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삭발을 해도 머리는 다시 자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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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만의 가치와 시대 정신을 담은 참신한 안을 달랬더니 '사상'이 담겨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당의 '청년정치'에 대해 언급하며 이같이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재명을 지키는 것이 민주당의 길이다"라고 당 최고위원이 공식회의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이들의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삭발이 '이재명 지키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삭발 문제에 대한 답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청년정치는 사상은커녕 앞길을 찾기도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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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만의 가치와 시대 정신을 담은 참신한 안을 달랬더니 ‘사상’이 담겨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당의 ‘청년정치’에 대해 언급하며 이같이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당 청년위원들의 스펙은 전과 비교할 바 없이 나아졌지만 정작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이나 ‘사상’ 측면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 말이 다시 떠오른 것은 14일 당 청년위원들마저 삭발에 동참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걸핏하면 이어지는 야당발 ‘단식‘·’삭발’에 피로감이 커진 탓이었을까, 울림이 없었다. 막상 이들의 모습을 본 뒤 피로감은 더 커졌다. "비상한 각오로 나왔다"는 이들은 ‘이제 청년들이 싸우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껏 비장해하는 당 청년위는 이태원 참사·오송참사, 홍범도 논쟁,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 등을 일일이 나열하며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고, 윤석열 대통령에겐 "민주주의를 회복하라"고 했고, 소속 의원들에는 "권력 싸움할 때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외에도 너무 많은 말들이 이어졌지만, 가장 눈길을 끈 구호는 단식중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단식을 중단해달라는 외침이었다. 다시 살펴보니 기자들에게 공지된 행사 문자도 ‘당대표 단식 중단 요청 및 삭발식’이었다.
청년들의 삭발 결심이 이 대표의 단식을 중단하도록 촉구하기 위함이라는 행동이라면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이던 2014년,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의 단식을 막기 위한 단식에 들어갔다. 그의 동조 단식은 김씨의 단식을 46일 만에 멈추게 했고, 이후 김씨가 요구했던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대표의 단식을 중단시키려는 청년위원의 삭발이 문 전 대통령 때와 같은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점차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는 이 대표의 단식 명분조차 두루뭉술해서 결국 ‘개딸 결집을 위한 내수용 단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 단식을 중단하기 위해 머리를 깎는 이들의 결심 역시 그 이상의 의미를 읽어내기 힘들었다. 단식의 명분에 대한 확실한 공감대라도 있다면, 삭발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을 지키는 것이 민주당의 길이다"라고 당 최고위원이 공식회의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이들의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삭발이 ‘이재명 지키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현 정치 상황을 비판하며 한 노교수는 명나라 말엽 사상가인 이탁오의 말을 들려줬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 짖었다. 왜 짖었냐고 물으면 아무 말 못하고 쑥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생각이 없으면 진영에 갇히고, 진영에 갇히면 진영이 정해준 주장을 얼마나 크게 재생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생각은 더욱 없어진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삭발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고 강한 항의의 표시 중"라고 했다. 그러나 한 초선의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랍니다." 다시 묻는다. 왜 삭발하나. 삭발 문제에 대한 답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청년정치는 사상은커녕 앞길을 찾기도 불투명하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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