 7위에 오른 지금 목표는 뭔가? 이제 2계단 더 오르면 플레이오프권이다.
아직 9경기 남아 있다. 그동안 말한 9위는 현실적이면서도 최대치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우리 아래에 있는 팀들과 점수차가 크지 않다. 무패가 언제까지나 갈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는 아직도 9위다. 다만 경기력이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복이 없어졌다. 그건 응집력, 조직력, 경기운영능력, 간절함이 향상됐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3경기 더 잘 치른다면 그때부터는 플레이오프 욕심을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 목표를 높게 잡으면서 동기부여를 하는 감독도 있는데, 최 감독은 반대로 늘 겸손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 보인다.
그러는 이유는 현실적이기 위해서다. 둘째는 방심할까봐.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고사성어가 있지 않나. 매 경기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나중에 돌아보면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다. 5강이니 플레이오프니 하는 말보다는 각 경기에 집중한다. 아직 우린 상대보다 경기력이 월등해서 이기는 게 아니다. 수비력과 조직력이 개선됐고 실점이 적다는 것 정도가 장점이다. 경기 운영은 아직 힘들다는 걸 느낀다. 선수들의 능력 총합은 떨어지는 게 사실인데 그 이상을 해줘서 상승세인거다. 최근 김천을 상대할 때도 느꼈다. 기량 차이가 있는데도 우리가 지지 않는다는 걸. 선수들이 이렇게 해 주는데 내가 그 이상을 함부로 요구할 순 없다.
- 방금 이야기한대로 청주는 기대 이상을 해주는 선수가 유독 많다. 기존 프로 선수를 꽤 영입했지만, 현재 주전 멤버들을 보면 다른 팀에서 후보였거나 방출 대상이었던 유망주가 많이 보인다. 작년 세미프로 시절 멤버 중에서 이정택과 이민형 2명이나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박대한, 홍원진, 김명순, 양지훈, 박진성, 이민형, 이정택. 이런 선수들이 기대 이상을 해주고 있다. 시즌 시작할 때는 경기를 많이 못 뛴 선수들이지만 지금은 팀의 한 축이다. 요즘처럼 일주일에 3경기씩 할 때 특히 큰 힘이 된다. 4월에 연달아 대패를 하면서 선수 변화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그때 한 명씩 기용한 선수들이 숨겨졌던 역량을 보여줬다. 그들의 경기에 대한 열망과 동기부여가 팀을 같이 상승하게 했다. 예를 들어 선방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골키퍼 박대한. 사실 이 정도로 잘할 줄 몰랐는데 굉장한 선방을 해 주니까 팀의 사기까지 올라간다. 나아가 후반기 들어오면서 돌파력이 있는 양지훈, 스피드가 있는 이승재도 조커로 많이 투입됐는데 그들이 공격 포인트를 생산해 주면서 무승부가 아닌 승리 위주의 무패행진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팀 외국인 선수들은 내 선수 경력을 통틀어 봐도 가장 집중력이 있고 희생할 줄 아는 선수들이다.
- 총감독에 가까워 보일 때도 있다. 전술은 코치들에게 많이 일임하는 편인가
훈련은 권오규 수석코치, 바우지니 피지컬 코치 등이 많이 정해준다. 요즘엔 과학적으로 짧게는 2일, 길게는 한달 단위 프로그램이 나오니까 내가 할 수 없다. 내가 초점을 맞추는 건 상대팀에 맞춘 분석과 선수 구성이다. 처음에는 주전이 15명 안팎에서 정해졌지만 지금은 선수단 전체를 유동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 내겐 시즌 목표가 하나 있는데, 기량이 부족한 선수일지라도 단 1분이나마 그라운드를 밟게 하는 것이다. 우리 팀에 필요해서 뽑은 선수들인데 일 년 내내 훈련만 시키는 건 도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프로의 맛을 보여줘야 한다. 딱 5명 남았다.
- 창단 직후부터 성적보다 연고지 정착을 강조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게 오송 지하차도 참사 직후 선수단 봉사활동이었다. 수해 복귀를 위해 선수단을 다 끌고 가서 실제로 중노동을 시킨 것 같던데. 컨디션 관리에 방해되고 심지어 부상 위험도 있는 활동이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직접 일을 하게 한 이유가 있나.
안타까운 일이 생긴 장소는 청주 중에서도 우리 팀과 특히 가깝다. 축구를 통한 사회공헌이 상투적인 행동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선수들이 피해를 직접 느껴본다면 지역에 대한 인식을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역민들께 선수단을 알리는 효과도 생각했고. 우린 반나절만 일하고 왔지만 수해 직후 현장 상황은 정말 답답했다.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가 완전히 흙더미가 됐는데 선수들이 직접 치워주니까 정말 고마워하셨다. 노부부가 일 년 농사를 다 망쳤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선수들도 대충 할 수 없었을 거다. 선수들에게 미안하긴 했다. 그래도 이해해줬던 것 같다. 용병들까지도 똑같이 꾀 안 부리고 열심히 해 줬다. 그걸 보며 우리 팀의 저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느꼈다.
- 무패 행진을 인정받아 8월 '이달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진심으로 한 말이다. 내가 아니고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잘 한거니 진심일 수밖에. 내가 모든 선수에게 투입 기회를 주는 이유 중 하나도 선수들이 알아서 잘 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면 훈련 분위기가 좋아진다.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우리 팀 훈련은 즐거우면서도 전투적이다. 그 모습만 봐도 기대가 된다.
- 아들(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최민호)이 K리그의 이달의 감독 발표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에도 역시나 댓글을 달았다.
그래요? 전 못 봤는데. 카톡은 왔다. '역시 우리 아빠야'라더라. 민호는 2, 3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우리 팀 걱정도 해 주고 응원도 해 준다. 우리 두 아들은 내 경기를 거의 안 빼먹고 본다. 요즘엔 성적이 좋으니까 주로 축하를 받게 되는데, 경기 후 라커룸 미팅과 기자회견 선수까지 다 파악해서 내가 언제쯤 핸드폰을 열어보는지 안다. 내가 처음 핸드폰을 열면 가족 톡방에 올라온 두 아들의 축하가 가장 먼저 보인다. 요즘 매 경기 그렇다.
- 아드님 이야기까지 했으니 이상으로 인터뷰를 마칠까 하는데…
우리 울트라스(서포터) 좀 다뤄달라. 주위에서 우리 울트라스 칭찬을 엄청나게 한다. 청주 응원 문화가 남다르다고. 우리 팬들은 비 오면 우비도 안 입고 선수들과 똑같이 젖으면서 호흡한다. 첫해 치르면서 많이 늘어나시는 중이다. 요즘 경기도 잘 되니까 처음 찾아왔다가 매료되는 분들도 더 계실 거다. 사실 우리가 신생팀이라 청주 지역 축구팬들은 양다리를 걸치시는 경우가 많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팀이 포항이라면, 지금은 포항과 청주를 동시에 응원하는 거지. 괜찮다. 오히려 고맙다. 응원 할 줄 아는 분들이 계셔서 울트라스가 빨리 자리 잡은 거니까.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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