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단식서 DJ 봤다"는 野…이유·시점·방식 전혀 달랐다

김효성 2023. 9.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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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한 단식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로 부터 단식 중단을 요구 받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보름째 단식을 이어간 가운데 야권에선 이 대표를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빗대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두환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처럼 ‘이재명 죽이기’ 공작·조작이 횡행하고 있다”며 “김대중 죽이기에 맞서 김대중과 함께 똘똘 뭉쳐 싸웠듯이 민주당부터 이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DJ 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6일 단식 중인 이 대표를 만나 “이 대표의 단식에서 DJ의 단식을 본다”고 했다.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을 하다 정치적 핍박을 받은 DJ를 이 대표와 연결지은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장동 사건이나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다가 단식을 벌인 이 대표와 DJ의 단식은 이유·시기·방식에서 차이가 크다”며 “민주당 주장에 ‘왜 DJ까지 파느냐’는 시각을 가진 국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①이유: 모호한 李 vs 분명한 DJ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돌연 단식을 선언하면서 “사즉생의 각오로 윤석열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적 선언에 가까워서 야권 내부에서도 “도대체 단식으로 뭘 얻겠다는 건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단식농성장에서 단식 7일차를 맞은 이재명 대표를 찾아 주먹을 맞대며 응원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대표, 전용기 의원, 박 전 원장. 뉴스1


반면에 DJ는 평화민주당 총재이던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를 전면도입하라”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지방자치제는 이승만 정부 때 부분 실시되다가 박정희 정부 들어 폐지된 상태였다. DJ의 공보비서였던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1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DJ는 지방자치를 하지 않으면 관권선거가 횡행해 후일 정권교체가 불가능할 거라고 봤다”며 “정치개혁 차원에서 분명한 목표를 두고 단식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식의 목적이 뚜렷하다 보니, 실마리도 비교적 쉽게 풀렸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총재는 단식 3일째 평민당사를 찾아 DJ와 면담했다. 이후 지방자치제 순차도입이 합의되자 DJ는 13일 만에 단식을 풀었다. 91년 기초의원, 95년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며 정치권에서는 “DJ의 단식이 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13일 CBS 라디오에서 “이 대표는 구체적 목표 없이 ‘윤석열 정부가 잘할 때까지 굶을 거야’라는 것이어서 국민은 황당하다고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공식 요청하면서도 직접 찾아가지 않는 이유를 두고 여권에선 “막상 만나도 협상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②시점: 檢 소환 직전 vs 3당 합당 대응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한 시점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 소환이 임박한 시점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 9일과 13일 수원지검에 나가 조사를 받았는데 그 때마다 포토라인에 서서 “예상했던대로 증거라고는 단 하나도 제시받지 못했다”거나 “저를 아무리 불러서 범죄자인 것처럼 만들어보려 해도 없는 사실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 대표를 두고 여권에선 “자신이 부당한 검찰 수사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 소환 직전 방탄용 단식에 돌입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1990년 10월 15일 지방자치제 도입을 위해 단식 중이던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별관 450호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을 고 이희호 여사(오른쪽 첫째)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반면에 DJ의 단식은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을 통해 221석의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직후에 이뤄졌다. 70석의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평민당이 고립무원 상태가 되자 정치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승부수였던 셈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DJ는 야당 지도자로서 정치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단식을 했지만, 이 대표는 개인적 사유 때문에 단식을 했다고 국민은 볼 것”이라고 했다.


③방식: 반반 농성 vs 찬바람 농성


이 대표는 그간 국회 본관 앞 외부에 천막 농성장을 만들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을 머물렀다. 그런 뒤 나머지 12시간은 대표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일종의 ‘반반 농성’을 벌인 것이다. 그러다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단식 14일째인 지난 13일부터는 본관 2층 대표실에서 종일 지내고 있다. 이런 단식은 24시간 내내 야외 농성장에 머물렀던 과거 야당 지도자의 방식과는 딴판이라는 평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둘째)가 12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 재조사를 마치 뒤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 첫째는 고민정 최고위원. 뉴스1


DJ가 단식했던 평민당사는 현재 여의도역 부근 맨하탄빌딩(구 여의도백화점) 6층에 있었다. 당시 대표실에는 창문 유리가 없어 밤이면 가을 찬바람이 불어 DJ가 고생했다고 한다. DJ는 후일 『김대중 자서전』에서 “나는 물만 마시며 독서와 사색을 했다. 단식 8일째 탈수 현상이 심했다”며 “당직자와 비서들이 놀라서 나를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나는 병원에서도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당시 평민당 의원 40여명은 ‘동조단식’까지 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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