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戰]①"품목선정부터 위기대응까지 매뉴얼화…외교네트워크 총동원"
부처별 공급망 세부 관리 지침 수립
尹, 모든 순방이 사실상 공급망 전쟁
"수출路 확보, 수익 경제구조 구축"
윤석열 정부의 '공급망 외교전'이 본격화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 중심' 국정 기조는 이제 '공급망' 확보로 세분화돼 전 부처가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모양새다. 최근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경제 활로는 수출에서, 복합위기 활로는 공급망 강화로"라며 경기 침체를 벗어날 해결책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실질적 공급망 협력을 지목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윤 대통령의 순방 외에도 각 부처의 외교 네트워크를 활용해 공급망 신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겠다는 방침이다.
15일 대통령실과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최근 '경제 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공급망 기본법) 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의결됨에 따라 정부 차원의 '공급망 안정화 기본계획' 수립 논의가 시작됐다.
제정안이 공급망 구축 지원을 위한 안정화 기금 마련 및 관련 사항의 심의·조정을 골자로 둔 만큼, 핵심은 부처별 지원책을 만들겠다는데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가 차원의 공급망 관리 체계 수립이라는 큰 뼈대가 세워져 이제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가 함께 경제 안보 핵심 품목 선정부터 및 물류 공급망 확충은 물론 위기 대응 매뉴얼까지 구축하겠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공급망 안정화 기본계획' 수립 착수… 범정부 차원 공급망 지원책 개선
정부가 '공급망 기본법' 제정안에 맞춰 즉각적인 세부 지원책 수립에 착수한 배경에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현상'의 원인이 됐던 공급망 불안이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세계 각국의 보호 무역주의 확산에 대응해 국내 공급망 안정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산업계는 미국 등 서방국과 중국·러시아 간 대립 격화로 국제 원자재 가격은 더 자극돼 장기적인 글로벌 고물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수립 예정인 '공급망 안정화 기본계획'에는 이런 우려와 대비책이 모두 담긴다. 기재부를 중심으로 준비 중인 기본계획에는 경제 안보 핵심 품목 및 지원 선정을 위한 기준 외에도 관계 부처의 참여 촉진 방안까지 포함될 예정이다.
우선 경제 안보 핵심 품목 지정에 구체적인 기준이 세워진다. 그동안 정부는 원자재 조기경보 시스템(EWS)을 통해 4000여개 대상 품목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중요도가 높은 200개를 '경제 안보 핵심 품목'으로 지정해 보호했다. 하지만 수입 의존도처럼 과거의 기준으로 품목이 선정돼 지금의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반영하겠다는 얘기다. 지금으로서는 반도체, 이차전지, 의약품, 방산, 식량, 범용재가 핵심 분야로 구분돼 안정화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 위기 대응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위기 대응 매뉴얼'도 나온다. 현 범부처·부처별 EWS 운영 체계 분석 및 공급망 리스크 신속 감지를 위한 EWS 운영 개선 방향도 포함이다. 이 과정에서는 공급망 안정화 선도 사업자의 손실지원 등 사후 민간부담 완화를 위한 방안까지 다뤄질 전망이다.
다만 국회에서 의결된 공급망 기본법에 대한 우려안은 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산업계의 분석이다. 공급망 정보가 '기밀'에 해당하는 만큼 공급망 현황 조사와 민간위원의 위원회 참여와 같은 첨예한 사안은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외교 네트워크 활용한 중남미 등 신시장 발굴 집중… 中 공급망 정책 비교·분석
정부 차원의 외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공급망 구축 전략도 다각화하고 있다. 윤 정부는 지난해 출범 후 부처와 관계기관이 나서 지난 정부의 공급망 시스템을 확대하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중남미를 새 원자재 및 식량 공급처로 지목, 대중남미 외교 전략 수립을 고민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핵심 품목은 ▲에너지 ▲광물 ▲식량 등 3대 분야다. 우리나라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나 수급 차질 시 공급망 타격이 큰 품목, 국제 가격 변동성이 큰 품목 등이 선정 이유로 꼽혔다. 외교부 등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의 중남미 에너지, 전략 광물, 식량 확보를 위한 구체적 조치 등에 대해서도 비교·분석 계획이 논의된 바 있다.
자립형 공급망 구축을 추진 중인 중국을 타깃으로 한 대응 정책도 수립이 진행 중이다. 미·중 경쟁,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핵심 품목 및 원자재 수급 불안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원자재 수출 통제,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발전을 위한 핵심 산업 육성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어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공급망 강화 정책이 우리 공급망과 진출기업 활동을 포함한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막대한 만큼 중국의 (공급망) 관리 정책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정부에서 단순 체결에 그친 영국 정부와의 '핵심 공급망 전략적 협력'은 현 정부 들어 구체화했다. 영국 내 핵심 공급망 구축 현황, 미래 시장 전망 분석, 핵심 공급망에 대한 영국 정부의 최신 정책 분석 등을 통해 한·영 핵심 공급망 협력 유망 품목을 발굴하는 게 최우선 과제로 지목됐다. 앞으로는 다자간 네트워크 구축, 비즈니스 모델 등 협력 유망 품목에 대한 다양한 협력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독일과는 '한·독 공급망 기술협력센터' 설립을 위한 사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양국 관계기관이 국제 공동 신규 연구개발 과제를 발굴하고 협력 파트너 매칭을 통한 지원 확대 및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컨설팅을 조율하기 위한 기구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는 공급망 거점 확보 외교… "수출 판로 확보해 경기 끌어올릴 것"
윤 대통령도 직접 나서 각국 정상들과 공급망 협력에 집중하고 있다. 취임 후 첫 순방지인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 "이제는 정치·군사적 안보에서 공급망을 포함한 경제 안보와 포괄적 안보로 안보 개념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윤 정부 외교 기조의 초점을 경제 안보, 특히 공급망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시점이다.
이어진 해외 순방 역시 '공급망' 확보에 방점을 뒀다. 유엔총회 데뷔전에서도 국가 간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며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역설했고 올 초 다보스 포럼과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에서는 국내 대표 경제인들과 함께 기업 간 글로벌 공급망 협력의 기반을 다졌다.
지난달 역사상 최초의 단독 한·미·일 정상회의 역시 안보 협력 및 첨단 기술, 공급망 등의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안을 끌어냈다. 당시 3국 정상은 한·미·일의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할 첨단 기술 분야 확대와 함께 공급망 에너지 수급 안정 등 공동대응 파트너십 강화 방안까지 논의했다.
동유럽을 비롯한 나토 등 유럽에서의 공급망 확보는 윤 정부 취임 직후 줄곧 추진됐던 핵심 산업 과제로 지목돼 왔다. 한-EU 간 다분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섰던 상황으로, 직전 프랑스 순방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과 유럽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로서 첨단분야 산업투자를 통해 긴밀한 공급망을 구축했다"며 이차전지, 전기차, 해상풍력, 첨단소재 등 유럽 대표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낸 바 있다.
대표적인 다자외교 무대인 올해 나토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사실상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 순방'으로 마무리됐다. 인도네시아 등과 공급망 협력을 위한 구체적 협력 의지가 도출됐다. 니켈 매장·생산 세계 1위로 전기차 공급의 핵심 고리인 인도네시아와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계기로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잇따른 경제 외교로 기본적인 공급망이 구축되고 첨예한 산업 분야까지 판로를 확보할 경우, 수출 규모는 물론 수익까지 늘어나는 경제 구조를 갖추게 된다"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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