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은 이어달리기의 끝이 아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은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3조)과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2조)이 주된 골자다. <오마이뉴스>는 노란봉투법을 지지하는 시민과 사회단체들의 기고를 받아 싣습니다. <편집자말>
[정보라(작가)]
2014년 나는 '4만 7천원 이어달리기'에 참여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47억의 손해배상금을 뒤집어썼다는 소식에 모 잡지의 독자가 "듣도보도 못한 돈 47억"을 10만명이 나눠서 내자는 취지로 노란 봉투에 4만 7천원을 넣어 잡지사에 보낸 것이 시초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노란봉투법', 즉 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 머물러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2009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14년째 온갖 소송에 시달린다. 그 14년 사이에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까 회사가 일방적으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해 버리자 쌍용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는데 이게 불법이었다고 한다. 현재 노조법에 따르면 불법이라고, 지금 글을 쓰면서도 나는 새삼 놀란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 2조 5항에 따르면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이하 '노동관계 당사자'라 한다)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돼 있는데 여기서 '근로조건의 결정'이라는 표현 때문에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나는 법알못이라서 '결정'이라는 두 글자가 왜 그런 마술적인 힘을 갖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노조법에 따르면 2009년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은 대규모 정리해고에 대해 조용히 소송을 걸고 언제 끝날지 모를 법적절차를 가만히 견디고 기다렸어야 합법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합법 노동자'로 살기 정말 힘들다. 반면 사용자는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경찰력을 과다하게 동원해서 기중기에 컨테이너를 매달아 노동자를 위협해도 되고, 한국 기술력과 노하우만 쏙 빼먹은 뒤에 자기 나라로 도망쳐도 된다. 사용자가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고 떠난 자리에 노동자는 남아서 죽고 다치고 사용자의 잘못으로 인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
▲ 금속노조가 지난 29일 구미시청 앞에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
ⓒ 금속노조 |
2023년 9월 현재 구미에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조합원 13명이 공장을 지키고 있다. 회사는 역시나 예상대로 가압류를 진행해서 조합원들은 집 보증금까지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에 몰렸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경영난을 이유로 2018~2019년에 희망퇴직을 진행했다가 2022년 4월에 주문 물량이 늘었다며 내보냈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러더니 퇴직 노동자들을 재고용한 지 반 년만에 공장에 불 났다고 청산을 선언했다. 이것만 봐도 사측이 노동자를 멋대로 대충 주워 쓰다가 대충 버려도 되는 무슨 길가의 돌멩이 정도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고 열받을 수 있다. 이 회사의 모기업은 역시나 외국투자자본인 일본 닛토 그룹이다. 가압류에 이어서 회사 측이 조합원들이 농성 중인 노조 사무실의 수도도 끊었다. 그래서 옵티칼 동지들 생각하면 내가 지금 마음이 좀 많이 급하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일하는 사람은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 회사측이 근로자의 존엄할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착취당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10년 전의 노란 봉투는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법 개정의 문턱에 섰다. 노조법 2조, 3조 개정은 10년간 '이어 달리기'의 끝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 당당하고 책임질 사람이 마땅히 책임을 지는 사회를 향한 '이어 달리기'의 시작이 노조법 2조, 3조 개정이다. 노동자도 숨 좀 쉬고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한 '달리기'의 첫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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