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환자 욕창 돌봐도 불법"…60년 전 의료법, 싹 바꾼다
60년 동안 100차례 부분 개정을 거친 의료법이 수술대에 오른다.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조항이나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 내용을 바꾸기 위해서다. 정부는 전문가 중심의 연구회를 꾸려 의료법의 개정과 혁신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복지부, 의료법 개편 착수
보건복지부는 의료법과 관련 법제의 개정과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의료법체계연구회’를 발족한다고 15일 밝혔다. 연구회는 의료, 간호·요양, 법률 전문가 등 9명으로 꾸려진다. 앞서 지난해 7~12월,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기 위해 ‘미래시장노동연구회’를 운영한 바 있다. 복지부가 이런 방식을 의료법 개정에 도입한 셈이다.
연구회는 의료법 규정 체계나 한계 등을 분석해 연말까지 고령화에 대비한 의료법 개편 방향에 대한 권고문을 낼 예정이다. ‘킥오프’ 회의(15일)를 진행한 뒤 오는 12월까지 매달 2회씩 운영될 예정이다.
의료법은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관한 전반사항을 규정하는 법으로 1962년 제정된 뒤 체계 정비 없이 100차례에 걸쳐 부분 개정됐다. 하지만 의료법 개정에 대한 요구는 의료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고령화와 같은 시대적 변화, 의료인의 역할 변화 등이 의료법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 100차례 개정…'누더기 법'된 의료법?
「 제12조(의료기술 등에 대한 보호) ①의료인이 하는 의료ㆍ조산ㆍ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이하 “의료행위”라 한다)에 대하여는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따로 규정된 경우 외에는 누구든지 간섭하지 못한다.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①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단서 생략)
제33조(개설 등) ①의료인은 이 법에 따른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아니하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으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그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여야 한다.
」
구체적으로 의료행위를 설명하는 제12조는 “의료인이 하는 의료·조산·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이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이에 대한 명쾌한 법률적 정의가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권해석을 그때그때 해야 해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제27조)라거나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제33조)는 조항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혜진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중증 장애인·환자에게 필요한 석션(가래 흡입)이나 욕창 소독도 의료행위로 분류된다. 의료법에 따르면 가족 등 돌봄 제공자가 환자를 돌본다고 해도 사실상 불법”이라며 “매시간 의료인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현실과 굉장히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고령사회에 걸맞은 의료·요양·돌봄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의료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게 보건의료계 의견이다. 경기도 한 읍에서 일하는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동 주민센터는 의료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간호사가 있어도 노인 복지서비스에 제약이 있다. 간단한 건강 관련 문답만 진행하거나 혈압만 재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집에 있는 노인이라면 돌봄·요양·의료·간호·재활 등 다양한 서비스가 필요한데 현재는 제각각이다. 수요에 따라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연계될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현행 의료법은 60여년 전 만들어져 변화된 의료환경과 국민의 다양한 의료서비스 수요에 맞지 않는 옷”이라면서 “초고령사회를 맞아 선진화된 의료·요양·돌봄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의료법 체계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통한 혁신이 시급하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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