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고장' 수리도 못하는 김정은…'러 스텔스기' 공장 갔다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현지시간) 하바롭스크주를 찾았다. 타스·스푸트니크 등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날 오전 8시50분(현지 시간) 하바롭스크주 산업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도착해 곧장 인근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향했다.
러시아에 전쟁에 투입될 무기를 제공하기로 하고 푸틴으로부터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김정은이 이번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공군력 현대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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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북과 항공기 제조 협력 가능성”
김정은이 방문한 유리 가가린 공장은 수호이(Su)-27, Su-30, Su-33 등 옛 소련제 전투기와 2000년대에 개발된 4.5세대 다목적 전투기 Su-35, 2020년 실전 배치된 첨단 5세대 다목적 전투기 Su-57 등과 함께 민간 항공기도 생산하는 시설이다. 김정은은 이날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과 함께 Su-35·Su-57 전투기와 신형 여객기 수호이 수퍼젯(SJ)-100의 최종 조립 공정을 지켜봤다. 이어 Su-35의 시험 비행도 참관했다.
만투로프 장관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항공기 제조와 다른 산업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고 있다"며 "이는 기술 주권을 달성하기 위해 양국이 직면한 과제를 달성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은을 함께 맞았던 덱탸료프 하바롭스크 주지사도 텔레그램에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은 일본 군국주의와 싸웠고, 우리나라는 1950년대 미국 제국주의 야망에 맞서 싸우는 북한을 지원했다"며 "오늘 우리는 서방 집단의 압력에 공동으로 맞서고 있다"고 적었다.
김정은은 이번 러시아 방문 때 김광혁 공군사령관을 대동했다. 러시아로부터 전투기 관련 기술 등을 얻어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최신 기종은 1977년 첫 비행에 성공한 미그-29다. 이미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로 무장하고, 자체 개발한 4.5세대 KF-21의 양산을 앞둔 한국 공군 전력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정은이 정상회담 직후 콤소몰스크나아무레를 방문한 배경엔 5세대 전투기 도입 가능성을 타진해보려는 의도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무리 북ㆍ러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지더라도 러시아가 타국에 전쟁의 양상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섣불리 제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기존 무기 체계의 유지ㆍ보수나 업그레이드 등에 필요한 부품 등을 제공하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박물관용’ 전투기 운용하는 北
이러한 관측의 근거는 북한군이 처한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810여대의 전투기를 보유해 410여 대의 한국에 수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공군 병력에서도 11만여 명 대 6만 5000여명으로 앞선다.
그러나 북한의 전투기는 6ㆍ25전쟁 때 사용했던 미그-15, 미그-17 등 사실상 ‘박물관 전시용’에 가까운 기종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미그-29 역시 실제 가동되는 기체는 소수로 파악된다.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전투기가 고장 나도 수리할 수 없고, 국제 제재로 전투기를 띄울 항공유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위원은 이날 통화에서 “북한이 보유한 미그-29는 오랫동안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해 현재 제3국에서 운용하는 같은 기종과 비교했을 때 사실상 완전히 ‘구형’인 다른 기종에 가깝다”며 “단기적으로 공군 전력의 비대칭성을 그나마 보완하기 위해서는 중고를 포함한 기존 기체에 들어가는 부품 지원을 받는 쪽이 북한으로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는 북한군의 주력인 미그-29를 사실상 실전에서 배제한 상태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모스크바 인근 니즈니 노브고로드 소콜 항공기 제작 공장엔 소련 붕괴 전까지 미그-29를 생산하던 라인이 멈춰선 채 악성 재고가 쌓여 있다고 한다. 또 북한엔 미그-29 조립을 염두에 둔 방현항공기제작소가 있다. 러시아로부터 부품만 조달되면 북한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기존의 구형 미그-29를 실전용으로 개량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잠수함' 공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당초 외교가에선 김정은이 콤소몰스크나아무레를 방문하며 인근 '아무르 조선소'를 함께 찾을 거란 예상이 있었다. 아무르 조선소는 잠수함을 포함한 군용 선박을 만드는 곳으로, 김정은이 2025년까지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주장한 핵추진 잠수함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곳이다.
단 이날 오후까지 러시아 현지 언론들은 "김정은이 전투기 생산 공장을 둘러본 뒤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고만 전해 조선소 방문과 관련한 내용은 소개되지 않았다.
다만 현지 매체들은 금명간 김정은과 만날 것으로 보도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이날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볼쇼이카멘에 위치한 '즈베즈다 조선소'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이곳은 핵추진 잠수함 수리와 더불어 잠수함의 현대화 작업, 즉 잠수함 개량에 특화된 시설로 꼽힌다.
이와 관련 신종우 한국국방안포럼 사무국장은 “북한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실상은 구소련의 로미오ㆍ골프급 잠수함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장기적으로 핵잠 도입을 추진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북한이 기술적 한계를 보이는 잠수함용 디젤엔진, 연료전지 등과 관련해 러시아의 지원이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은은 이날 일정을 마친 뒤 열차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6일 정오를 전후해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시찰한 뒤 쇼이구 국방장관과 만나 방러 기간 중 논의된 무기거래 방식과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직후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단 김정은을 수행 중인 김여정 부부장이 착용했던 비표엔 ‘11-18.09.2023’으로 읽히는 숫자가 표시돼 있어 일각에선 16일 이후로도 일정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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