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윤아 공격한 집권 여당 대표의 '불순한' 의도

하성태 2023. 9. 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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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애꿎게 소환된 자우림 김윤아... 더 큰 우려는 블랙리스트 부활

[하성태 기자]

"당사와 아티스트(김윤아)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와 결부돼 논란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아티스트에 대한 지나친 비방이나 명예훼손, 모욕 등의 위법행위는 자제해 주시길 요청한다."

자우림 멤버 김윤아의 소속사가 지난 14일 밝힌 입장 중 일부다.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입장문에서 김윤아의 의견 개진을 두고 "정치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이 아니었다"며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와 아쉬움을 표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윤아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지난달 24일 이후 본인의 소셜 미디어에 몇 차례에 걸쳐 이를 개탄하는 이미지와 글 등을 게시했고, 일부 여권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김윤아에 대한 비난에 나선 바 있다. 적지 않은 언론이 이를 집중 보도했다.

소속사의 입장문이 나온 것은 김윤아가 최초 의견을 개진한 지 3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실제 김윤아를 둘러싼 비난이나 논란도 잠잠해지던 상황에서 소속사는 왜 이 같은 입장을 피력해야 했을까. 3주 전 사인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본인의 의견을 개진한 한 아티스트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결부시킨 것은 다름 아닌 집권 여당의 대표였다.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비서관, "처참한 언설" 비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에서 열린 사단법인 문화자유행동 창립기념 심포지엄 및 창립총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에 어떤 밴드 멤버가 오염처리수 방류 뒤 '지옥이 생각난다'고 이야기한 걸 들었다. 개념 연예인이라고 하는데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일 사단법인 문화자유행동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언한 축사 중 일부다. 이어 김 대표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때 어떤 배우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겠다'라고 하면서 개념 연예인이라고 하는 평가를 받았다"며 "그게 무슨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일들을 눈으로 목도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이러한 비판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한 김윤아와 과거 광우병 사태 당시 배우 김규리의 발언을 소환하는 한편 문화예술계 전체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같은 축사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며 "결국 따돌림, 낙인찍기, 자기들끼리 이권 나눠먹기 카르텔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름 추측해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한 술 더 떴다. 1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장 최고위원은 "연예인이 무슨 벼슬이냐"며 "김윤아씨든 누구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만 공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된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연예인은 벼슬이 아니다. 당연히 공인도 아니다. 장 최고위원의 말마따나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 권리를 누리는 동시에 대중예술계라는 넓고 냉정한 시장에서 대중과 소비자에게 평가를 받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바로 아티스트나 연예인이 기본적으로 져야 하는 "무거운 책임"일 뿐이다.

과거 세월호 추모곡을 발표하기도 했던 자우림의 김윤아는 올해로 데뷔 26년 차다. 자신의 소신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 어떤 연예인이나 아티스트와 비교해도 모를 리 없는 아티스트다. 그런 김윤아를 집권 여당 대표가 공적인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소환해 비판했고, 당 청년최고위원이 "무거운 책임" 운운하며 겁박했다.

이에 대해 같은 당 김웅 의원은 13일 본인 페이스북에 "대중 연예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혔다 하더라도, 공인인 정치인이 그것을 공격하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이라고 적었다. 같은 날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비서관도 "처참한 언설"이라며 "국민 한 사람, 예술가 한 사람의 생각을 두고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겁박하는 삼엄한 시대"라고 꼬집었다. 한데 안타깝게도, 아티스트 한 명을 겁박한 정치인의 문제로 볼 일이 아닌 듯 보인다.

집권 여당 대표 발언의 본질
 
 김윤아
ⓒ 연합뉴스
 
김윤아를 소환한 김기현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근본적으로 'TPO', 즉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먼저 시간. 김 대표의 발언은 김윤아의 최초 의견 개진 이후 3주 만에 불거졌다. 본인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문화예술인의 사회적 발언의 최근 예를 끌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김 대표의 축사 중 후반부 내용을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노사연씨 자매가 윤석열 대통령 부친 빈소에 방문했다고 집단 따돌림을 당해야 하는가. 소설가 김훈씨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비판 글을 썼다고 노망이 들었다는 폭언을 들어야 하나(...). 이런 사회는 결코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악습이다. 더 이상 이런 불이익과 따돌림, 낙인찍기가 되지 않는 문화예술계를 만들어야 하고 그 역할을 저도 해야 될 책무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좌파라는 표현만 빠졌을 뿐 이전과 다른 문화예술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축사의 요체다. 그 다른 문화예술계란 무엇인가. 이 같은 발언이 나온 장소를 살펴보자. 김 대표가 창립총회에 자리에서 축사를 한 단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실천적 토대를 문화 부문에서 구축'하고자 하는 시민단체 '문화자유행동'이다. 쉽게 말해 새롭게 설립된 문화예술계의 '우파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날 창립총회엔 김 대표 외에도 대통령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도 참석했다. 이 단체는 창립 취지에 대해 "문화가 오히려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특정 집단의 이념과 잣대는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다수의 문화인들이 문화 분야의 자유가치에 기반을 둔 대안을 개발하고 문화예술계의 부조리와 모순 및 퇴행을 바로 세우기 위한 건전한 비판과 감시활동을 전개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요컨대, 주류 문화예술계가 특정 집단(좌파)의 이념과 잣대로 기울어져 있으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단체는 향후 목표도 제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정광렬 문화가치연구소 대표는 '문화의 자유와 미래를 위한 문화정책 전환'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어떤 예술을 ▲누구에게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비롯해 ▲개인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비중 ▲정부와 정부 간 역할 등 5가지 쟁점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결국 문화예술지원 정책에 대한 정부 지원의 대상과 범위를 정권 입맛대로 되돌리는 동시에 그에 대한 범정부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쟁점들이다. 지원 배제, 해촉과 해임 등 '밥 줄'과 '돈 줄'을 쥐고 흔드는 것이야말로 MB 블랙리스트의 본질이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상황.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문화체육관광부 후보자로 유인촌 대통령 문화체육특별보좌관을 임명했다. 공교롭게도 문화자유행동 창립총회에 여당 당 대표와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참석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유 후보자는 한국사회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최초로 수면 위에 올린 MB 정부 시절 최장수 문화부 장관이자 블랙리스트 실행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로, 그의 문체부 장관 지명을 두고 대중문화예술계에선 벌써부터 블랙리스트의 부활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 후보자는 지난 14일 "(문화예술계) 지원 정책, 이런 것들을 이 정부에 맞게 한번 다시 잘 다듬어 보라"는 윤 대통령의 임명 취지를 '잘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김 대표가 위와 같은 발언을 한 시간과 장소, 상황을 고려할 때 김윤아는 물론이요 여느 아티스트 개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유인촌 후보자 임명 이후 펼쳐질 '문화예술 예산을 누구에게 어떻게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제시이자 이에 반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공개적으로 겁박하고 책임을 물리겠다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3주 전 소신 발언에 나섰던 김윤아만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공론장에 소환되며 애꿎게 피해를 본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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