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 안하면 예산 날린다"…'집값 상승' 숨긴 文정부 통계조작
#1 2018년 5월 31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했다. 일주일 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발표에서 1분위(하위 20%) 소득이 역대 최대폭(8%)으로 하락해 ‘소득주도성장 허구론’이 제기된 뒤 나온 발언이었다.
#2 2020년 7월 2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통계로 11% 올랐다”고 말했다. 집값 폭등에 시달리는 여론과 너무 다르자 야당에선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느냐”는 말이 나왔다.
감사원이 15일 1년여간 조사한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사건’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문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인용한 통계 수치에 대해 감사원은 “조작되거나 자의적 짜깁기”라고 밝혔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감사자료를 공개하며 “문재인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통계청과 한국부동산원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여 통계수치를 조작하게 하는 등 각종 불법 행위를 했다”며 “(주택 통계의 경우)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최소 94회 이상의 조작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통계 조작에 관여한 혐의(직권남용·업무방해·통계법 위반 등)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등 문재인 청와대 정책실장 전원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홍장표 전 경제수석,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전직 국토부 고위직과 통계청 관계자, 한국부동산원 원장도 포함돼 수사 요청 인원은 22명에 이른다.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7명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 참고자료를 송부했는데, 여기엔 노형욱 전 국토부 장관과 윤종원 전 경제수석이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정책분야 최고위층이 대부분 통계조작에 연루됐다고 본 것이다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정황은 주택(집값)에만 머물지 않고, 고용(비정규직)과 소득(분배) 통계에서도 발견됐다. 감사원은 주택 통계에선 3년 전 대정부 질문에서 “집값이 11% 올랐다”는 김 전 장관 발언의 근거가 된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주택가격 동향조사가 조작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초부터 청와대와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에 1주일마다 나오는 주간 주택가격 ‘확정치’가 아닌 발표 3~4일전까지 조사된 ‘주중치’와 발표 전날 나오는 ‘속보치’도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통계 자료 사전 유출은 통계법 위반이다. 최 차장은 브리핑에서 “한국부동산원은 주중(치) 조사가 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총 12차례에 걸쳐 중단을 요청했지만, 청와대와 국토부는 이를 묵살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청와대와 국토부가 사전 통계 자료를 받아본 뒤 주중치나 속보치의 변동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 추가 검토나 현장 조사를 요구하며 부동산원을 압박했고, 이에 부동산원이 표본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집값 통계를 조작했다고 보고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여러차례 발표된 부동산 대책이 나올때마다 압박 강도는 더해졌다. 2018년 ‘9·13’ 대책 발표 이후 국토부는 부동산원에 하락할 때만 호가를 통계에 반영하고, 상승할 땐 반영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듬해 6월 김 전 장관의 취임 2주년을 앞두고 매매변동률이 마이너스에서 보합으로 전환되자, 국토부는 부동산원에 “이대로 가면 저희 라인 다 죽습니다. 전주처럼 마이너스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1주택 보유 세대의 추가 매매 대출을 엄격히 제한한 ‘9·13 대책’ 효과가 나타나면서 2019년 상반기까지 하락세를 보이던 집값이 다시 상승하려 하자 난색을 표한 것이다. 이런 요청을 받은 부동산원은 서울 매매 변동률을 마이너스로 조작하고, 보도자료 초안에 적힌 “서울지역 보합세 전환”을 “서울 32주 연속 하락세 지속”으로 변경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값이 다시 과열되던 2019년 7월엔 부동산원 직원을 사무실로 불러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감정원(현 부동산원)의 조직과 예산을 다 날려버리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정책 실패 지적이 이어지자, 청와대가 서울 지역에만 한정됐던 부동산원의 주중 조사를 수도권으로 넓히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청와대는 총선 직전까지 10주간 국토부와 부동산원에 변동률 상승 사유를 반복 확인하며 민감히 대응했다. 총선 뒤 ‘6·17 대책’ 발표를 하자 6월 5주차 결과 발표에 앞서 청와대가 “서울 변동률을 지난주보다 아래로만 하라”고 국토부를 압박한 정황도 공개했다.
2020년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현미 전 장관의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통계로 11% 올랐다”고 한 발언은 여론에 불을 끼얹었다. 야당에선 통계 조작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도 “문 전 대통령 취임 후 아파트값 상승률이 52%에 달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당시 김상조 정책실장은 2020년 8월 ‘부동산 통계현안 및 개선방안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감정원의 우수한 통계를 홍보하라. 경실련 본부장이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는 말입니다”라고 국토부 관계자를 질책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청와대 정책실장 등 정점에서 지시가 내려가면,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부동산원에 압박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처럼 청와대→국토부→부동산원, 혹은 청와대→부동산원의 압박이 커질 때마다 변동률은 요동쳤다.
정권 후반부인 2021년 6월에는 국토부 고위직이 국토부 직원들이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 “차관님 생각은 이 정권의 명운이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달려 있다. 지금도 오르는데 두 배로 올리면 현 정부는 실패한 정부가 된다”라고 말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했음에도 가계소득과 분배가 악화되고 비정규직이 급증하자 청와대와 통계청이 소득ㆍ고용 통계를 조작하거나 짜깁기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은 2017년 2분기 가계소득이 10년 이래 처음 감소하자 ‘취업자가 있는 가구’ 소득에 임의의 가중값을 곱해, 가계소득이 전년동기 대비 1% 증가로 조작해 발표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근로소득과 소득분배율 관련 통계 수치도 수차례 조작됐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2018년 5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발언의 배경도 공개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8년 5월 가계동향조사 발표에서 1분위(하위 20%) 소득이 역대 최대폭으로 하락하고,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와 하위 20% 소득 차이)도 커지자,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통계청에 “통계자료를 다 들고 와라”고 지시한 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개인 연구원에게 관련 자료를 건네고 별도의 조사를 요청했다.
해당 연구원의 분석 내용이 최저임금 인상 영향과 무관함에도 청와대는 “개인 근로소득이 하위 10%를 제외하고 모두 증가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 근로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고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 뒤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긍정효과 90%” 발언이 나왔다. 감사원은 “청와대가 노동연구원이 아닌 소속 연구원 개인의 분석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공표 전) 통계자료도 임의로 제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한 2019년 10월 통계청 발표에서 비정규직이 급증하자, 당시 청와대가 통계청에 고용 예상기간을 묻는 병행조사 등 “조사 방식 때문에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으로 설명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중간 감사 결과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충격적인 국기문란의 실체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에 수사가 의뢰됐다고 하니 책임 소재가 밝혀질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감사원 정치감사 대응 태스크포스(TF)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감사원이 시장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한 ‘업무 검토’를 ‘조작’으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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