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출구 없는 이재명 단식…쓰러져야 끝난다?
장기간 단식에 지지자 움직임도 거칠어져
文 전 대통령에서 출구 찾기도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째 '무기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 대표는 방문객이 와도 누운 채로 맞을 정도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상태다. 이 대표를 진료한 의료진이 "통상 단식이 10~14 일 넘기면 의학적으로 불가역적 손상을 감안하면 한계에 이르렀다"면서 단식을 만류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버티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쓰러져야 끝난다(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는 이번 단식의 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단식 16일째…건강 적신호에도 언제까지 계속되나
단식 보름째가 지나면서 이 대표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단식 3일째부터 땡볕 더위에도 오한 탓에 온수를 마셨다는 후문이다. 의료진은 단식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소견을 내기도 했다.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본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의 전체적인 신체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돼 있고 특히 공복 혈당 수치가 매우 낮아 건강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라며 "의료진이 이 대표의 입원을 권고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 대표는 단식을 잇겠다는 의지가 강경한 상황이다. 이 대표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입원을 강권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 안팎에서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은 출구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라도 단식을 끝내도록 설득, 강제중단을 결심해야 하는데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날도 야당 의원들은 이 대표를 찾아 단식 중단을 호소했다. 김성주·김성환·김용민·남인순·민형배·박주민·백혜련·신정훈·윤영덕·이동주·이학영·주철현 의원 등은 '이제 저희가 싸우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손피켓을 들고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호소했다. 함세웅 신부 등 시민사회 원로들도 이 대표를 찾았다. 함 신부는 "살아 있어야 싸울 수 있을 것"이라며 "상대(정부·여당)가 이 대표의 단식에 감동을 받지 못하니 다른 방법으로 함께해야 한다"고 중단을 권유했다.
상황이 위중해지자 지지자들의 움직임도 거칠어졌다. 이날 당 대표실 앞에서 70대 남성 김모 씨가 자해를 시도하다 국회 방호과 소속 직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이 남성은 손에 상처를 내 혈서를 쓰려다 제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에는 50대 여성이 천막 농성장 앞에서 쪽가위를 휘둘러 경찰 2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서 출구를 찾는 목소리들도 커지고 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수일 내로 문 대통령이 상경해 단식을 만류하는 모습을 갖춰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앞서 13일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보내 단식 중단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오는 19일 여의도에서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 학술토론회'가 열리는데 이 자리에 문 전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어 이 대표와의 만남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신체적으로도 다음주가 고비라는 분석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보통 단식 2주째가 위험 고비이고 이를 넘기면 일주일 이상 더 할 수 있다고 한다"며 "그렇게 되면 20일 초반이 된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 단식의 목표는 '당 장악력 강화, 당 지지율 제고, 추석 밥상서 검찰의 무도함 피력' 등 세 가지였다고 본다"며 "대략 목표는 달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한 것도 부결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다음주 초중순에 단식을 멈추지 않을까 본다"고 했다.
"왜 단식하나"…간명했던 YS, DJ의 단식
이 대표가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단식 초기부터 꼬리표처럼 달렸던 문제 ' 왜 단식하나'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 13일 CBS라디오에서 이 대표를 향해 "왜 굶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제는 국민들이 이분이 왜 굶고 계신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메시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되는데 윤석열 정부 잘해라, 잘할 때까지 굶을 거야, 이 얘기 아니냐. 그러니까 황당하다"고 했다.
정치인들의 단식은 여야 갈등 상황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은 쪽이, 뜻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돼왔다. 이때마다 단식의 '목적'이 간명했기 때문에 단식의 끝도 명확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이던 1983년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항의하고 민주주의 확립, 선거제도 개선을 통한 정치 투명성 확보, 사회통합 등을 요구하며 23일간의 단식 투쟁을 벌였다. 이후 민주화 진영을 결속시키고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등을 요구, 13일간 단식해 지방자치 도입을 끌어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4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9일간 단식했고 이후 세월호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두고서 민주당은 물론 시민사회까지 난감해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이 대표는 무기한 단식을 선언하며 ▲민생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일본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과 국제해양 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을 요구했다. 도통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내에서조차 "국민들은 기승전 방탄으로 느껴진다"(이원욱 의원), "윤 대통령의 폭주와 독단을 제어하는 데 단식이 별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이상민 의원), "지금까지 YS나 DJ 이런 분들은 단식 목적이 간명하고 단순했는데 이번에는 두루뭉술하다"(조응천 의원)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이재명 단식 정치적 효과는?
그럼에도 이 대표의 단식이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먼저, 지지세력 결집이다. 지난 8일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자체 정례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7%포인트 오른 34%를 기록했다. 이 대표의 단식효과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체포동의안을 앞두고 당내 '동정론'이 일게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는 "왜 지금 단식했나"라는 질문에서부터 답을 찾을 수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검찰은 다음주 초 구속영장을 청구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서는 주 후반에 국회로 넘어온다. 국회의장은 체포동의를 요청받은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이를 보고하고 최대 72시간 내에 표결해야 한다. 72시간 내에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이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 처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1일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보고된 후 25일 표결될 가능성, 혹은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열리는 18일 본회의서 보고 후 21일 상정되는 경우 등이 거론된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전날 의총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촉구하긴 했지만, 체포동의안 관련 논의는 꺼내지 못하고 있다. '부결'을 주장하는 친명계와 '더 이상의 방탄 논란은 안 된다'는 비명계 사이에서 당이 또다시 혼란에 빠질 게 자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단식 중 두 차례나 검찰에 출석한 이 대표에게 동정론이 실리고 있는 걸 감안하면 부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전까지는 체포동의안 가결 투표로 민주당이 잃었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무조건 '가결'만을 외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당내 '동정론'이 떠오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결국 이러한 일정을 염두에 두고 체포동의안 표결이 예상된 9월 정기국회 직전에 단식을 선언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지난 의총에서 "이재명을 저들(검찰) 아가리에 내줄 수 없다"며 사실상 체포동의안 부결을 주장했다. 이에 비명계인 조응천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오글거린다"면서 "(이 대표를)옹호하고 (체포동의안을)부결시키자는 얘기가 드러내놓고 세게 얘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당내 체포동의안 부결론이 거세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그는 "(이 대표가)내가 당당히 걸어가서 영장을 기각 받고 오겠다, 가결시켜달라고 말씀을 해 주시는 게 제일 낫다"고 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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