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낙인’ 공천 탈락 겁났나…'이재명 체포안' 흔들리는 비명 [현장에서]
더불어민주당 내 친명계가 제기한 '체포동의안 표결 보이콧' 시나리오에 비명계가 동요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본회의에서 아예 퇴장해 표결을 거부하자는 보이콧 시나리오는 친명계 민형배 의원이 먼저 꺼냈다. 지난달 20일 친명계 원외 인사 행사에서 “(체포동의안을) 간단히 물리치는 방법”이라며 “투표를 시작하면 민주당이 일제히 빠져나오면 된다”고 제안한 것이다. 겉으론 정족수(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 찬성)를 미달시켜 체포안을 부결하자는 구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무기명 투표를 사실상 기명 투표로 바꾸려는 노림수였다.
당시 비명계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만약에 (본회의장에서) 나가 버리면 재석이 안 되고, 투표가 불성립하게 된다. 투표가 불성립하게 되면 그 다음번 본회의 때 바로 표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결 보이콧의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검찰 구속영장 청구가 가까워지고 이 대표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비명계 의원들의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한 의원은 “나는 어차피 수박(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이라는 뜻의 은어)이 돼버렸기 때문에 설사 표결에 들어가서 부결을 찍어도 남들은 나더러 ‘가결 찍었다’고 할 것 아니냐”면서 “아예 표결할 때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게 결백을 입증하는 방법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의원은 “친명계가 빠져나간 채 표결을 하면 최종 가결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며 “그땐 내가 회의장에 남아있는 것 자체로도 ‘당대표 보내버린 놈’ 소리를 듣기 딱 좋다”고 말했다.
수박 낙인에 대한 비명계의 불안감은 결국 내년 총선 공천을 의식해서다. 지난달 31일부터 단식을 시작한 이 대표는 “동조 단식하는 의원님들 명단을 누가 관리하느냐. 오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명단 관리를 잘 해달라”(5일)고 말하기도 했다. 비명계 조응천 의원은 13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단식 현장에서 (오는 사람) 명단을 점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명단 체크 때문에 제가 쫄려서(압박을 받아) 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안갔다)”고 말했다. 설사 구속이 되더라도 이 대표가 공천을 주도할 것이란 소위 ‘옥중공천설’을 민주당 내에선 단순한 ‘설’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올 경우의 표결 방식에 대해 민주당이 제대로 논의한 적은 없다. 하지만 수박 낙인과 옥중 공천을 두려워하는 비명계의 기류를 보면 “의외로 쉽게 표결 보이콧으로 합의가 될지도 모르겠다”(보좌관)는 우려섞인 예측이 현실화될 수도 있겠지 싶다.
요즘 만나는 민주당 의원들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뀐다”고 말한다. 복잡한 사정이야 이해가 되지만, 어쨌든 보이콧은 절대 아니다. 가결이든 부결이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개별 소신과 원칙에 따라서 판단해 투표하면 되는 일이다. 국회법에 명시된 체포동의안 처리 방법도 “본회의에 상정하여 표결한다”는 것 하나다. 법과 원칙을 피하는 사람들의 명단, 지키는 사람들의 명단. 보통의 국민들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지는 자명하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배우 김상경씨 감사합니다"…'폐암 4기' 경비원이 남긴 유언 | 중앙일보
- "뭐가 가장 힘듭니까" 묻자, 정몽구 딱 한마디 "노조다" | 중앙일보
- "챗GPT 안 쓰면, 학점 깎아요"…'표절' 걱정했던 대학이 바뀐다 [생성형 AI 임팩트] | 중앙일보
- 여기자 엉덩이 '툭' 성추행…생중계에 딱 걸린 스페인男 결국 | 중앙일보
- 백종원 "결국 건물주들만 좋은 일"…예산시장 상가 사버렸다 | 중앙일보
- "상속세는 엄마가 다 내세요"…불효 아닌 '똑똑한 절세'였다 | 중앙일보
- 합의문도 없는 희한한 북·러 정상회담…결국 비즈니스 관계였나 | 중앙일보
- 블핑 제니 SNS 게시물 하나가 28억 가치…"여기에 수출 길 있다" | 중앙일보
- "'역겹다'며 뱉기도…" 美이민자들 울린 한인소녀 '김밥 먹방' | 중앙일보
- "이재명 단식서 DJ 봤다"는 野…이유·시점·방식 전혀 달랐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