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日에 “韓과 군함도 대화하라”…"과거사 논의 채널 될 수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 “관련국과 대화를 지속해 결과를 제출하라”고 결정했다. 관련국은 한국을 의미한다.
세계유산위는 1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제45차 회의에서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 23개를 묶은 세계유산인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등재의 후속 조치와 관련 이같은 내용을 담은 결정을 별도 표결 없는 ‘컨센서스’로 채택했다.
이번 결정의 핵심은 조선인 강제노역 관련 사안을 한국과 논의해 2024년 12월 1일까지 그 결과를 세계유산센터와 자문기구에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과의 지속적 대화를 세계유산 등재를 유지하기 위한 사실상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유네스코가 이같은 결정을 한 배경은 2015년 일본이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제시했던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려 나가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일본 대표단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며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포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강제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유산이 위치한 곳이 아닌 도쿄에 만들었다. 그나마도 조선인 차별이나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하지 않아 “역사를 왜곡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고, 이에 세계유산위는 2021년 제44차 회의에서 일본에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명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세계유산위는 다만 이번 회의에서 지난 2년간 일본이 정보센터에 강제노역 희생자와 관련한 시설을 개선한 점은 일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추가 대화’를 권고한 것은 일본의 조치가 아직 미흡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외교부는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과 관련한 세계유산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 전략 강화를 위해 스스로 약속을 이행하고, 그 진전 상황을 2024년 12월 1일까지 제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 유네스코와 대화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의 공식 입장에는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평가한다’는 표현이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를 향해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한국과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유네스코가 추가 대화를 권고한 조선인 강제 노역 관련 이슈는 지난 정부 때 불거졌던 한ㆍ일 관계 경색의 핵심 원인인 ‘강제노동 피해자’ 문제와 큰 틀에서 같은 범주에 속한다. 외교가에선 이 때문에 “유네스코의 권고는 한ㆍ일 양국의 민감한 사안인 과거사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일종의 새로운 채널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2021년 유네스코의 결정 이후에도 전 정부 때 불거진 양국 관계 경색으로 인해 군함도 문제 등 한·일은 공공외교 분야의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며 “유네스코의 이번 결정은 이번 정부 들어 양국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는 상황에서 공공외교 파트를 시작으로 한 과거사와 관련한 진솔한 논의를 지속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인사도 “사실상 유네스코가 일본을 향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과의 지속적 대화를 공식적으로 권고했기 때문에 과거사 관련 대화는 어떤 식으로든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일본이 향후 ‘사도(佐渡)광산’ 등 유사한 논쟁 지점이 있는 곳의 추가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은 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을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이라고 전망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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