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생기 품은 그곳, 나무 아래 사람이 모인다

문정임 2023. 9. 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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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나무 아래 사람이 모인다②]
부산 송상현 광장에서 시민 나눔장터가 열리고 있다.

가로수는 도시 기후를 조절해 더위와 홍수 피해를 줄인다. 자연에 대한 도시민의 갈증을 채우고,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오브제의 역할을 한다. 이 연재에서는 주요 도시의 관리 사례와 현황을 통해 가로수가 기후위기 시대 시민의 삶과 지역 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효용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제주시 연동 신제주로터리 주변. 1980년대 행정 타운으로 조성될 당시 식재한 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 제주도청, 제주교육청, 제주도의회 등 주요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제주도 제공

신제주로터리 주변 인도에 가로수 그늘이 넓게 형성돼 있다.

12일 제주시 연동 삼다공원. 늦더위가 이어지는 뜨거운 도로 밖으로 왁자지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혼자 운동을 나왔던 아주머니가 아는 주민을 만나자 반가움에 한껏 목청을 높이는 참이었다. 어딘가에서 익숙한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왔다. 새소리와 사람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공원에 활기를 만들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공무원들이 우르르 공원으로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신제주로터리를 사이에 두고 네 개의 조각처럼 들어앉은 이 작은 공원은 볕이 뜨거워지는 오후가 되면서 사람이 늘며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삼다공원이 자리한 신제주는 1980년대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조성된 행정타운이다. 도청과 교육청, 의회가 있고, 얼마 전까지 제주경찰청이 나란히 자리했다. 공원과 인근 청사를 연결하는 거리에는 당시 식재한 담팔수나무와 후박나무, 협죽도 등이 울창하게 자라 사시사철 거대한 녹음을 만들어낸다.

공원 주변은 점심시간이면 식당을 찾는 공무원과 관광객, 주민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은 가로수 그늘을 따라 이동하고, 공원에서 동료들과 담소를 나눈다. 가벼운 자켓을 손에 걸치고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매일 보는 흔한 풍경이다.

제주도청사 녹지 공간. 카페가 있어 점심시간이면 인근 공공기관 공무원과 시민들로 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제주시 연동 삼다공원. 총 1만6300㎡ 부지가 신제주로터리를 사이에 두고 네 곳으로 쪼개져 있다. 작지만 주민과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에 위치해 이용자가 많다.


삼다공원에서 출발한 나무 그늘은 가로수가 풍성한 주변 인도를 거쳐 제주도청 녹지공간으로 연결된다. 이곳 역시 점심시간이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로 빈 의자를 찾기가 어렵다. 공간 가운데 카페가 있어 더 사람들이 몰린다. 도청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김모(44)씨는 “시청에서 도청으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 청사 주변 나무들을 보고 무척 놀랐다”며 “출퇴근을 하거나 식사를 하러 갈 때마다 자연이 주는 여유와 풍요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매일 1만보 걷기를 실천 중인 공무원 강모(46)씨도 “식사 후 매일 청사 주변을 걷는다”며 “도심이라 차 통행량은 많지만 그늘이 넓어 쾌적하다. 틈틈이 걸을 수 있는 여건에서 일할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삼다공원 일대는 제주에서도 가로수가 가장 풍성한 구역으로 꼽힌다.



지난 6월 주말, 부산 송상현광장 잔디광장에서 중고장터가 열리고 있다.


날이 한창 무더워지던 지난 6월 부산. 왕복 6차선 대로변 가운데 사람들이 모였다. 좌판이 펼쳐졌다. 값을 놓고 흥정이 오가는데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가격에는 관심이 없다. 물건만 놓고 주인이 없는 ‘가게’도 여럿 보였다. 옆 가게 물건을 구경 중인 주인을 찾아 소주잔의 가격을 묻자 주인은 외려 덤을 준다. “천원만 주이소. 우리는 안 쓴다 아입니꺼. 병따개도 같이 가져갈랍니꺼. 그냥 드리끼예.”

이날 부산진구 송상현 광장에서는 시민 나눔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부산시는 겨울을 제외하고 매달 1회 시민 나눔장터를 열고 있다. 매회 평균 150팀이 물건을 팔겠다고 신청한다. 행사가 매월 이어지면서 중장년 참여가 늘고 있다. 자녀가 어릴 때 쓰던 지구본에서 유행이 다한 핸드백, 철 지난 옷, 그릇, 장신구, 신발, 책, 장난감까지 파는 물건의 종류가 꽤나 다양하다.

중고라서 사는 재미도 보는 재미도 크다. 하나를 사면 덤을 주고, 물건에 서린 사연도 함께 건넨다. 사직동에서 온 김영래(49)씨는 “절에 갔다가 오늘 장터가 있다고 해서 들렀다”며 “물건들을 보면 아이들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사람들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싶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소주잔과 전골냄비, 슬리퍼를 6000원에 구입했다.

바깥 기온은 29도를 넘고 있었다. 하지만 장터 사람들의 표정에선 더위를 읽을 수 없었다. 키 큰 메타세쿼이어가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층층이 뻗은 가지와 잎이 한여름의 강한 직사광선을 여러 겹으로 막아주었다. 장터 좌판 옆으론 나무 열을 따라 길게 실개천이 흘렀다.

송상현광장 실개천에서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송상현 광장은 전포동 대도로변에 긴 섬처럼 조성됐다. 1972년 도로 등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됐으나, 도로보다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염원을 반영해 2014년 광장으로 문을 열었다. 총 3만4740㎡의 공간에 400그루의 나무를 식재했다. 주종은 장송과 메타세쿼이아다. 광장이 복잡한 대로변에 자리했기 때문에 키가 큰 수종을 심어 도심에 시원한 경관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광장 나무는 여러 열로 두텁게 식재했다. 도로에서 들어오는 소음을 줄여 최대한 자연에서와 같은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실개천이 흐르는 공간에는 메타세쿼이아를 4열로 심어 나무 사이에 넓은 활동 공간을 확보했다. 숲길처럼 조성된 산책로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행사를 열고, 휴식을 취하며 도심에서 자연을 경험한다.

이날 장터도 이 구역에서 열렸다. 부산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가로녹지는 폭염과 대기오염 물질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수 있게 조성돼야 한다”며 “송상현 광장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나무 아래에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장터가 열리는 곳 인근에서 자원순환 홍보 부스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기술연구원이 서울 마포구와 중구 일대에서 가로수와 그늘막의 효과를 조사한 결과, 그늘막보다 가로수 표면온도가 7도 낮아 열 저감에 25% 더 효과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가로수 그늘 기온은 주변보다 15.4도, 그늘막 그늘은 8.4도 낮았다.

가로수를 식재할 때 그늘을 만드는 교목과 키가 작은 관목을 조화롭게 심으면 열쾌적성이 60% 가까이 향상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나무는 온도를 낮추는 것 외에도 습도를 높이고 바람을 불러들이기 때문에 한여름에 보행자가 매우 덥게 느낄 때 쾌적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때문에 플리마켓이나 리버마켓, 마르쉐(marché·시장), 농부시장, 도깨비야시장 등 사람이 많이 찾아와야 하는 전국의 많은 오프라인 마켓들은 나무가 풍성한 공원이나 광장에서 열린다. 도시의 사람들 역시 볼거리가 있고 휴식이 가능한 녹지공간을 찾아 주말 나절을 보낸다. 지난해 재개장한 광화문광장이 나무 5000그루를 식재해 녹지공간을 기존보다 3배 이상 확대한 것, 청계천 복원 후 유동인구가 늘고 주변 상가의 임대료가 높아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시민 나눔장터가 열리던 날 송상현 광장 한켠에선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다양한 홍보 부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커피 찌꺼기로 만든 냄새제거제를 시민들이 볼 수 있게 전시하고, 폐페트병 뚜껑을 녹여 만든 동물모양 고리를 시민들에게 선물했다. 우산 수리 코너와 폐현수막을 활용한 장바구니 등 재활용 체험 부스 등도 마련됐다. 시민들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자원순환을 실천하는 방식에 더 관심을 갖는 듯 보였다.

송상현 광장에서는 자연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시민들을 위해 야외 활동이 늘어나는 5~9월 실개천과 바닥분수를 운영하고 있다. 여름에는 분수를 매일 운영하고, 나눔장터를 밤 9시까지 야간개장하면서 한여름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과 휴식을 선사하고 있다.

글·사진=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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