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으로 따낸 메달…패럴림픽 다관왕들, 인빅터스 평정했다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 '2023 독일 인빅터스 게임'에 출전 중인 대한민국 선수단이 대회 6일째인 14일(현지시간) 탁구에서 금메달 3개를 따냈다.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다관왕 선수들이 주축이 된 한국 탁구 선수단은 전날(13일)에 이어 이틀 연속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냈다.
이날 오후 독일 뒤셀도르프 메르쿠르 슈피엘 아레나에서 열린 탁구 단식 TT3 (장애 등급) 종목에 출전한 정은창(54)씨는 결승에서 만난 프랑스의 티에리를 세트 스코어 2대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벌어진 단식 TT2 종목 결승에선 최일상(48)씨 역시 독일의 힌리히스를 세트 스코어 2대0으로 이겼다.
한 세트 11점제로 치러지는 이들 경기에서 상대 선수들은 3점을 뽑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티에리가 2세트에서 6점을 기록한 게 한 세트 최고 점수였다. 결승전임에도 일방적인 흐름이 이어졌다.
두 선수의 금메달 수상은 경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전날 복식에서 호흡을 맞춰 금메달을 획득했던 이들은 전문 선수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현재 대전시 장애인체육회 탁구부 감독으로 활동하는 정은창씨는 2000년 시드니를 시작으로 2012년 런던 대회까지 패럴림픽에서만 금메달 2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한 바 있다. 최일상씨도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에서 각각 은메달, 금메달 하나씩 따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올해 인빅터스 게임을 준비하면서 이들을 특별히 섭외했다고 한다. 확실한 금메달 카드가 있어야 다른 한국 선수들이 부담 없이 대회를 즐길 수 있다고 봤다. 정은창씨는 “처음 인빅터스 게임 출전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거절했지만 상이군경회의 뜻을 듣고 참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인빅터스 게임이 지금껏 출전한 여느 국제 대회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입을 모았다. 국적을 떠나 군 복무 중 다친 뒤 스포츠로 다시 일어섰다는 공통점이 다른 대회에서 느껴본 적 없는 동료애를 만들어냈다.
정은창씨의 경우 상병 시절 교통사고로 다친 뒤 탁구를 통해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못 걷는다는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면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 올까봐 보훈병원 체육관 쪽으로 발길을 돌렸던 게 탁구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며 “탁구 채를 잡은 지 1년 만에 국가대표가 돼 30년 넘게 탁구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22살 때 전경으로 군 복무를 하던 중 다치고 3년간 방황했다는 최일상씨는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탁구가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은연중에 느꼈던 것 같다”며 “선배들을 따라 무작정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밖에 TT1 종목에선 신법기(44)씨가 금메달을 수상했다. 제대 휴가를 하루 앞둔 말년 병장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3년간 재활에 매달린 뒤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신법기씨는 “움직이기는 어렵지만 팔 힘을 길러 혼자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자는 마음가짐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들의 메달 획득에는 가족들의 성원도 한몫했다. 최일상씨의 어린 아들과 딸은 이날 아버지를 목청껏 응원했다. 최일상씨는 “죽을 힘을 다해 운동했던 내 과거를 이번 기회에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아빠가 무기력하지 않고 나름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이번 대회를 함께 한 신법기씨는 “내가 다친 뒤 어머니는 생업을 포기하고 오로지 내 뒷바라지만 하셨다”며 “수상 여부보다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 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메시지를 어머니에게 전할 수 있어 뜻 깊었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단은 이날까지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 등 총 8개 메달을 수확했다. 한국 선수들은 오는 15일 싸이클과 양궁에서 마지막 메달 사냥에 나선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독일 뒤셀도르프=공동취재단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배우 김상경씨 감사합니다"…'폐암 4기' 경비원이 남긴 유언 | 중앙일보
- "뭐가 가장 힘듭니까" 묻자, 정몽구 딱 한마디 "노조다" | 중앙일보
- 발견 당시 32kg…한인 여성 살해 피의자들 "난 그리스도의 군인" | 중앙일보
- 갤폴드에 소시지 끼워 조롱한 그녀, 아이폰15엔 "이게 미래다" | 중앙일보
- 백종원 "결국 건물주들만 좋은 일"…예산시장 상가 사버렸다 | 중앙일보
-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인민 호날두'…"한광성, 북한으로 갔다" | 중앙일보
- 고물밖에 없는 北…김정은, 러 최첨단 전투기 공장 방문한다 | 중앙일보
- '한채에 180억' 신기록 썼다...방시혁·태양·싸이 사는 그 아파트 | 중앙일보
- '고급빌라에 슈퍼카' 유명 인플루언서…3년간 24억 챙긴 수법 | 중앙일보
- "상속세는 엄마가 다 내세요"…불효 아닌 '똑똑한 절세'였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