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국방장관 후보자님, 군대가 정말 이래도 됩니까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김도균 기자]
▲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어떤 기억은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마치 얼마 전 일처럼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1985년 10월 24일 경기도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진행된 육군 제8사단 21연대 2대대 공지합동훈련에 참가했던 병사들의 기억도 그랬습니다. 그날 오후 여러 명의 병사들은 잘못 발사된 박격포탄 폭발로 A이병이 큰 부상을 입고 분대장의 등에 업혀가던 일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몸 반쪽이 엉망이 된 상태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힘겹게 관등성명을 대던 A이병을 본 한 병사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사고가 난 지 한 시간 만에 A이병은 스무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부대로 돌아온 병사들은 중대장이 입단속부터 시켰다고 기억합니다. A이병은 불발탄을 밟아 숨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목격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설명에 병사들은 화가 났고 의구심이 생겼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군에 보냈던 맏아들을 석 달 만에 잃은 아버지는 마장동에 있던 시외버스터미널을 헤매며 어깨에 오뚜기 마크를 단 장병들을 볼 때마다 "내 아들 OO이를 아느냐"고 물어봤습니다. A이병 사고 당시 함께 있었던 한 병사는 터미널에서 그의 아버지를 두 번이나 마주쳤다고 합니다. 전우의 아버지에게 차마 사실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병사는 두고두고 이때 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렇게 A이병 부대원들은 침묵을 지킨 채 하나 둘 전역했습니다. A이병은 1985년 그해 군대에서 목숨을 잃었던 721명의 군인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37년여 만에 드러난 진실
제대한 부대원들은 직장을 잡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A이병도 살아 있었더라면 누렸을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이었습니다. 부대원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만남을 이어오면서 간간이 A이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슴 한편에는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A이병에 대한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20대의 새파란 병사들은 어느덧 60세 언저리의 장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020년 9월, 훈련당시 박격포탄이 A이병 근처로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던 조아무개씨가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진상규명위)에 A이병 사망 사건의 진상을 밝혀 달라는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수 십 년의 시간이 흘러도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의 짐 때문이었습니다.
조씨 이외에도 여러 명의 부대원들이 군진상규명위 조사에 응해 37년 전 각자 목격했던 사실들을 진술했습니다. 2년여 조사를 벌인 후 지난 2022년 12월 A이병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마친 군진상규명위는 "부대원들의 공통된 진술 등을 고려하면, 망인(A이병)의 사망은 훈련 과정에서 불발탄을 밟아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거리 측정 없이 급격하게 사격된 박격포 포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망인의 소속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은 망인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왜곡·조작함으로써 사고의 지휘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충일을 앞둔 지난 5월말 A이병의 전우들은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아 A이병의 영전에 진상규명 결정문을 바쳤습니다. 37년 만에 A이병 사망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데는 군진상규명위 조사에 흔쾌히 참여했던 전우들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없었더라면 A이병의 사인은 여전히 불발탄 폭발사고로 남아 있었을 겁니다.
▲ 'A 이병' 사망 당시 훈련에 참가해 사고 상황을 목격한 조아무개 병장. 지난 26일 순천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 박현광 |
하지만 군진상규명위 결정문에 나와 있는 부대원들의 진술은 대부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이 아니라 사고 당시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본 내용들입니다. 무엇보다 이 분들이 37년 전의 일을 가지고 거짓말까지 꾸며가면서 신 의원을 음해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보이지 않습니다. 부대원들이 자발적으로 군진상규명위 조사관을 만나 용기 있는 진술을 하기까지 이들을 움직인 가장 큰 동인은 아마도 A이병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제(13일) 군인권센터에서는 두 달 전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작전에서 순직한 고 채 상병과 같은 중대 소속 B병장의 어머니가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B병장은 구명조끼도 갖추지 못한 채 실종자 수색을 위해 내성천에 투입됐다가 7월 19일 오전 9시께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휘말려 수십m를 떠내려가다 간신히 구조됐습니다.
어머니는 "본인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돌아온 사고였는데도 불구하고 첫 통화를 했을 때 '엄마, 내가 ○○이(채 상병)를 못 잡았어'라고 말하며 울었다"고 전했습니다. 늘 잠이 많았던 B병장은 휴가를 받아 집에 와서도 하루도 편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은 온몸이 땀에 젖어 깨기도 했고, 어느 날은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은 B병장은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1985년 A이병 사고를 목격했던 병사들 역시 아마도 B병장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 때문에 고통을 받았을 겁니다. A이병 사고 당시 그의 근처에는 3명의 병사가 더 있었습니다. 이 중 두 사람은 군진상규명위에 나와 A이병이 박격포 오발 때문에 쓰러졌다고 진술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군진상규명위의 거듭된 요청에도 끝내 조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분은 전역자 친목회에 나와 '훈련 당시 부여된 번호대로라면 원래 자신이 A이병이 서 있던 자리에 대기해야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사고 당일 갑자기 자신과 A이병의 자리가 바뀌었고, 결과적으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우연히 A이병과 자리가 바뀐 게 생사를 가르는 결과를 낳았고, 이 끔찍한 기억이 아직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 38년 전 훈련 중 폭발 사고로 사망한 'A 이병 사건'을 조사한 8사단 헌병대의 중요사건보고서. 8사단 21연대 2대대 5중대 소속 A 이병은 1985년 38년 전 훈련 중 '잘못 발사된' 포탄을 맞고 사망했다. 부대는 당시 '불발탄을 밟은 것'으로 사인을 조작했다. |
ⓒ 박현광 |
군진상규명위는 A이병 소속부대 지휘관들과 간부들이 사인을 왜곡·조작함으로써 사고의 지휘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결정했으면서도 "누구의 주도로 사망의 원인이 왜곡·조작됐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신 의원은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당시 27세인 중대장이 사단 헌병대에서 내려온 수사관을 상대로 무슨 수로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인가"라고 항변했습니다.
기자도 중대장 혼자서 이 엄청난 사건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박격포 사격을 지휘했던 중대장이 A이병의 사망 원인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는 과정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병사의 사망 사건을 조작하는 일은 중대장 선보다 훨씬 윗선이 개입해야 가능했을 거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대원들이 중대장을 지목한 것은 사고 당시 신원식 대위가 했던 행동과 말이 자신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또 왜곡·조작이 이루어졌다면 적어도 부대원들이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현장에서 진행되지는 않았을 걸로 보입니다.
다만 군진상규명위 결정문에선 당시 지휘관들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대장은 "이 사건 관련해서 기억이 없다"면서 "병사들은 자기 앞에 있는 것만 안다. (중략) 박격포인지 유발탄인지 걔(병사)들은 구별할 수 없다. 중대장이 잘 알 것이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대대장은 "나는 잘 모르지만 불발탄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돌격 앞으로' 해서 불발탄을 건드리면 다칠까 봐서 상황을 끝낼까 하는 생각과 대대장이 마지막 순간에 고지탈취도 안 하고 상황 끝낸다고 욕할까 하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했었다. '돌격 앞으로'라고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전방에서 뻥 소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부하의 죽음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연대장, 자신은 잘 모르지만 사고 현장에 불발탄이 많다고 들었다는 대대장. 백번을 양보해 설령 A이병이 불발탄을 밟아 목숨을 잃은 게 사실이라 해도 지휘관이 불발탄이 널려 있어 폭발 위험이 상존한 위험지대로 병사들을 몰아놓고 훈련을 강행했다면 이는 면책 받을 수 있는 일입니까? 분명한 사실은 당시 지휘관들 중 아무도 A이병 사망 사건으로 문책을 당하거나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사단장부터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까지 A이병의 직속상관들은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습니다. 또 연대장과 중대장은 훗날 중장(★★★)까지, 대대장은 소장(★★)까지 별을 달았습니다.
▲ 지난 7월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발생한 고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해 채 상병과 함께 수색하던 중 물에 빠져 급류에 휘말렸던 A 병장의 어머니가 13일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특히 중대장 신원식 대위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후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었다가 이제는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습니다. 신 후보자는 지난 8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채 상병 순직사건과 관련해 "채 상병이 웅덩이에 푹 빠져서 안타까운 죽음을 했다"면서도 "이게 사단장까지 8명이나 다 (과실치사 혐의자로) 처리할 만큼 어마어마한 군의 과오냐"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사건 관련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원칙대로 민간경찰에 사건자료를 이첩했던 박정훈 대령에 대해서는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해병대원의 마지막을 정치꾼들의 불쏘시개로 마감하려고 하냐"면서 "3류 정치인 흉내를 멈추라"고 비난했습니다.
신 후보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항상 지휘관의 책임은 37년 전 전우의 사고를 증언했던 예비역 병장들의 용기, 눈앞에서 후임을 잃고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해병대 선임의 괴로움보다 가벼운 것입니까. '상명하복'의 군대문화가 가능한 것은 높은 직책의 지휘관일수록 더 큰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곧 국회에서는 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립니다. A이병 사건은 청문회의 주요 쟁점 사항 중 하나입니다. A이병 전우들은 용기를 내 수 십 년 전의 진실을 밝혔습니다. 청문위원들은 세상을 떠나 자신의 억울함을 스스로 말할 수 없는 A이병과, 아들이 왜 죽었는지 이유를 찾기 위해 터미널을 헤맸을 아버지와, 수 십 년간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았을 전우들의 입을 대변해야 합니다. 또 아직 아들이 군에 남아 있는데도 용기를 내 세상을 향해 "돌아오지 못하는 채 상병과 그 복구작전인지 몰살작전인지 모를 곳에 투입되었던 대원들 모두 제 아들들"이라고 흐느낀 생존병사 어머니의 마음 역시 헤아려야 합니다.
A이병 사건과 채 상병 사건은 병사 죽음에 대한 지휘관의 책임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입니다. 이번 기회도 그대로 놓쳐버린다면 앞으로도 슬픔의 행렬은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A이병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청문회를 통해 신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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