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급조된 회담…'위험한 거래' 10월 北위성 쏘면 알게 될 것" [美전문가 인터뷰]

김형구 2023. 9.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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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사일러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담당관. 사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홈페이지 캡처


시드니 사일러 전 美 북한담당관 인터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대북 전문가인 시드니 사일러 전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담당관은 13일(현지시간) “정상회담 후 흔한 합의 성명이나 공동 선언문 하나 없었다. 북·러 정상회담은 급조된 게 분명하다”고 했다.

이날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일러 전 담당관은 “푸틴도 러시아가 북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며 향후 북·러 협력의 확대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그는 “러시아에 대담하게 접근하는 김정은의 행보는 북한에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은 중국에겐 환영할 수 없을 일”이라고도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27년간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을 했던 사일러 전 담당관은 DNI 북한담당 부조정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국·일본담당 보좌관, 국무부 북핵 6자회담 특사 등으로 활약한 미국 내 손꼽히는 대북 전문가다. 현재는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고문으로 있다.


“캠프 데이비드 업적 비하면 너무 초라”

Q :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총평한다면.
A : “과거 백악관에서 일했을 때 네 번의 정상회담에 관여했다. 정상회담 뒤에는 늘 공동 성명이나 합의문이 나오고 두꺼운 설명자료가 뒤따르고 으레 공동 기자회견을 한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합의문도, 공동 성명도 없었다. 우리 기준으로 볼 때는 급조된 정상회담이었다. 회담 후 그들이 세일즈할 만한 것도 없었다. 지난 8월 한국 정부가 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그리고 한·미, 한·일 양자회담에서 이룬 커다란 업적에 비하면 김정은과 푸틴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정상회담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푸틴은 러시아가 북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얘기도 한 것으로 안다.”

Q :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무기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러시아가 식량·에너지와 함께 핵추진잠수함 및 정찰위성 기술을 전수할 거란 관측이 있었다. 이번 회담에서 ‘위험한 거래’가 성사됐다고 보나.
A : “일단 제한된 정보에 근거해 말하자면 그들 간에 세부 사항이 해결되지는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이 비밀과 기습적 요소,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유형의 거래를 은폐하는 행위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다소 간의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북한이 1·2차 발사에서 실패한 정찰위성을 10월에 3차 발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아마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이는 3차 발사 때 위험한 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를 좀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위성 발사 기술 전수가 이뤄졌는지, 북한이 개량화에 성공했는지 등을 보면 더 명확해질 것이다.”(푸틴 대통령은 지난 13일 북한의 위성 기술을 돕겠다고 했다)

Q : 정상회담 장소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택한 배경은 뭘까.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사진 조선중앙TV 화면 캡처=연합뉴스

A : “단순히 ‘(회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던) 블라디보스토크 만남’ 그 이상의 여러 효과를 노린 듯하다. 일단 김정은이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 이동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또 수도(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갖지 않아 의전 절차를 줄일 수 있고 ‘덜 공식적’인 만남이란 인상을 줄 수 있다. 여러 가지 상징성을 감안한 최적의 장소로 여겼을 것이다.”


“엔데믹 후 김정은 외교, 러시아 선택 주목”


이 대목에서 사일러 전 담당관은 2019년 ‘하노이 노딜’(실패로 끝난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코로나19로 국경을 폐쇄하고 ‘자력갱생’과 ‘고난의 행군’을 외쳤던 김 위원장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과연 어떤 외교를 펴느냐가 관심사였는데, 그의 첫 번째 선택이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 방러 수행한 주요 인물 그래픽 이미지.

A : “김정은은 지금까지 외교에 다소 무관심했고 외교에 관한 한 특별한 경험이나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2월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처참하게 실패했고 그해 4월 푸틴과의 정상회담에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이를 김정은의 ‘3I’라고 규정하는데 바로 무능력(Incompetence)·무관심(Indifference)·무경험(Inexperience)이다. 그런 김정은이 러시아와의 위험한 군수물자 거래에 나섰다는 것은 당면 과제를 넘어서는, 더 많은 외교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김정은이 추구하는 맥락에서 이번 방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좋아하는 세상은 바로 이런 세상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도전하고, 국제 자유주의 질서를 거부하고, 제재의 정당성을 거부하고, 북한 미사일 발사를 주권적 권리라는 명분으로 옹호하는 세상 말이다. 김정은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자신이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Q : 북·러 무기 거래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지만, 러시아가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제재 실효성이 떨어질 거란 우려가 있다.
A : “러시아가 안보리 조치를 단순히 지지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위반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대북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럼에도 평양과 모스크바가 위험한 행동에 나서면 반드시 처벌받고 제재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백악관은 북·러 무기 거래 시 양측 모두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여러 번 경고해 왔다. 아마도 위험한 거래가 확인되면 적절한 처벌 방식과 관련해 정책 입안자들이 여러 옵션을 갖고 대처할 것이다.”

Q : 회담 몇 시간 전 북한의 기습적인 탄도미사일 발사는 무엇을 의미하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연회 등 일정을 진행한 뒤 다음 방문지를 향해 떠났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4일 보도했다. 뉴스1

A :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부재 상황에서도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 어디서든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것일 수 있다. 또 김정은 뒤에는 러시아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김정은이 푸틴 영토에 있는 동안 미사일을 발사한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김정은, 中 입장서 말썽꾸러기 될 수 있어”

Q : 김정은과 푸틴의 밀착을 중국은 어떻게 볼까.
A : “중국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의 역학 관계, 힘의 균형이 제3국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은 동북아의 안정을 원한다. 중국은 자국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당사자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푸틴에게 대담하게 다가가는 김정은은 (중국 입장에서는) 그런 유형의 말썽꾸러기가 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해 우세한 영향력을 갖고 싶어하는 중국에게는 (북·러 밀착이) 환영할 수 없는 일이다.”

Q : 한·미·일 안보협력의 획기적 강화 이후 그 반대급부로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고 그러면서 신냉전 대립 구도가 고착화될 거란 우려가 있다.
A : “가장 중요한 건 한반도를 위험하게 만든 일차 원인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란 사실이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은 우리의 동맹을 강화시킨다. 우리는 합동훈련을 늘리고 확장억지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고도로 증가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차원의 논쟁이 아니라 역내 긴장 고조의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느냐가 중요하다. 북한의 위협이 먼저였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 6월 22일(현지시간) 시드니 사일러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담당관이 워싱턴 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빅터 차 CSIS 아시아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와 대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 ☞시드니 사일러

「 2020년부터 미 국가정보국 국가정보위원회 북한담당관으로 있다 최근 퇴임한 뒤 지금은 CSIS 선임 고문(비상임)으로 있다. 2007년 미 CIA 북한담당 부조정관으로 일한 뒤 미 백악관 NSC 한국ㆍ일본담당 보좌관(2011~2014년)을 거쳐 미 국무부의 북핵 6자회담 특사(2014~2015년)로 활약하며 대북 협상을 주도하는 등 40여년간 북한 문제를 다뤄온 한반도 전문가다. 연세대에서 한국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김일성이 북한 내 권력투쟁을 거쳐 최고 지도자로 서는 과정을 다룬 저서 『김일성 1941-1948』을 1994년 펴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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