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비행·일탈기록부로 변질되는 학교생활기록부

2023. 9. 1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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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교사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학교 현장에서 '교권(교육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불똥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교사에 대한 학생의 폭행과 학부모의 악성 갑질·민원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겠다는 것이다.

'학생부·생기부'라고도 부르는 학교생활기록부는 1995년 5·31 교육개혁으로 등장한 괴물이다.

과연 학생부 기록으로 교권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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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교사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학교 현장에서 ‘교권(교육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불똥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교사에 대한 학생의 폭행과 학부모의 악성 갑질·민원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발표한 ‘종합방안’을 통해 7개 시도교육청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그런 방향으로 개정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부·생기부’라고도 부르는 학교생활기록부는 1995년 5·31 교육개혁으로 등장한 괴물이다. 담임 교사의 소박한 ‘인성평가’가 포함된 한 장짜리 생활기록부를 대폭 확대했다. 학업성적은 물론 성실성·근면성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목표였다. 학생부는 교육부가 관리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영구 저장되는 정부의 공식기록이기도 하다. 수수료만 내면 언제든지 자신의 학생부 기록을 발급받을 수 있다. 호적·가족관계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제도를 어설프게 흉내 낸 학생부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기록된다. 구체적인 과목별 성적·석차는 물론 학생의 교내외 생활이 모두 기록 대상이다. 수상·봉사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 세부능력과 특기사항도 기록된다. ‘독서’를 바탕으로 한 심층적인 탐구활동도 예외가 아니다. 독후감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인 평가도 기록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학생의 ‘장래희망’도 적어야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학생부는 뾰족한 용도가 없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학교생활에 대한 ‘평전(評傳)’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학생부가 대학입시의 결정적인 평가 요소다. 특히 내신을 근거로 하는 ‘수시’의 경우가 그렇다. 학생부의 기록을 낱낱이 뜯어보겠다는 ‘학생부종합전형’도 등장했다. 운에 따라 달라지는 알량한 시험성적만으로 합격 여부를 판정하는 ‘낡은 방식’을 혁파해서 ‘평소 실력’을 꼼꼼하게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생기부가 엉뚱하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학교폭력(학폭)을 근절하는 절묘한 수단이 돼버린 것이다. 2012년부터 가해 학생의 학생부에는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따른 조치사항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제 생기부는 학폭 가담 여부를 확인하는 주홍글씨가 돼버린 것이다. 지난 4월에는 학생부의 학폭 기록을 함부로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종합대책’도 시행되고 있다.

학생부 기록으로 학폭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학폭 기록이 교사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제 교사는 학생의 비행·일탈을 기록·관리하는 법원 실무자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교사는 더 이상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할 ‘스승’이 아니다. 오히려 내 자식에게 주홍글씨를 새겨넣겠다고 지옥문을 지키고 있는 ‘판관’이 돼버렸다.

교권 붕괴 논란으로 궁지에 내몰린 교육부가 다시 학생부에서 출구를 찾고 있다. 과연 학생부 기록으로 교권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제자의 비행을 빠짐없이 기록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은 더욱 옹색해질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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